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증후군, “이젠 주부만의 일 아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떡국을 먹으며 덕담을 나누는 설날이 다가왔다. 하지만 가족과 친지를 보는 게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다. 이른바 ‘명절증후군’ 때문이다. 명절증후군이란 명절에 겪는 스트레스와 갈등으로 육체적, 정신적 아픔을 호소하는 현상을 말한다. 머리와 가슴이 짓눌리고 답답하며 소화 불량이 오거나 불안과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특히 시댁에서 차례 음식 준비와 뒤처리 등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주부들이 명절증후군을 앓는 대표적인 계층이다. 실제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불안장애 등 화병으로 진료 받은 환자 99만 3417명 중 여성 환자는 약 65만 명이었다. 이는 34만 명인 남성 환자 수보다 2배 정도 많은 수치다. 그 중 50대 여성 환자 수는 14만 명이나 되었다. 설과 추석 이후에는 화병 환자들이 급증했다. 3월이 18만4007명으로 가장 많았고, 9월은 18만3744명, 10월은 18만3436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명절증후군은 전 계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가 어려워지고 청년실업이 심화되면서 미취업자나 미혼자들이 겪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취업은 했느냐.”, “누구는 어디 대기업 갔다더라.”, “언제 취업해서 언제 결혼하느냐.” 등 친척 어른들의 잔소리에 상처받고 심한 우울증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고향에 내려가 가족들과 보내는 연휴를 보내는 대신 취업 공부를 하거나 홀로 서울에 남아 있는 것을 선호하는 새로운 풍속도 생겨났다.

취업에 성공하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규모나 연봉 수준을 물으며 타인과 비교하거나 출산은 언제 하느냐며 종용하는 말들도 상처가 된다. 과거 한 취업포털 직장인 1,9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명절 스트레스를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69.2%가 ‘있다’고 답했다. 또 친인척에게 연봉과 회사 규모 등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는 사람도 40%가 넘었다.

시어머니나 남편도 예외는 아니다. 전통적인 가족 문화를 따르려 하지 않는 며느리와 부딪히거나 둘 사이를 중재하면서 갈등과 싸움이 생기고 심하면 가정이 파탄 나는 사례도 있다. 법률 전문가에 따르면 설과 같은 명절에는 전후로 해서 이혼뿐 아니라 상속에 관한 법률상담 문의도 늘어난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명절증후군은 윗사람과 아랫사람 간의 서열이 엄격한 수직적 문화, 가족의 일에 간섭하는 전통적 가족 문화 등에서 발생한다. 사회는 점차 평등주의적이고 개인주의화되는 데 이런 변화에 발맞추어 가족을 타인으로서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심리학 전문가는 “과거 가부장적 사회에선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의 훈육에 대해 헌신하고 수용하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이젠 친밀감과 동등한 관계가 우선시 되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명절증후군이라는 현상은 명절이 끝나면 점차 사라진다. 이는 치료하고 변화시켜야할 것은 몸과 마음에 생긴 증상이 아니라 고질적인 병폐를 만드는 문화구조일 수도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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