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의료계 “탁상공론 행정”

44명의 사망자를 낸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이후 병원, 의원에 소방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소방법 개정안이 발표됐으나 의료계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소방청은 지난 6월 27일 거동 불편 환자 등이 이용하는 30병상 이상 병의원급 의료 기관에 스프링클러 등 소방 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화재 예방, 소방 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령(소방시설법)’을 입법 예고했다.

의료 기관은 그간 병원 규모에 따라 스프링클러 설치 여부를 결정했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바닥 면접 합계가 600제곱미터 이상인 모든 병원급 의료 기관은 스프링클러를 의무 설치해야 한다. 단 600제곱미터 미만 병원급 의료 기관과 새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기 어려운 기존 의료 기관은 간이 스프링클러를 인정한다.

대한중소병원협회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방시설법 강화로 인한 일선 중소병원의 고충을 토로했다. 정영호 대한중소병원협회 회장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천정 해체, 물탱크 설치 등 대규모 공사가 장기간 이뤄져야해 사실상 공사 기간 동안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중소병원협회에 따르면, 회원 병원 211개 건물 중 병원 소유가 아닌 임대 건물 병원은 13퍼센트인 28개다. 정영호 회장은 “임대 건물에서 운영 중인 병원은 소유주 승인 및 입주자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스프링클러 설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영호 회장은 “100병상 이상 병원의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은 최소 5억 원 이상, 정식 스프링클러 설치에는 10억 원이 든다”며 “일선 병원의 안전한 진료 환경 구축을 위한 충분한 재정적 지원, 설치 기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16일 ‘소방청은 병의원에 직접 스프링클러 설치하고 입원 환자 보호 조치하라’ 성명을 발표하고 이러한 입법 예고가 “의료 기관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규제만 강화하려는 탁상공론 행정의 전형”이라며 즉각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면 일주일 이상 병원을 폐쇄해야 한다”며 “통원 치료 환자, 입원 치료에게 건강상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환자와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의료 기관이라는 인식을 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의협은 “여러 사업 직종이 들어와 있는 상가 건물에 병의원만 별개로 소방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화재 예방과 피해 최소화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의협은 “실효성 있는 결과를 생각한 소방시설법이라면 병의원뿐만 아닌 병의원이 입점해 있는 건물 전체를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의협은 소방청에 ▲ 소방시설법 입법 예고를 당장 취소할 것 ▲ 설치 비용, 공사 기간 중 의료 행위 중단에 따른 손해 비용을 100퍼센트 정부가 지원할 것 ▲ 타 업종에 소방시설법을 소급 적용해 임대인에게 피해를 준 사례가 있는지 공개할 것 등을 요구하며 “개정 법안을 강행할 경우 사유 재산 침해 행위로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소방청이 입법 예고한 이번 소방시설법은 오는 8월 8일까지 국민참여입법센터(opinion.lawmaking.go.kr)를 통해 찬반 의견을 받는다.

[사진=Komsan Loonprom/shutterstock]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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