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속 거미 ‘거미공포증’ 극복에 도움

두려움을 일으키는 대상에 점진적으로 노출되면서 공포감을 극복하는 치료방법이 있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공포증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 중 하나다. 최근에는 가상현실 속 거미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방법을 통해 ‘거미공포증(arachnophobia)’을 개선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신과전문의나 심리치료사들이 공포증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노출 치료’다. 공포증 환자가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에 조금씩 노출됨으로써 공포를 극복해나가는 방법이다. 극기 훈련처럼 의도적으로 두려운 상황에 직면시켜 이에 적응토록 만드는 방법이다.

단 포비아(혐오증)로 발전한 상태에선 이런 방법이 오히려 심신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또 이런 방식으로 치료가 가능한 환자라 할지라도 병원이나 심리치료실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환자가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과 마주하도록 만드는 환경을 항상 조성할 수는 없다. 가령 전쟁 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 폭탄이 터지는 상황을 재현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인지심리학자들은 가상현실(VR)을 이용해 공포증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을 연구 중에 있으며 실질적인 치료에 적용하기도 한다. 사람의 뇌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상세계에 쉽게 속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가상현실을 통해 흑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도록 하자 실험참가자들의 인종 편견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또 가상현실 속 청중 앞에서 발표 연습을 한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공개 연설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드는 결과를 보였다. 가상현실 체험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최근 ‘생물심리학(Biological Psychology)저널’에 새로운 논문을 발표한 연구팀은 거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거미공포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가상현실 테스트를 진행했다. 우선 실험참가자들에게 진짜 거미를 보여준 뒤 가상현실 속 영상을 통해 또 다시 거미 이미지에 노출시켰다.

실험 결과, 두 가지 중요한 지점이 포착됐다. 하나는 거미공포증 환자들이 거미의 크기를 지나치게 크다고 착각한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같은 착각이 가상현실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줄어든다는 점이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 연구팀은 거미공포증 환자 41명과 이 공포증이 없는 사람 20명을 모집해 공포증 수치를 측정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크기가 7.5㎝인 칠레산 독거미를 상자에 넣은 뒤 3m 떨어진 거리에서 실험참가자들에게 거미를 보도록 한 뒤 그 크기를 가늠해보도록 했다. 또 독거미가 든 상자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 확인한 다음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수치를 점수로 매겼다.

실험참가자들은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헤드셋을 쓴 다음 실제 거미와 유사한 형태의 거미 4마리를 보는 실험에도 참여했다. 대략 30㎝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곳에 위치한 거미를 5분간 보는 실험이다. 이 같은 실험을 총 4회 반복됐고 2주가 지난 뒤 실험참가자들에게 또 다시 실제 거미를 보여줬다.

그러자 양쪽 그룹 모두 첫 실험에서는 거미의 크기를 실제보다 큰 것으로 평가했고, 특히 거미공포증 환자들은 이 같은 경향이 훨씬 강했다. 그런데 2주가 지난 뒤에는 거미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이전보다 평균 66% 거미의 크기를 작게 생각했고, 공포증이 없는 그룹은 앞선 평가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거미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거미의 크기를 지나치게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밝힌 첫 번째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또 가상현실에 노출되는 방식만으로도 거미 크기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두려움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단 두려움이 감소하는 기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의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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