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국내외 제약사 뒷거래 전격 조사…”올 것이 왔다”

“암암리에 역지불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 간의 일종의 담합인 ‘역지불 합의’ 행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귀띔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공정거래위원회는 26일 국내외 제약 바이오 업계의 특허권과 제네릭 의약품을 둘러싼 뒷거래 관행에 대한 실태 점검에 전격 착수했다.

역지불 합의

역지불 합의는 신약을 개발한 다국적 제약사가 이익을 위해 제네릭 의약품을 출시한 국내 제약사에게 경쟁 의약품을 제조 및 판매하지 않도록 하는 대신 신약 판권 등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2011년 다국적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동아제약에 이미 출시된 복제약(제네릭)을 시장에서 철수하고 향후 경쟁 의약품을 제조·판매하지 않는 대가로 신약 판매권 등 경제적 이익을 지급했다.

GSK가 개발한 신약 조프란(성분명 온단세트론)은 대표적인 항구토제로 2000년 당시 국내 항구토제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47%을 차지했다. 2위 제품인 카이트릴과 함께 시장 점유율 90%를 상회한 것. 온단세트론 성분 항구토제 시장에서는 조프란이 복제 약 출시 전 신약이므로 100%의 점유율을 가졌다.

동아제약은 1998년 GSK의 제법과는 다른 온단세트론 제법 특허를 개발해, 특허 취득 후 복제약 온다론 제품을 시판했다. 당시 GSK는 제법 특허에 따른 독점 판매권을 갖고 조프란을 국내 판매하고 있었으며, 특허 만료일은 2005년 1월 25일이었다.

동아제약은 1998년 9월 조프란 대비 90% 가격으로 온다론을 출시했으며, 1999년 5월 조프란 대비 76% 수준으로 가격을 인하하는 등 판매 활동을 강화했다. 이후 GSK와 동아제약 간의 치열한 특허 분쟁이 발생했다.

하지만 GSK와 동아제약은 돌연 특허 분쟁을 종결했다. 동아제약이 출시한 온다론을 철수하고 향후 항구토제 및 항바이러스 시장에서 GSK와 경쟁하지 않는 대신, GSK는 동아제약에게 신약 판매권을 부여하고, 이례적 수준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역지불 합의였다. 이와 관련 GSK와 동아제약은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과징금 27억 원을 부과받았다.

미묘한 입장 차

공정거래위원회는 26일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 국내에 시판된 주요 전문 의약품 시장에서의 불공정 행위 등 공정 거래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한 실태 점검에 나섰다고 밝혔다.

국내 제약사 32개사와 다국적 제약사 39개사가 점검 대상인데 이들 제약사는 6월 말까지 관련 계악서 사본과 공정위의 점검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공정위는 구체적인 위법 혐의가 발견되면 직권 조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공정위 관계자는 “실태 점검 착수는 26일보다 앞서서 진행하고 있는 사안”이라며 “제약사의 점검 자료를 받아 심층 분석해 혐의가 발견되면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 관계자의 입장은 미묘하게 달랐다. 다국적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와 관련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공정위에서 자료 요청이 왔다”면서 “우리 회사는 그런 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구체적인 언급을 꺼렸다.

반면 국내 한 제약사 관계자는 “공정위에서 조사한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 우리 회사는 그런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 간에 아직도 은밀하게 그런 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코프로모션을 많이 하는 회사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행 약가 제도의 부작용?

업계 일각에서는 제약 정책의 부작용이 역지불 합의 같은 불공정 행태를 양산한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반값 약가 제도로 불렸던 약가 일괄 인하 정책과 허가 특허 연계 제도 등 현행 약가 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현행 국내 약가 제도는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의 특허가 만료되더라도 제네릭 의약품이 등재되지 않으면 약가 인하가 안 된다. 그것도 제네릭 의약품이 4개 이상 돼야 반값 약가가 적용되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가 제네릭 의약품 등록을 지연시키거나 막으면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은 이미 2012년에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남희섭 변리사(법무법인 지향)는 리베이트 환급 민사 소송 기자회견에서 “반값 약가 제도의 허점과 특허 관련 제도 등 제도적인 요인에 의해 뒷거래가 조장되고 있다”며 “현행 약가 제도에서는 신약의 특허권이 만료되더라도 제네릭이 실제로 등재되지 않으면 약값이 인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역지불 합의는 허가 특허 연계 제도에 의한 소송 과정에서 주로 발생한다”며 “제네릭 의약품을 개발한 국내 제약사가 특허권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독점 판매권으로 인한 특허 도전 동기가 생기고 이를 우려한 신약 개발사가 역지불 합의를 제안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출처=Africa Studio/shutterstock]

    송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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