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자발적 음주’ 늘었다

매년 입학 시즌에 맞춰 대학생의 잘못된 음주 행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정작 강요보다는 자의에 의한 음주가 늘어나는 대학생 음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은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각종 대학에서 새터(새내기 배움터) 행사를 진행 중이다. 많은 신입생들이 입학 후 신입생 환영회, 봄 학기 MT, 축제 등 연이은 술자리에 불려 다닌다. 반복되는 사고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의 음주는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개인적 일탈로 여겨지고 있다.

제갈정 인제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절주 정책이 잘 이뤄진다면 각종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음주 사고를 대학생 개인의 문제 행동으로 치부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생 폭음, 특정 시기 아닌 ‘일상’

우리나라 대학생은 전체 성인과 비슷한 음주 빈도를 보이는 데 반해 1회 음주량과 고위험 음주율(1회 평균 음주량이 남자 7잔, 여자 5잔 이상이며 주 2회 이상 음주하는 비율)이 특히 높은 편이다.

연세대학교 보건정책 및 관리 연구소 연구팀은 최근 우리나라 82개 대학의 대학생 502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수행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의 음주 빈도는 ‘월 2~4회’ 마시는 남학생이 38.1%, 여학생 40.8%로 가장 높았다. 전체 성인 집단에서도 ‘월 2~4회’ 음주하는 빈도가 높게 나타났다.

1회 음주량은 달랐다. 남학생 44.1%, 여학생 32.8%가 술자리 한 번에 ’10잔 이상’ 마신다고 응답해 남자 성인의 23.2%가 ‘7~9잔’, 여자 성인의 49.5%가 ‘1~2잔’을 마신다고 한 전체 성인 집단과 큰 차이를 보였다. 또 전체 대학생의 10명 중 2명(20.2%)이 고위험 음주를 하고 있었다.

한편, ‘가장 술을 많이 마신 시기’는 MT 등 단체 행사가 아닌 일상적인 선후배, 친구 간 친목 모임(28.7%), 시험 종료 후(21.6%)인 것으로 나타났다. ‘강요에 의한 음주 경험’에 ‘전혀 없다’고 응답한 사람 역시 68.3%에 달해 과거와 달리 단체 행사에서 음주를 강요하는 경우가 적었다.

조근호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과장은 “요즘 젊은 층이 술을 마시는 주된 이유는 다름 아닌 ‘술이 맛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순욱 대구가톨릭대학 의과대 교수는 “대학생들이 술자리를 갖는 이유가 ‘외부의 강요’에서 인간관계 등을 위한 ‘자발적인 참여’로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 음주 문화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잘못된 술버릇, 중독으로 이어져

과도한 음주는 흡연과 함께 남녀불문 만성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금연 정책과 달리 절주를 위한 국가 정책은 많지 않다.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행한 ‘국가별 알콜과 건강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절주 정책은 알콜 광고에 대한 제재, 음주 연령 제한 등에 한정된다.

건강보험관리공단의 ‘국민 건강 증진 종합 계획’ 절주 정책도 청소년 보호, 중독자 관리 목적에 편중되어 있다. 청소년들이 대학 입학 전까지 술을 접하게 하지 않으려 할 뿐, 정작 ‘처음 술을 배우는 시기’인 대학생을 위한 보호 정책은 없는 것.

대학생 때 든 술버릇은 평생의 음주 습관으로 이어져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종은 한국중독연구재단 카프성모병원 센터장은 “자주 필름이 끊기거나 술로 인해 인간관계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전형적인 예비 중독자의 특성”이라고 했다.

20대 음주 고위험군 환자는 치료 효과가 좋아 대체로 회복이 빠른 편이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20대에 나타나는 음주 부작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 치료 시기를 놓친다. 하종은 센터장은 “중증 환자가 된 30, 40대에야 첫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절주 문화 위한 사회적 인식 필요해

‘음주 빈도는 줄고, 음주량은 늘어난’ 대학생 음주 문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 사회적 요인을 원인으로 꼽았다. 음주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 취업 스트레스 해소법의 부재, ‘혼술’ 문화와 음주 마케팅 증가 등이 이에 해당된다.

전문가들은 70대 노년자의 음주 문제만큼이나 20대 음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한 추세라고 강조했다. ‘혼술’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후 혼자서 즐기던 술버릇이 문제되어 치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조근호 과장은 “음주는 20·30대의 가장 주요한 사망 원인인 자살과도 관련 있다”며 “자살자 가운데 3분의 2가 취한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흡연과의 전쟁’처럼 절주 문화 정착을 위한 사회적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음주에 관대한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퍼져 있어 대학생을 위한 절주 정책 마련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박병주 대한보건협회장은 “음주를 허용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좋은 절주 정책을 내놓아도 효과가 크지 않다”며 “절주 정책을 고심하는 기관에서조차 ‘폭탄주 문화’가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제갈 정 교수는 “대학 내에서 음주 문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적어도 대학 당국에서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다”며 “조직 문화에 따라 기업의 음주 문제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처럼 대학에서도 절주 문화 형성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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