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치료제, 황우석 트라우마 극복해야”

유전자 치료제는 난치병 등 현대 의학이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풀어줄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유전자 특정 부위를 편집할 수 있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개발되면서 유전자 치료제 연구에 가속도가 붙었다.

현재 미국은 유전자 치료제 임상 시험 승인 신청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2022년까지 40개 유전자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스콧 고틀립 FDA 국장이 “유전자 치료제가 향후 몇 년 안에 제약 산업의 주류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장담한 이유다.

유전자 치료제가 주목받는 만큼 대중의 거부감도 크다. 안전성 우려와 더불어 윤리적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전자 치료제 기술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발전된 기술에 따른 제도 정비에 앞서 유전자 치료 기술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생명 윤리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2일 미래의료인문사회과학회는 연세대학교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에서 유전자 치료에 대해 산-학-연의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유전자 치료제 기술의 빠른 발전에 비해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제도와 인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유전자 치료에 열린 미국, 닫힌 한국

유전자 치료 및 연구에 대한 국내 규제는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 현재 생명윤리법(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배아 등에 대한 유전자 치료를 원천 금지하고 있다. 인체 내에서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는 연구에 대해서는 희귀병 등 특정 질병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또 연구 대상이 배아일 경우, 임신 목적으로 이용하고 남은 배아 중 보존 기간(5년)이 지난 배아만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박지용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아에 대한 유전자 치료는 대부분 국가가 금지하고 있지만, 연구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 편이다. 반면 한국은 연구의 범위, 대상 등이 극히 제한돼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은 유전자 치료 연구에 있어서 별도의 전제 조건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연구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연구 대상자를 보호하기 위해 위험도에 따라 생명윤리위원회(IRB, 기관윤리위원회) 및 생물안전위원회(IBC) 등의 심의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전자 치료제 허가에서도 미국은 신속 승인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FDA는 신속 심사 프로그램(RMAT) 대상 범위를 유전자 치료제로 확대했고, 그 일환으로 국내 기업인 바이로메드의 유전자 치료제도 RMAT에 지정될 수 있었다.

미국이 유전자 치료제에 개방적일 수 있는 이유는 한국과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박수헌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미국은 환자의 접근성 보장을 중요시한다. 임상 시험을 마친 유전자 치료제는 환자에게 투여될 권리가 있다고 본다. 콜로라도주에서 처음 통과된 ‘Right to Try(시도할 권리)’법은 단순히 환자의 접근성을 넘어 하나의 사회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황우석 트라우마 극복이 우선

관점의 차이를 떠나 현재 생명윤리법이 유전자 편집 등 신기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치료와 연구의 경계가 모호해 법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다. 나아가 생명윤리법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지용 교수는 “현재 생명윤리법 내에 이질적인 내용이 너무 많이 포함돼 있다”며 “생명윤리법은 조직법 성격에 맞춰 원칙을 선언하는 선으로 두고, 유전자 치료는 유전자 개별법 등으로 각자의 특성에 맞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전자 치료와 연구의 범위 확장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토론에 참여한 대다수는 “유전자 치료 기술이 우려할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유승신 바이로메드 박사는 “유전자 치료제와 유전자 편집 기술은 동일하지 않으며, 유전자 편집 기술이 사람에게 실제 적용되려면 많은 기술적 허들을 넘어야 한다”며 “몇십 년 후 벌어질지 아닐지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중적 공포다. 한국은 유전자 연구에 대한 거부감이 특히 심한 편이다. 2005년 황우석 사태의 충격이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탓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황우석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현철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황우석 사태가 생명윤리법에 굉장한 트라우마로 작용했다”며 “유전자 치료 연구를 확대하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국회 발의되고, 관계 부처도 우선 심사제를 마련 중이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가 정확한 지식 없이 대처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김연수 충남대학교 신약전문대학원 교수도 “유전자 치료제를 제대로 알려 공포를 없애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다.

[사진=CI Photos/Shutterstock]

    정새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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