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으로 대장암 진단”…마이크로바이옴 강국 노린다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에 대한 국내 연구 열기가 뜨겁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염증성 장 질환, 아토피 피부염뿐만 아니라 당뇨병, 호흡기·면역 질환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바이옴 산업은 유익균을 섭취하는 단계에서 개별 미생물의 인체 내 역할을 밝혀내 질병의 진단 및 치료제를 개발하는 단계까지 진행되고 있다. 현재 관련 연구는 미국, 일본, 유럽 등이 선도하고 있지만, 아직 산업을 장악한 독보적인 1인자는 없는 상태다. 이에 한국도 활발히 연구를 이어가며 글로벌 선점을 노리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콘퍼런스에선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산업의 연구 개발 현황을 공유하고, 산업 성장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마이크로바이옴, MD헬스케어, 코엔바이오, 우리바이옴 등 산업계와 더불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등 정부 관계자가 참석해 머리를 맞댔다.

질환 예방부터 치료까지…무궁무진한 마이크로바이옴 세계

변지영 마이크로바이옴 대표는 자사의 글루텐 분해 효소 개발 성과를 소개했다. 글루텐은 밀전분을 만들 때 생기는 불용성 점성 단백질이다. 장 내 미생물이 균형이 잡혀 있는 상태에선 글루텐 분해가 잘 이뤄지지만, 이 균형이 깨지면 설사, 복통, 복부 팽만 등 장 질환으로 이어진다. 특히 빵, 국수, 튀김 등 밀가루 음식 섭취가 늘어나면서 글루텐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해 장 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변지영 대표는 “글루텐을 분해할 수 있는 안전하고 효과가 높은 기능성 제품을 요구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시중의 다른 글루텐 분해 효소와 구별되는 점은 한국의 발효 젓갈에서 동정 분리한 토착 미생물을 사용해 한국인에게 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연구에선 토착 미생물에서 만든 글루텐 분해·소화 미생물로 글루텐 분해를 약 80%까지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6월 공동으로 특허를 출원했으며, 조만간 제품으로 상용화할 예정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해 질병을 빠르게 진단하는 개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우리바이옴은 마이크로바이옴이 포함된 대변을 분석해 대장암을 진단하는 키트를 개발 중이다. 기존 대장암 진단은 대장 내시경 등 침습적 방법 혹은 대변 면역 화학 검사 등 비침습적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비침습적 방법은 비용 대비 낮은 민감도와 특이도가, 대장 내시경은 정확하지만 높은 비용과 번거로움이 한계로 꼽힌다. 따라서 간편하고 저비용이면서도 대장 내시경에 준하는 민감도와 특이도를 갖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진단 기법이 떠오르는 추세다.

최준엽 우리바이옴 전무는 “NGS 분석으로 대장암과 관련된 바이오마커를 선별해 대장암 진단 키트의 임상적 성능을 평가 중이다. 현재까지 민감도 91퍼센트, 특이도 73퍼센트로 긍정적인 결과를 얻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제노포커스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의 만성 질환 치료제를 핵심으로 개발하고 있다. 특히 염증성 장 질환에 있어서 기존의 약이 해소하지 못하는 부분을 미생물을 통해 보완하는 것이다. 반재구 제노포커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장염 치료용 의약품으로 허가된 미생물 중 후보군 3종을 발굴했고, 그중 하나가 염증성 장 질환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동물 실험에서 입증했다”라고 말했다.

1인자 없는 마이크로바이옴, 시장 선점하려면?

이날 콘퍼런스에서 산업계는 국내 높은 규제가 마이크로바이옴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산업은 규제에 막혀 좋은 기술이 있어도 제품화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김윤근 MD헬스케어 대표는 “한국이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에선 상당한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 이 기술들이 하루빨리 제품화되어 바이오 강국으로 앞서나갈 수 있도록 정부의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최준엽 우리바이옴 전무도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대장암 진단 기술을 2020년 초 개발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인허가 과정에서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라며 “신의료 기술 평가 등 규제가 하루빨리 완화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주연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팀장은 “지난 7월 발표된 ‘의료 기기 분야 규제 혁신 및 산업 육성 방안’에 따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질병 진단 역시 면제 대상”이라며 “의료 패러다임이 정밀 의학으로 옮겨가면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기술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도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평가할 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개발에 대한 정부 지원도 확대되는 추세다. 최진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생명기술과 서기관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개발에 대한 지원이 2016년 19억 원에서 2017년 56억 원, 그리고 올해는 92억 원으로 늘었다. 2019년도에는 총 103억 원이 지원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최 서기관은 “유럽은 기초 연구를 기업이 주로 맡으면서 처음부터 산업 수요에 맞게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한국도 유럽과 같은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마이크로바이옴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업계의 노력도 요구됐다. 김지현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는 “글로벌 시장을 따라잡으려고 과도하게 응용화에만 초점이 맞춰질까 걱정스럽다”라며 “사상누각이 되지 않으려면 기초 연구가 늘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Kateryna Kon/shutterstock]

    정새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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