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빅 데이터 안 되는 이유? 죄수의 딜레마!”

[주장] 최병욱 연세의료원 영상의학과 교수

죄수의 딜레마. 죄수가 서로 협력하면 모두 이익을 얻지만, 한 명이라도 배신하면 받을 피해 때문에 협력하지 않아 양쪽 다 파국에 이른다는 이론이다. 의료 빅 데이터 역시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5일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과 대구테크노파크 주최로 열린 디지털 헬스케어 소프트웨어 포럼에서 최병욱 연세의료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의료 빅 데이터 활용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의료 정보에 대한 고정적인 사고방식(마인드 셋)을 꼽았다. 의료 정보를 ‘소유’해야 한다는 개념을 ‘공유’로 전환하지 않으면, 인공지능(AI)의 연료가 되는 빅 데이터 활용도 요원해진다는 의미다.

AI는 진단 영역에서 사람이 인지할 수 없는 특징을 판별해낼 수 있다. 일례로 구글 AI는 망막 신경이 다른 신경과 접점을 이루는 부분을 캐치해 망막 이미지만으로 성별, 나이 등을 비교적 정확하게 판별해냈다. 200여 장 중 극소수의 특징만 파악할 수 있었던 영상 데이터에서도 새로운 진단 영역이 개척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아직 신생아 단계인 AI 기술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질 높은 의료 정보를 많이 학습시키는 작업이 필수다.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면 아무리 학습해도 보편적인 결과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 의료 정보 전자화가 잘된 곳 중 하나다. 하지만 병원마다 서로 다른 형식으로 분산돼 있고, 개인정보 규제 등으로 분산된 정보를 하나로 모으기가 요원한 상황이다.

이에 개인 정보 보호법 개정 등 규제 개선에 대한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지만, 최병욱 교수는 규제보다 마인드 셋을 근본적인 문제로 꼽았다. 자신들이 소유한 의료 정보를 공유하면 도리어 권리를 뺏길 수 있다는 병원의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지적한 것.

최병욱 교수는 “AI가 로켓의 기술이라면 의료 빅 데이터는 연료다. 병원이 의료 정보를 공유해 빅 데이터화하면 굉장히 유용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소유한 정보를 제3자가 쓰게 하지 않겠다는 마인드가 있다”라며 “의료 정보 가치가 커질수록 병원이 더 정보를 소유하려는 폐쇄적인 태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뷰노, 루닛 등 AI 질환 진단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인 국내 스타트업들이 충분한 구력을 갖고 있음에도 아직 대박을 터뜨리지 못한 이유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의료 빅 데이터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병원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비협력적인 태도를 보일수록 역설적으로 의료 정보 가치는 떨어진다는 것이 최병욱 교수 설명이다. 최 교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일일이 환자들의 동의를 받아 10만 건 이상의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공개했다. 이렇게 미국 등이 질 좋은 빅 데이터를 확보해 온다면 국내 의료 정보는 점점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며 “우리도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소유에서 공유로의 인식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최병욱 교수는 빅 데이터 확보 이후에도 AI 기반 소프트웨어 정확도를 판단할 수 있는 표준 데이터 세트 구축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최 교수는 “다른 병원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정확도를 보이는지를 판단하는 보편성, 사람과 비교했을 때 판독의 퀄리티를 따지는 정확성,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치명적인 질환도 파악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안전성, 세 가지 기준으로 AI 소프트웨어를 판단할 수 있는 표준 테스트 데이터 세트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진=TippaPatt/Shutterstock]

    정새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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