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 넘어 앞으로 30년 ‘정밀의료’ 시대로

 

지난 30년간 세계 보건의료계를 뒤흔들었던 키워드가 ‘게놈(genome)’이라면 앞으로 30년은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에 초점이 모아질 전망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잠겼던 유전체 정보가 풀리고, 이를 해석해 의학적으로 적용하는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이른바 미래형 맞춤의학인 정밀의료에 정부와 기업의 역량이 결집되고 있다.

정밀의료는 맞춤형 예측의료 서비스라 할 수 있다. 대규모 인구집단 코호트와 건강정보기록(EHR), 게놈 해독 기술, 생물학적 정보 분석 기술, 빅데이터 사용 기술, 모바일 헬스케어가 모두 어우러진 차세대 의료접근법이다. 즉 유전체와 진료정보를 고려한 개인 맞춤의료에 건강과 생활환경, 습관 등의 코호트 연구 분석을 기반으로 한 사전적 건강관리를 통합한 서비스다.

한-미 양국, 정밀의료 공동연구 = 정밀의료는 지난 해 초,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연두 교서를 통해 이슈가 됐다. 오바마 정부는 올해에만 2억2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2600억원을 정밀의료 연구개발에 투자하겠다고 밝혀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2014년부터 시작해 내년까지 영국인 10만명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프로젝트에 5천억원 이상을 쏟고 있다.

미국은 국립보건원(NIH) 주도로 지난해 5월 ‘정밀의료계획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가동하고 있다. NIH는 코호트 구축, 국립암센터(NCI)는 암유전체 발굴과 확대 연구, 식품의약국(FDA)은 개인정보보호 기반 오픈소스 플랫폼 구축, 보건사회복지부 산하 국가헬스케어조정관실(ONC)은 상호운영성 표준을 각각 개발하고 있다. 전체 예산의 60%는 코호트 구축에 소요된다.

지난해 대통령 방미 중 미국과 정밀의료 공동연구 실무협의체를 구축한 우리나라도 올해 정밀의료 연구개발에 시동을 건다. 정밀의료 연구개발 추진위가 구성돼 내일(8일) 첫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정부와 공공기관, 민간 전문가 등 총 17명으로 구성된 추진위는 산하에 코호트와 오믹스(omics, 유전체학+단백질체학), 진료정보, 빅데이터 등 8개 실무작업반을 둘 계획이다.

정밀의료 추진을 위한 밑거름은 확보돼 있다는 평이다. 전 국민 건강정보 데이터베이스와 국민의 2%에 해당하는 1백만명에 대한 국제적 수준의 코호트 데이터가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구축돼 있다. 국립보건연구원은 DNA와 조직, 혈액 등 인체유래물 정보 67만명분을 국가 바이오뱅크 네트워크를 통해 추가로 확보하고 있다.

정밀의료 연구개발 추진위원장인 방문규 보건복지부 차관은 “정밀의료 연구개발 추진위가 미래 정밀의료 산업화 기반을 마련하는 시발점”이라며 “국가적 연구역량을 결집하고, 전략적, 종합적 연구개발을 통해 맞춤치료 등 미래 정밀의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내외 민간시장, 불붙은 유전체 분석 서비스 = 정밀의료의 핵심은 게놈 프로젝트에서 발전된 유전체 분석이다. 모든 유전자 정보의 염기서열을 해독해내 질병에 대한 유전적 위험을 알려주는 것이 핵심이다. 할리우드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방암 발병 위험이 높은 BRCA 보인자라는 것을 알고 미리 유방절제술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003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된 이래 유전체 정보를 해독하는 비용과 시간은 대폭 줄어들었고, 국내외 민간 시장에서는 개인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주는 서비스 경쟁에 불이 붙었다. 최윤섭 성균관대학교 휴먼ICT융합학과 교수는 “모든 개인이 유전정보를 가지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구글벤처스가 투자해 지난 2006년 설립된 스타트업인 ‘23andME’은 99달러, 우리 돈으로 10만원만 내면 6~8주 만에 120개 질병의 위험도와 21개 약물에 대한 민감도, 보인자, 개인 특성 등을 분석해준다. 지난해 6월에 1백만명 분석을 돌파했고, 이 중 80%의 고객으로부터 데이터를 기부 받아 대학, 기업 등과 유전학 공동연구도 진행 중이다.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 미국의 대표적 바이오기업인 제넨텍 등 14개 회사 및 대학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2008년 설립된 미국의 ‘패스웨이 지노믹스(pathway genomics)’도 비슷한 곳이다. 이 업체는 지난 1월에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ES)에서 ‘OME’란 앱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이 앱은 개인 유전정보와 애플의 헬스케어 플랫폼인 ‘헬스키트’, 웨어러블 업체인 핏빗, 개인GPS의 데이터를 모아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이 분석한 맞춤형 건강조언을 제공해준다.

세계적 ICT기업인 애플과 IBM도 유전체 분석 서비스에 참여해 대학, 병원 등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폰 기반 의료연구 플랫폼인 리서치키트를 출시한 애플은 여기서 취합한 데이터를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해 연구자들이 DNA 관련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IBM도 클라우드 기반의 게놈 애널리틱스를 개발해 세계적 암연구소들과 협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유전체 분석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997년 설립된 마크로젠이 대표주자다. 마크로젠은 2009년에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와 공동연구로 한국 30대 성인남성의 유전자 분석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하기도 했다. 영아의 DNA칩을 이용해 염색체를 분석하는 ‘게놈 스캐닝’과 산전 유전체 검사 서비스인 ‘패스트(feast)’를 런칭했다.

지난해에는 분당서울대병원에 ‘아시안 정밀의학 센터’을 설립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마크로젠은 이곳에 ‘게놈 데이터 뱅크’를 구축하고, 서울대와 공동연구 중인 ‘아시안 10,000 게놈 프로젝트’ 등을 통해 확보한 다양한 유전체 분석 정보를 분당서울대병원의 의료정보와 통합해 정밀의료를 실현해 나갈 계획이다.

최근 아시아 19개국이 참여하는 비영리 컨소시엄인 ‘게놈아시아 100K 이니셔니브’에 공동연구대표로 참여한 마크로젠 서정선 회장은 “자체적으로 추진 중인 아시안 10,000 게놈 프로젝트는 물론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유전체 분석 프로젝트를 주도해 한국이 ‘아시아 정밀의학 이니셔티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라젠 계열사인 이텍스 제약과 2010년 합병해 설립된 테라젠이텍스도 유한양행과 함께 60만개 DNA를 해독해 특정 질병의 발병 가능성을 알려주는 ‘헬로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염기서열분석 장비회사인 일루미나의 해독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성공했다. 유전체 분석의 정확도는 몰론, 비용 대비 데이터 생산성도 두 배로 높였다.

테라젠이텍스 관계자는 “글로벌 선진 기업의 기술을 그대로 제공하는 평준화된 서비스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축적된 실험과 분석 노하우를 접목해 더욱 가치 있고 차별화된 고객 서비스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업체의 게놈해독팀은 한국 호랑이, 한국 독수리, 4500년 전 모타동굴에서 발견된 아프라카인의 유전체를 잇따라 분석해 주목받았다.

유전체 기반 생명공학 기업인 디엔에이링크도 4만 건의 한국인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 800여개 병의원을 통해 질병 감수성과 약물 부작용 및 효능, 개인 특성, 유전성 질환 등 최대 150개에 이르는 개인 유전체 분석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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