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성 암 정복 기대주 ‘정밀의료’의 기대와 한계

 

게놈 프로젝트로 인간 유전체의 비밀스러운 문이 열리면서 보건의료 패러다임은 정밀의료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정밀의료는 진단부터 치료에 이르기까지 환자 개인의 유전적, 환경적, 생물학적 특성 등을 고려한 맞춤의학을 뜻한다. 특히 우리나라를 포함해 정밀의료를 추진하는 각국 정부가 우선 실현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질환이 유전성 암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한계와 도전과제도 분명하다.

환자치료에 있어 유전자 및 분자 검사는 보편화돼 있고,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유전성 암과 관련된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다면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유전자 상담이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지난 수년간 부인과 암의 분자적 표적치료는 급속도로 발전해 왔는데, 같은 부인과 암이라도 다양한 유전적 변이에 의해 발생한다는 증거가 계속 밝혀지고 있다.

데이비드 탄 싱가포르 국립대학암연구소 교수는 15일 국립암센터 주최로 열린 정밀의료 관련 심포지엄에서 “BRCA1, 2의 돌연변이 등으로 기능이 상실되면 상피성난소암 발병가능성이 BRCA1은 40~50%, BRCA2는 20~2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난소암의 조직형별로 이러한 돌연변이의 빈도와 유형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BRCA1/2의 돌연변이 상태에 따라 각 환자에게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했다.

BRCA 유전자 변이는 유전성 유방암과 난소암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부터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연구(KOHBRA)’를 시작해 유전성 유방암의 유전자 변이 유병률을 파악하고, 위험도 예측모델을 개발한 상태이다. 학계에 따르면 이렇게 유전성 암 발생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100개가 넘는다.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유전자 패널 검사’는 가능해졌고, 이미 제품화돼 있다. 공선영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으로 유전성 암과 관련된 복합적인 유전자 검사나 전체 단백질 구성정보를 담고 있는 엑솜 검사가 가능하지만, 아직 규제나 질 관리, 임상 적용을 위한 표준화, 환자 대상 설명 이슈 등이 남아 있다”고 했다.

부인과 암인 유전성 유방암 및 난소암은 BRCA1/2 돌연변이 외에 다른 흔한 유전자 돌연변이, 호르몬, 출산경험, 라이프스타일 등의 위험요인과도 많이 관련돼 있다. 안토니스 안토니오 캠브리지대 교수는 “증가하는 유방암 및 난소암 병인을 알기 위해서는 유전적 요인뿐만 아니라 비유전적 요인의 데이터도 필요하다”며 “이를 고려한 위험도 예측모델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데 현재 대규모 국제적 코호트 컨소시엄 등을 통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유전성 암의 치료율을 높이려면 조기진단, 유전상담, 발생위험이 높은 가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덕우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제대로 조직된 유전성 암 등록소의 역할이 크다”며 “등록소에서는 새 환자의 유전자 검사 결과, 증상 발현 전에 유전자 진단을 통한 가족 구성원의 위험도 감시 등을 등록하게 되는데, 병원 유전자 클리닉의 긴밀한 협조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폐암 표적치료 연구의 하나로 지난 2013년부터 ‘폐암 유전체 스크리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고이치 고토 일본국립암센터 교수는 “현재까지 210개 기관, 2천8백여 명의 폐암 환자들이 등록됐고, 14개 제약사와 협력해 산학 프로젝트로 진행 중”이라며 “이러한 전국적 유전체 스크리닝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표적 유전자 변이가 효과적으로 분석됐고, 암 정밀의료 실현을 촉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에서 흔히 발생하는 암의 상당수는 감염이나 독성화학물질과 같은 발암물질 노출 때문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학계는 아시아에서 빈발하는 암의 적절한 치료법 개발을 위해 유전학적 기전과 함께 환경으로 인해 DNA 사용법이 바뀌는 후성유전학적 기전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유전체학, 후생유전학, 단백질체학 등은 폐암의 원인과 예방, 조기진단, 분류, 치료법 선택, 새로운 임상시험 설계 등에 활용된다”며 “유전체학과 단백질체학을 결합한 오믹스는 폐암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이해와 표적치료의 개발 등 확대된 스펙트럼에 기여해 왔지만, 일반적인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고 했다.

이렇게 유전자 기술의 혁신으로 암 치료법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현재 약리학적 기술로는 모든 암 돌연변이에 대한 표적치료제를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브래드 넬슨 벤쿠버 BC암협회 딜리연구소 교수는 “신항원을 가지는 암세포를 인식하는 T세포를 활용하는 면역치료가 희망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치료법의 개념은 동물모형 연구와 초기 임상시험에서 증명됐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정밀의료 연구개발에 들어간 우리나라는 국립암센터를 통해 크게 4가지 분야의 정밀의료 추진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지연 국립암센터 암정밀의료추진단장은 “정밀의료 임상시험 확대와 약제 내성 극복, 비침습적인 유전자 분석법 및 새로운 진단 기법 개발, 국가적 차원의 암 빅데이터 구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강현 국립암센터 원장은 “정밀의료에 기반한 발생 위험 예측 및 조기진단법 연구, 난치성 암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해 진정한 의미의 개인맞춤형 의료를 실현해 나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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