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폰에 미친 중독자, 엄벌로는 치료 못해

수사 당국과 사법 기관의 ‘엄벌주의 원칙’만이 적용되는 마약 중독자에게 국가 차원의 재활 도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국회에서 ‘한국 마약 정책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서영교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 활동을 하며 마약 유통에는 거대 조직과 권력이 결부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마약을 사용했던 개개인이 다시 마약을 사용하지 않도록 재활과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섹스 오르가즘의 120배 자극’으로 뇌 이상 발생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마약 중독에 관한 뇌과학적 연구 사례를 발표했다. 천영훈 원장은 “향정신성 중독 물질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며 “알코올, 아편 같은 억제제 물질은 하루만 끊어도 엄청난 금단 증상이 나타나는 반면 필로폰(히로뽕) 등 흥분제 물질은 약을 맞아도 ‘뒤끝’이 없다”고 표현했다. 초기 필로폰 경험자는 투약 후 금단 증상이 없다는 생각에 ‘언제든 내 마음대로 끊을 수 있구나’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

문제는 이 ‘뒤끝 없는’ 필로폰이 단시간에 엄청난 양의 도파민을 분비하도록 뇌의 보상계를 자극한다는 점이다. 천영훈 원장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은 일상생활에서 섹스 오르가즘 때 가장 많이 분비된다고 알려져 있다”고 했다. 천 원장은 “필로폰은 이보다 120배 많은 도파민을 6시간 연속으로 분출시킨다”며 “그야말로 하룻밤 동안 뇌를 뒤흔들어 버리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천영훈 원장은 “마약 투약 사범의 재범률이 높은 이유는 형량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재투약으로 인한 결과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뇌가 망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천 원장은 “마약 중독 문제는 엄벌주의 원칙의 ‘히로뽕 근절’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며 “이는 예방, 재활 정책을 통해 국민 건강, 보건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단순 투약 사범과 공급 및 제조 사범 구분 필요”

박진실 변호사(법률사무소 진실 대표)는 “우리나라의 마약 사범은 1만4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통계상 잡히지 않은 마약 경험자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는 파악할 수 없다”고 했다.

박진실 변호사는 “마약 사범 통계에 단순 투약 사범과 공급 및 제조 사범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마약을 한두 차례 투약해 본 사람과 직접 마약을 들여오거나 파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은 채 마약 사범에 모두 같은 편견을 적용한다는 것.

박진실 변호사는 “마약 투약범이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법원 혹은 교정 단계에서 약을 끊은 사람은 대체로 판단력이 정상 상태로 회복되기 때문에 조금만 도움을 주면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필로폰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많은 투약범이 수사 당국의 엄벌주의 원칙, 전국민의 낙인으로 결국 자살 혹은 심장 마비로 생을 마감한다”고 전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심종옥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 팀장은 자신을 ’10년 간 마약을 했던 중독 회복자’라고 소개했다. 심종옥 팀장은 “한국 마약 정책이 ‘사람 중심’이 되기 위해선 어떤 점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회복 이정을 겪고 있는 중독자가 말을 꺼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라고 답했다.

심종옥 팀장은 “오랜 기간 마약을 하다 스스로 중독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각종 의료 기관, 치료 시설을 방문했지만 ‘어떻게 약을 끊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해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고 말했다. 심 팀장은 “많은 사람이 마약을 택하기 전에 이미 심각한 정신 상태에 처해 있을 것”이라며 “절박한 상황에 처한 중독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재활하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사진=FussSergei/shutterstock]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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