썩어가는 발 살리는 혈관외과 개척자

[대한민국 베스트 닥터 ⑥] 삼성서울병원 혈관외과 김동익 교수

걸을 때 다리가 아프고 상처가 생기면 잘 아물지 않는다. 날계란 마사지, 온찜질 등을 해도 낫지 않는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거나 부황을 떠도 마찬가지. 절룩절룩 병원을 찾았다가 의사로부터 종아리 혈관이 막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쩌면 발을 잘라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 말에 얼굴은 백짓장이 된다.

성균관대학교 삼성서울병원 혈관외과 김동익 교수(59)는 이 같은 동맥폐색증 또는 버거병 환자에게 혈관을 뚫어주거나 ‘우회로’를 만들어 새 삶을 선물한다. 당뇨병 때문에 발에 혈액이 통하지 않은 ‘당뇨발’ 환자의 발을 살리기도 한다. 목 동맥이 막혀서 뇌중풍이 생기기 전이나 배의 큰 동맥이 꽈리처럼 부풀어 터지기 전 예방적 수술로 병을 예방한다. 모두 혈관에 문제가 생기는 병들로, 김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혈관외과’를 개척한 의사다. 특히 버거병 줄기세포 치료에서는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제주도 출신의 김 교수는 어릴 적부터 동식물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친척이나 주위에 의사가 한 명도 없어서 한양대 의대에 합격하고 나서야 의대가 6년제이고, 여기에다 6년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김 교수는 의대 방학 때와 주말마다 의료 봉사 활동을 하면서 선배 외과 전공의의 수술 장면에 반해 외과로 길을 정했다. 그러나 외과 전공의 시험에 뚝 떨어졌다. 전남 나주국립정신병원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한 지 1년째 되는 날 원장이 불렀다. “소록도에서 의사가 도망을 갔는데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다. 혹시 가지 않겠느냐?”

소록도(小鹿島)는 ‘작은 사슴 모양의 섬’으로 한센병 환자들의 거주지로 소설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으로도 유명하다. 한센병은 결핵과 같은 종의 세균이 일으키는 병이지만, 사람들은 환자의 일그러진 외모 때문에 ‘문둥병’으로 외면하면서 기피해왔다. 그러나 김 교수는 마다하지 않았다. 오전에는 병원에서 진료하고, 오후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병원 갈 형편이 안 되는 환자를 치료했다. 밤에는 할 일이 없어서 일어 공부를 했다.

김 교수는 재수 끝에 외과에 들어갔다. 외과에서는 암 수술이 고갱이였지만, 수술을 잘 받고도 재발해서 숨지는 환자들을 보고 암 수술 대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우연히 ‘혈관외과’를 알게 됐다. 전공의를 마치고 자비 연수를 결심했다. 미국에서는 수술실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임상과 연구를 같이 할 수 있는 일본을 택했다. 그는 오사카 대학병원 간바야시 주니치(上林純一) 교수 문하로 들어갔다. 스승과는 영어로 대화할 수도 있었지만 소록도에서 독학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어 공부에 매달렸다. 3개월 만에 일어로 전화 통화할 수준이 됐다. 스승은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외국인 제자를 수제자로 삼았다. 김 교수는 2년 동안 일본혈관외과학회와 각종 연구회에서 5번 오사카 사투리의 일본어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김 교수는 1994년 3월 삼성서울병원의 의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 초대 멤버로 합류했다. 김 교수의 첫 수술은 하지정맥류로 지금까지 2000여 명을 수술했다. 예전에는 피부를 크게 잘라서 5~7일 입원해야 했지만 김 교수는 수술 부위를 줄여 2, 3일 만에 퇴원토록 했다. 지금은 0.5~1㎝로 최소화했고 고주파열치료, 레이저치료 등의 개발로 수술 당일 퇴원도 가능케 됐다.

김 교수는 경동맥수술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미국 교과서에서는 목동맥의 피떡을 제거하면 뇌졸중이 예방된다고 돼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수술 중 오히려 부작용이 생긴다며 모두들 꺼렸다. ‘용감한 김 교수’는 지금까지 1000여 명을 수술해 뇌경색을 예방했다. 수술 중 사고는 한 건도 없었으며 전체 부작용은 선진국 교과서의 3%보다 낮은 0.05%로 세계 최고 수준.

“정기 검진 때 경동맥초음파를 받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거나 몸의 한쪽의 힘이 빠질 때, 한쪽에 시야장애가 오면 뇌경색의 전조 증세라고 여기고 경동맥초음파를 받아야 합니다.”

김 교수는 지난 2월 복부 동맥 지름이 9센티미터까지 늘어난 98세 환자를 치유해서 화제를 모았다. 복부대동맥류는 정상이 1.5센티미터 지름인 배 동맥이 5센티미터 이상으로 부풀어 오르는 병. 터지면 대부분 숨지기에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300여 명에게 인조 혈관 대체술, 70여명에게 스텐트 삽입술을 시행해서 시한폭탄을 제거했다.

김 교수하면 버거병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버거병은 미국 의사 레오 버거가 발견한 병으로 담배를 피우는 젊은 남성에게서 잘 생긴다. 장단지의 작은 동맥이 막히면서 염증이 생기고 통증이 따른다. 심해지면 피부와 뼈가 썩어 잘라내야 한다. 김 교수는 환자의 정맥을 떼어내 우회 혈관을 만들어주는 수술로 100여명에게 발을 자르지 않고 생활이 가능토록 했다.

그는 또 2002년부터 줄기세포로 버거병을 치료하는 연구를 시작해서 11년 만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신의료 기술 인증을 받았다. 줄기세포는 새 혈관을 만들거나 단백질이 통증을 감소시켜 일상생활을 가능토록 했다. 100미터도 걷지 못하다가 이 치료를 받고 산행을 즐기는 환자들도 있다. 김 교수는 연구 및 치료 효과를 ‘네이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유럽혈관외과학술지’ 등에 발표했다.

그는 지금까지 국제과학논문색인(SCI) 논문 160여 편, 국내 학술지 논문 100여 편을 발표했고 책 19권을 펴냈다. 또 2008년 한국줄기세포학회의 학술지 편집장을 맡아 “10년 안에 SCI 논문으로 등재시키겠다”고 약속했고 지난해 그 약속을 지켰다. 인용지수는 2.76으로 국내 발행 학술지 중에 최고 수준이다.

김 교수는 대한정맥학회 이사장과 회장, 아시아정맥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혈관외과학회 이사장, 한국줄기세포학회 이사장, 대한당뇨발학회 회장, 아시아당뇨발학회 회장, 순환기의공학회 이사장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2015년 8월 우리나라가 메르스로 홍역을 앓을 때 서울 롯데호텔에서 60여 개 나라 800여명의 의사가 참가한 세계정맥학회를 성공적으로 치렀고 올해 2월부터 이 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수술을 잘 하고도 환자로부터 “발을 잘랐다”는 이유로 원망을 듣기도 한다. 동맥경화성 동맥폐색증, 버거병, 당뇨발 등으로 발, 다리를 잘랐을 경우. 조금만 일찍 왔어도 절단 수술을 피할 수 있는데…. 이 경우를 포함해서 어떤 경우에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절망의 반응이 나올 것을 감내한다. 환자나 보호자가 모르는 부분을 물어볼 때 “그건 잘 모르겠는데 찾아서 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한다.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치료의 기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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