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가더라도 사람은 살려야!” 생체 폐 이식 선구자

[대한민국 베스트 닥터 ③]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

“부디 이 아이가 다시 숨 쉬게 해주십시오.”

지난해(2017년) 10월 21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 동관 3층. 흉부외과 박승일(59) 교수는 수술대에 누운 열아홉 살 화진을 내려다보며 기도했다. 폐 이식 팀 의료진 50여 명은 수술실 4곳에서 박 교수의 수술 시작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폐고혈압 탓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는 딸에게 부모의 폐 일부를 이식하는 대수술. 평일에는 수술실을 구할 수 없어 토요일을 잡았다.

이 수술은 법에서 허용하지 않아 행여 잘못되면 의사들이 감옥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4번 수술실에서 아버지의 오른쪽 폐 아랫부분, 7번 수술실에서 어머니의 왼쪽 폐 아랫부분을 떼어냈고 중간 방에서 처리한 뒤 5번 수술실의 딸에게 이식하기까지 8시간이 걸렸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회복 과정이라는 큰 산이 남아 있기에 안도의 숨을 쉬기엔 일렀다.

수술대에 누운 화진은 3년 전 봄 등굣길에 숨이 찼지만 살을 빼라는 신호로만 알았다. 몸이 붓고 갈수록 숨 쉬기가 힘들어 병원에 갔다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진단을 받았다. 폐동맥 고혈압. 원인도 모른다고 했다. 심장과 폐 사이에 피가 잘 흐르지 않아서 심장 기능이 뚝 떨어졌다. 2016년 7월 심장이 멈춰 저승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다시 심장이 멈추면 살 확률은 20%.

화진이 살 수 있는 길은 뇌사자의 폐를 이식받는 것. 뇌사자 폐를 얻기 위해선 4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절반은 기다리다가 숨진다. 게다가 화진이는 이식 대기자 등록 때 폐의 기능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이유로 대상자가 아니었다.

부모는 딸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다가 ‘생체 폐이식’을 알아냈다. 1993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됐고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었지만 국내에선 불법이었다. ‘장기 이식법’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뗄 수 있는 장기에 폐를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 의사는 단지 수술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고, 한 사람이라도 숨지면 사형까지 언도받을 수 있다고 했다. 화진의 부모는 청와대 신문고에 글을 올렸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폐 전부라도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나와 아내의 폐 일부를 딸에게 주는 생체 폐 이식을 허락해주세요.”

그러나 2주일 뒤 “안타깝지만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부모는 한편으로 일본 교토대병원의 히로시 다테 교수에게 수술을 의뢰했다. 마침 그곳엔 서울아산병원 소아흉부외과 윤태진 교수가 있었다. 윤 교수는 고압 산소 장치를 개발해 연탄가스 중독 환자 수십만 명을 구한 고(故) 윤덕로 서울대 교수의 아들. 윤 교수는 박승일 교수에게 생체 폐이식 수술이 가능한지 물어왔다.

박승일 교수는 화진을 살릴 자신이 있었다. 군의관 시절 생체 폐이식 논문을 처음 본 뒤 이 분야 연구를 계속 해왔고, 스승인 손광현 교수와 숱한 동물 실험을 했었다. 뇌사자 폐 이식의 뛰어난 성공 노하우도 뒷받침하고 있었다.

박승일 교수는 회의를 소집했지만 의사들조차 주저했다. 법을 어겨야 한다는 점과 혹시 잘못 됐을 때 병원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정부에 비공식으로 문의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안 된다”는 회신. 법무법인에 문의해도 “위법성 조각사유가 없다”며 비슷한 대답. 위법성 조각사유란 정당 방위, 긴급 피난 등 법을 어겼어도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이유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살릴 수 있는 생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화진 부모의 안타까운 얼굴과 절규가 맴돌았다. 박 교수는 ‘임상 연구’란 길을 찾았다. 병원 임상연구심의위원회(IRB)에 문의해서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됐으니 법적 문제를 고려해서 시행하라”는 답변을 얻었다. 의료윤리위원회에서도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 박 교수는 같은 병원 출신 바른미래당 박인숙 의원에게 입법 발의를 부탁하고, 질병관리본부 윤리위원회에 가서 법 개정의 불가피성을 알렸다. 대한이식학회와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이사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지지를 호소했다.

박승일 교수는 의사들의 7차 회의에서 논의를 멈추게 하고 입을 열었다. “19살 여자 아이가 숨이 차서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우리는 의사다. 환자가 살려달라고 하는데…. 법이나 윤리보다 생명이 더 소중하지 않은가?”

수술을 결정하자 화진의 상태가 악화됐다. 얼굴은 잿빛이었고 복수가 차서 배는 부어올랐다. 다리는 젓가락처럼 가늘었고 계속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화장실에 가는 데 3, 4번을 주저앉았다 일어서야만 했다. 입원부터 시키기로 했다. 호흡기내과와 심장내과 등의 의료진이 수술 전까지 화진을 지키는 일에 매달렸다.

수술 준비 중일 때 ‘특종 기자’로 유명한 ‘중앙일보’ 신성식 기자로부터 취재 전화가 왔다. 박 교수는 “수술 사실이 공론화되면 화진이가 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며 기사화를 말아달라고 설득했다. 신 기자는 생명을 위해 기꺼이 특종을 포기했다.

화진이는 수술 6일 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뗐다. 창 밖에는 부모가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날은 화진의 20번째 생일이었다. 오랜만에 받은 스마트 폰에서는 수술 받은줄 모르는 친구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날 화진은 병실에서 박 교수로부터 생일 케이크를 받았다. 어쩌면 없었을지 모를 스무 번째 생일 파티였다.

그날 밤 박승일 교수는 호흡기내과 홍상범 교수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숨이 안 찬다고 합니다.” 홍 교수가 화진이를 데리고 복도를 함께 걸었는데 “숨이 안 찬다”며 환한 표정을 짓자 곧바로 카카오톡 ‘폐이식팀 단톡방’에 올린 것. 축하의 글이 이어졌다. 박 교수는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화진은 성탄절 무렵 환한 얼굴, 생생한 몸으로 퇴원했다. 박 교수의 수술이 성공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마침내 생체 폐이식을 허용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대 본과 2학년 때 심장 수술 명의였던 이영균 교수의 특강을 듣고 흉부외과의 길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어린이 심장 수술을 주로 하다가, 어른 심장을 거쳐 폐식도(肺食道)를 전담했다.

박 교수는 이정신 전 병원장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폐 이식을 연구했다. 그는 2008년 폐섬유증 환자(55)에게 첫 뇌사자 폐이식을 시도했다. 수술은 잘됐다고 생각했지만, 8개월 뒤 환자는 세상을 떠났다. “그 환자는 수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떠났습니다. 제겐 스승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환자의 부인이 나중에 고마움을 표시할 때의 모습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박 교수는 2010년 폐동맥혈관육종 때문에 폐 기능을 잃은 환자(49)에게 두 번째로 폐를 이식해서 지금까지 편히 숨 쉬게 했다.

2011년 봄부터 폐 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물밀듯이 몰려왔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폐 기능을 잃은 아이들이었다. 13명을 연거푸 수술했지만 수술 실패가 한 건도 없었다. 그는 이 무렵 폐 이식 환자를 집중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박 교수팀이 10년 동안 폐 이식을 받은 환자 41명을 분석했더니 3년, 5년 생존율이 선진국 병원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흉부외과 교과서도 따로 쓰게 만들었다. 혈액을 빼내 몸 밖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산소를 넣는 체외막형산화기(에크모)를 부착한 환자에게 폐를 이식하는 것은 금기 사항에 가까웠다. 폐 이식의 대가인 교토대병원 다테 교수도 회의적 반응이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에크모가 없으면 숨을 거두는 아이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박 교수는 에크모를 달아도 폐 이식이 가능하며 수술 성공률에 차이도 없다는 것을 수치로 입증했다.

박 교수의 폐 이식 수술은 정규 수술이 끝난 오후 4~5시에 시작한다. 다른 병원에서 떼어낸 폐를 전달하는 응급차가 병원 바로 부근 2, 3분 거리에 도착하면 환자의 폐를 떼기 시작해서 새벽 4, 5시까지 수술에 매달린다. 그리고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선다. 몸은 고달프지만 쉴 수가 없다. 화진이처럼 박 교수의 손길이 필요한 환자들이 두근두근, 맘껏 숨을 쉴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서울아산병원, 박승일]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http://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광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