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도 속았다? 살인, 강간해도 끄떡없는 의사 면허

[인터뷰] 의사 출신 변호사 박호균의 고발

수면 내시경을 받고 있던 환자를 성폭행한 의사, 병원에서 취급하는 약물로 사람을 죽인 의사, 특가 이벤트로 거액의 돈을 챙기고 나서 폐업하는 병원 의료진.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른 의사’라고 답할지 모른다.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이들 모두는 ‘사기, 강간, 사체 유기 등 형사 범죄로 면허가 취소되지 않은 의사’다.

일반 시민 다수는 이런 범죄를 저지른 의사나 가수 고(故) 신해철 씨 의료 사고, 배우 한예슬 씨 의료 사고 등의 “중대 과실을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런 시민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의사 면허 취소를 둘러싼 의료법 개정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코메디닷컴’은 지난 4월 ‘의사의 형사 범죄와 면허 규제의 문제점 및 개선 방향 심포지엄’ 국회 토론회를 통해서 의사 면허 규제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를 만나봤다. 박 변호사는 의사 출신 변호사일뿐만 아니라, 고 신해철 씨 의료 사고에서 유족 측 변호를 맡았다.

– 박 변호사는 13년차 변호사이지만 의사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의사 면허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가요?

“의료 사고 사건을 처음 맡았을 무렵에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저 주어진 일을 해결하기에만 급급했죠. 그러던 어느 날 사건과 관련해 다른 변호사와 얘기하면서 ‘어? 변호사법과 의사법이 많이 다르네? 좀 이상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떤 직업을 어떻게 규제하느냐는 기본적으로 그 직업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헌데 막연히 같을 것이라 여겼던 두 직역의 차이가 너무나 컸던 것이죠.”

– 직업에 대한 규제가 해당 직업에 대한 관점을 갖고 있다니,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병원에 찾아온 사람들이 가운 입은 의사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아이를 의과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직업이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닙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그만큼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고 존경받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법은 이러한 사회적 인식, 직업 윤리를 일차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 면허 규제에 관한 의료법의 윤리적 수준은 아주 형편없습니다. 변호사, 공인 회계사, 교수 등 전문직으로 묶이는 직업군은 기본적으로 범죄 유형에 관계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되는 등 면허 규제가 매우 엄격합니다. 이에 비해 의사는 소위 의사보다 ‘못 하다’고 하는 직업보다도 직업 윤리 수준이 떨어집니다.

한마디로 의사는 살인, 강간, 강제 추행, 배임, 절도, 강도, 음주운전, 뺑소니를 저질러도 의사 생활에 문제가 없습니다. 병원 밖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알몸 상태의 환자를 수술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과연 이것이 맞는 건지, 그 점이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국민들이 정말로 ‘의사는 수술만 잘 하면 돼’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문제 제기를 할 필요도 없겠지요.”

– 의사의 범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때마다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지만 정작 그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박 변호사는 지난 국회 토론회에서 “판사도 의사 면허 규제의 허점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하셨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요?

“고 신해철 씨 의료 사고를 변호할 당시 실형이 선고되리라는 예측은 했습니다. 다만 실형과 별개로 피의자의 면허가 취소될 수 있을 것인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죠. 아직도 많은 법조인이 법조인 본인과 마찬가지로 의사가 금고형 이상의 처벌만 받으면 면허가 취소된다고 오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그런 판결이 나왔습니다. 당시 판사는 ‘죄질이 중해 의사직을 유지할 수 있는 가벼운 형을 내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므로 금고형을 선고한다’고 말했습니다. 제 우려대로 판사님은 피의자에게 금고형을 내리면 다른 전문직과 마찬가지로 자격이 유지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덧붙여 판사님은 ‘이제 의사 일을 못 하니 감옥에 가두는 건 가혹하다’며 집행 유예를 내려줬습니다. 피의자 입장에서는 감옥도 안 가고, 집행 유예도 나오고, 심지어 의사를 계속 할 수 있는데도 판사가 의사를 못 한다고 대신 말해주니 그야말로 쾌재를 부르며 집에 돌아갔을 겁니다. 그렇게 피의자가 새로운 병원에서 일하며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 그때의 판결이 박 변호사님에게는 의사 면허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인가요?

“그렇습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2016년 하반기부터 언론 등에 의사 면허 규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적 관심사가 컸던 고 신해철 의료 사고의 판사도 관련 법을 잘못 알고 있으니 일반 국민이 이러한 사안을 제대로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죠.

지난 2000년에 의료법 내 의사 면허 규정이 지금과 같이 개정됐는데, 2000년 이전에 관련 법을 마지막으로 본 법조인이라면 규제가 이렇게 다르다는 점을 아마 모를 겁니다. 대부분의 전문직 관련 법 조항이 강한 면허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법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상식선이라 생각하고 이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최근 다른 의사 출신 변호사와 통화하면서 이런 내용을 얘기했더니 ‘뭐? 의사가 진료 중에 강제 추행을 했는데도 의사를 계속 할 수 있어?’라고 반문하더군요. 의료 관련 변호사도 관련된 사건을 맡지 않는 이상 관련된 사항을 잘 모르고, 이를 아는 변호사는 주로 의료 기관을 자문하는 변호사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사 면허 규제의 허점이 공론화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박호균 변호사는 2000년에 개정된 의료법을 ‘악법’이라 칭한다. 약 20년 전 우리나라 의료법은 대상 범죄의 제한 없이 금고형 이상의 선고를 받은 경우 임의적 면허 취소가 가능했다. 그러나 2000년 1월 의료법 개정으로 면허 규제 대상 범죄가 낙태, 의료비 부당 청구, 면허증 대여, 허위 진단서 작성, 리베이트 취득 등 일부 범죄에만 한정됐다. 2000년 당시 의료법 개정 이유는 “국민의 의료 이용 편의와 의료 서비스의 효율화를 도모한다”는 것이었다.

– 최근(4월 27일)에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차원에서 의사 면허 규제를 공론화하는 국회 토론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의사 면허의 허점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국민 청원도 고려해보고, 언론 인터뷰도 진행해 봤지만 공론화를 위해서는 역시 심포지엄 형태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꼬박 준비했던 토론회이기도 합니다.”

– 공론화를 위한 논의 과정에서 특히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의료법 문제와 관련해 공개된 국내 자료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외국 사례도 찾아보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의료 윤리의 문제를 보려면 결국 우리나라의 분석 자료를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대학원 공부를 해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어떤 직역이든 직업 윤리와 관련된 논문이 굉장히 많습니다. 보통은 남들이 먼저 다 써버려서 쓸 주제가 없을 정도인데요. 의료법에 관해 일부 문제 제기를 한 대학원 논문을 확인하려 해봤지만 끝내 그 자료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의사 단체 내부에서는 이런 논의를 하고 있겠지요. 한편으론 ‘의사가 자신들과 관련된 문제를 의도적으로 덮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 대한변호사협회의 의사 면허 규제 토론회 주최 소식에 대한의사협회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의사 단체에서는 “의사 면허를 규제하면 의료인이 앞으로 중증 환자를 기피하는 방어 진료를 하게 될 것”이라 반박하고 있습니다.

“의사 면허를 규제한다고 중증 환자를 기피할 사람이라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면 안되겠죠. 기관차를 운행하는 기관장, 배를 운행하는 세월호 선장도 업무상 사람을 다치게 하면 업무상 과실 치사로 처벌을 받습니다. 업무상 리스크를 고려하면 비행기 파일럿, 열차 기관장, 선박 선장 모두 위험한 직업이지만 사람들이 무섭다고 그 직업을 꺼리지는 않습니다.

보통 형법은 고의범과 과실범 중 과실범을 잘 처벌하지 않습니다. 만약 과실로 남의 차를 부수게 되면 민사상으로 배상을 하지 형사 처벌을 하진 않아요. 다만 생명과 관련된 과실, 방화, 폭발물 설치 등 6개 유형 과실에 대해서는 형법상으로 처벌하자고 우리나라 형법전에 규정돼있어요.

현재 우리나라 의사들이 주장하는 것은 직업 특성상 위험이 높으니 형법 규칙에서 자신을 제외해 달라는 겁니다. 그럼 비행기 파일럿도 세월호 선장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겠죠. 업무상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위험이 발생할 수 있으니 사람이 죽어도 처벌을 제외해 달라고 말입니다.”

– 대한변호사협회 토론회에 참석한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는 “의사 단체는 의사에 대한 징계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며 “변호사 단체의 주장은 복지부 대신 의사 단체에 징계권을 주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의사 면허 규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보건복지부가 아닌 의사 단체가 자율 징계권을 가져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자주 다룹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누가 징계 권한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그 직업군을 규제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범죄에 대해 면허 규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징계권을 의사 단체의 회장이 가질지, 복지부가 가질지, 대통령이 가질지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의사 면허 규제 공론화는 국민들이 어떤 의사에게 진찰 받을 것인지 우리가 가진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문제입니다. 의료 행위는 의사들이 일방적으로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들은 2000년 의료법 개정으로 슬그머니 바뀌어버린 권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지금 일선에서 활동하는 의사들도 나이를 먹으면 자라나는 젊은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습니다. 결국 의사의 손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점에서 일선 의사들도 국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 살인 의사를 처벌하자는 여론에 반응해 지난 3월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들이 의사 면허 규제 조항을 손본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김상희 의원실 등이 제출한 의료법 개정안은 진료 중 성범죄, 진료 중 업무상 과실 치사를 면허 규제 사유에 추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현행 의료법에 면허 취소 사유 몇 가지를 덧붙이는 것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개정안은 살인, 강도 등 흉악 범죄와 진료 현장 밖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에 대해 여전히 면허 규제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국회에서 이러한 개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 자체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더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개정안은 의사가 진찰실 밖에서 저지른 강력 범죄에 대해서도 면허 규제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앞으로 의사 면허 규제 문제 공론화를 위해 어떤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신가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위원으로서 지난 국회 토론회 의견을 반영한 의료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는 6월 13일 지방 선거 이후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에 보완된 의료법 개정안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혹여 지방 선거 결과로 국회 구성이 바뀌거나 의원실에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이번 기회에 법조인으로서 의견을 제대로 정리해두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된 의견을 들고 뜻이 맞는 개인끼리라도 다시 목소리를 내봐야겠지요.”

[사진=Elvira Koneva/shutterstock]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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