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향수도 유전자 따라…EDGC가 이끕니다.”

[이성주의 바이오 열전 ①] EDGC 이민섭 대표

26일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2층 홍보관. 코스닥 상장 행사에 참석한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 Eone Diagnomics Genome Center)의 이민섭 공동대표(52)는 전광판의 시초 가격 9000원이 곧바로 9890원, 2분 뒤 1만1350원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꿈은 이루어진다!”를 되뇌었다.

EDGC는 차세대 염기 서열 분석(NGS) 기술을 바탕으로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지난해(2017년) 매출 32억 원에 51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지만 이날 성공적으로 기업을 공개했다. 이 회사의 공모 희망가는 4700~5700원이었지만 기관 투자가의 수요 예측 결과 6500원으로 확정됐으며 시초가 9000원에 23.33% 오른 1만1100원으로 마감했다.

이민섭 대표는 거래소 방명록에 “글로벌 최고의 기업이 되겠습니다!”라고 썼다. 그는 “훌륭한 후원자와 동반자를 만나서 지금까지는 꿈을 이루었고, 이제 새 차원의 꿈을 이룰 차례”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이 대표는 엔지니어가 꿈이었지만 외동아들이 순수 학문의 길을 가길 원하는 아버지의 꿈에 따라 경희대학교 생물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다가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 유학 갔다가 공학도의 꿈을 되찾았다. 그는 타고난 ‘기계돌이’이였다. 중학교 때 최연소로 아마추어 무선사 자격증을 땄고 고등학교 때는 청계천을 돌며 컴퓨터 부품을 사서 조립할 정도였다.

UCLA 생명공학과 석사 과정에서 가슴 속에 묻어둔 전자공학과의 꿈을 되살렸다. 그곳에서는 말미잘, 지렁이의 특성이 아니라 컴퓨터 분석이 가장 뜨거웠다. 생물이라는 재료를 다루는 컴퓨터 공학이었다. 스승인 샌드라 샤프 교수는 한국에서 아들과 딸을 입양했기에 서울에서 온 제자를 유별나게 챙겼다. 이 대표는 서울에서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LA에서는 자연스럽게 최우수 학생이 됐다.

이 대표는 LA의 시티오브호프국립병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GP)의 산 역사를 생생히 지켜봤다.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라틴어로 ‘속도’라는 뜻의 셀레라(Celera)를 설립해 이전에 학자들이 10년 걸리던 작업을 3년 만에 해결하는 것에 가슴이 뛰었다. 그는 유전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단기 목표로 삼았다.

이 대표는 하버드 대학교 의과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으며 제노믹스가 유망 산업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2000년 셀레라에 이어 유전체 분석 분야 2위 업체였던 제네상스에 취업했다.

“그야말로 꿈의 세계였습니다. 수백 대의 컴퓨터가 진용을 갖춘 생명공학 회사…. 신나는 환경에서 미친 듯이 연구에 매달렸지요.”

이 대표는 2006년 벤처 기업 시쿼놈에 스카우트됐다. 그곳에서 인종 간 유전체의 변이와 다양성에 대한 논문을 ‘사이언스’에 발표해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침(針)을 이용하지 않고 태아의 유전병을 진단하는 ‘비침습 산전 진단(NIPT)’을 개발하는 팀을 이끌었다.

“그 무렵 NGS가 시장의 고갱이로 떠오르는 겁니다. 유전체를 병렬로 분석하면서 속도가 획기적으로 당겨졌고 그동안 불가능했던 사업이 가능해졌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대표는 2010년 마침내 자신만의 회사를 설립했다. 이름은 진단(Diagnosis)과 유전체 연구(Genomics)의 합성어 ‘다이애그노믹스.’ 그는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유전체를 분석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유전체를 데이터 센터 안에 넣은 셈입니다. 염기 서열은 알루미나와의 협업을 통해서 해결하고 우리는 해석 서비스에만 집중했지요.”

이 대표는 2012년 인텔과 공동 연구를 통해 염기 서열 분석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서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유전체 분석에 24시간이 걸렸는데, ‘마(魔)의 12시간 벽’을 깨고 11시간 만에 분석을 마친 것. 이 ‘사건’은 그에게 삶의 전기(轉機)를 마련해줬다.

삼성증권에서 미국의 우량 벤처 기업을 발굴하던 신상철 팀장이 기사를 보고서 찾아온 것. 둘은 만나자마자 뜻이 통했다. 신 팀장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미국에서 20여 년 지내며 부모를 모시지 못한 미안함을 가슴에 담고 있었던 이 대표에겐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신 팀장은 서울의 제약 회사 사장을 연결해서 투자 기회를 마련해줬다. 몇 번의 실패 끝에 2012년 여름 적임자가 나타났다. 당시 83세의 이철옥 이원의료재단 회장이었다.이 회장은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을 도와 ‘길병원 신화’를 만들고 나서 진단 검사 전문 기업을 세운 개척자적 기업가. 이 회장은 이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반색했다. 이 대표는 이원의 막강한 의료 네트워크가 날개를 달아줄 것을 기대했다. 이 회장은 샌디에이고에 찾아와서 3박4일 머물며 사업 구상을 나눴다. 그리고 2013년 5월 합작 기업을 설립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80대 중반에 벤처 기업을 설립한 이 회장님이 보여줬지요. 84세의 벤처 기업 공동대표! 89세인 지금도 매일 출근합니다. 거동이 불편하고 눈과 귀가 어두워졌지만 보청기 낀 귀로 비서가 읽어주는 서류 내용을 검토합니다. 저와는 몇 시간씩 함께 대화하면서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합니다.”

두 사람을 연결해준 신 팀장은 그해 말 삼성증권을 박차고 나와 벤처 기업에 합류했다. 신상철 공동대표는 회사 조직 구성과 자금 유치, 기업 공개 등에서 뛰어난 경영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EDGC의 현재 주 수입 서비스는 NIPT. 임부의 혈액에 있는 미세한 유전자를 분석해서 태아의 유전병을 예측한다. 기존의 양수 검사가 임부와 태아에게 위험할 수도 있지만 NIPT는 안전하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질병 예측 상품을 다양화하고 소비자 유전체 시장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25명 가운데 1명이 ‘조상 분석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자신의 혈통이 어떤지 궁금증을 유전자 분석으로 해결하는 것이죠. 유전자에 따라서 식단, 운동법, 화장품을 제안하고 심지어 와인이나 향수 등도 맞춰주지요. 올해 렉서스의 유전자 맞춤형 승용차 캠페인은 유전자가 감성 마케팅에도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햇빛 민감도에 따라 유리창의 선탠 농도가 다르고, 카페인 대사 능력에 맞춰 커피 컵을 넣는 컵홀더의 크기가 달라져요. 좋아하는 냄새를 파악해서 출고될 때 차의 방향제를 맞춰주기까지 합니다. EDGC는 한국콜마와 함께 유전자 맞춤형 화장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서비스 영역을 계속 확대할 예정입니다.”

이 대표는 지난 4월 ‘게놈 혁명'(엠아이디 펴냄)이라는 책을 펴냈다. 유전병, 친자 감식, 범죄 데이터 등 우리나라에 퍼져 있는, 유전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절감하고 유전자의 긍정적 이해를 위해 펴낸 것.

“한 달은 미국의 샌디에이고, 한 달은 송도에서 일하다보니 잠을 잘 못 이룹니다. 시차 적응 유전자가 예민한 탓이겠죠. 그래서 새벽에 깨서 일을 하다가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개월 동안 두 나라에서 썼는데, 다행히 베스트셀러가 돼서….”

EDGC는 우리나라의 유전자 분석 서비스에 대한 규제 때문에 해외에 먼저 눈을 돌렸다. 미국에서 허가를 받고 해외로 수출하거나 국내에 도입하는 방식을 택한 것. 미국, 싱가포르, 인도 등 50여 개 나라에 서비스를 수출하고 있다. 올해엔 매출 117억 원에 20억 원 영업 손실이 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내년(2019년) 348억 원 매출. 37억 원 이익으로 손익 분기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이 꿈꾸었던 것들을 하나 둘씩 실현해왔다. 코스닥 상장의 꿈도 이뤘다. 마지막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유전자 분야의 세계 최고 기업을 일군다는 꿈! 자신의 모델이자 지적 동료인 크레이그 벤터 박사처럼 유전체학과 바이오 산업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사진=EDGC]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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