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은 국부 원천… 앞으로 5년 지켜봐 달라”

바이오헬스에 국가적 역량이 결집되고 있다. 바이오헬스 세계 7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정부의 기치 아래 병원은 물론, 바이오와 제약을 필두로 한 산업계에는 혁신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낯설던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라는 말이 의료산업계 전반에서 회자되고, 이를 구현하려는 움직임은 분주하다. 혁신의 첨단에서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는 개척자(pioneer)들을 만나 ‘바이오헬스 코리아’의 미래를 조망해본다. [편집자주]

의약계 파이오니아 (1) / 유한양행 남수연 전무

혁신적인 신약 개발은 미래 국부를 창출할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 받는 제약산업의 꽃이다. 정부도 힘을 모으고 있고, 치료제 개발을 위해 임상 의사들의 제약업계 진출도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의사 출신인 남수연 유한양행 전무는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어젖힌 유한양행의 연구개발(R&D)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 중앙연구소장으로 부임했으니 이곳에서만 7년째다.

논리적인 성격의 남 전무는 원래 수학을 좋아했다. 이 때문에 연세의대에 진학한 뒤 검사수치로 판단하고 연구하는 내분비내과를 택했다. 전문의가 된 뒤 임상강사로 4년간 일하다 지난 2000년 조교수가 됐지만, 임상의사로서 좋아하는 연구를 하기에 당시 실험실 환경은 지금처럼 보편화돼 있지 않았다.

이듬해 정부 지원을 받아 포스닥(post doc, 박사 학위 취득 후 연구생)으로 스웨덴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카로린스카 의대에서 연수하면서 글로벌 제약사의 메디컬디렉터(MD)들이 신약 개발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스웨덴으로 건너간 지 반년 뒤 그는 다국적 제약사인 로슈코리아의 MD로 변신했다. 이후 2004년에 BMS로 옮겨 아시아태평양 MD를 지냈고, BMS 미국 본사의 신약개발부서에서 글로벌 MD로 활동했다.

남 전무는 “대학병원에서 내분비내과 교수로서 진료와 실험실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연구 성과와 전문성을 함께 이루려고 분투하던 시절을 간혹 그릴 때도 있다”면서 “국내 임상시험연구 발전과 신약 개발에 기여해 못다 이룬 연구에 대한 열의와 갈망, 환자 치료에 대한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간접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포부와 희망을 가지고 들어선 길”이라고 돌이켰다.

유한양행은 지금까지 신약개발보다 다국적 제약사와 코프로모션(co-promotion)을 통한 의약품 판매에 집중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남 전무 영입은 이러한 유한양행의 체질개선을 예고하는 신호탄인 셈이다. 남 전무는 “면역항암제와 항염증치료제, 내분비대사질환 치료제 등 신약 파이프라인이 괜찮다”며 “앞으로 5년을 지켜봐 달라”고 강조했다.

현재 유한양행이 구축한 신약 파이프라인만 28개에 이른다. 절반에 가까운 13개는 지분 투자를 확대하는 방식 등으로 신약 기술을 도입하는 ‘라이선싱 인(Licensing In)’을 활용해 다양화한 포트폴리오다. 국내외 제약사에서 물질이전 계약이나 공동개발 협약을 통해 들여와 공동 개발하는 라이선싱 인은 일종의 글로벌 소싱이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세계 최대 매출을 기록한 상위 5개 약 중 4개는 라이선싱 인을 활용한 M&A의 결과였다. 

남 전무는 최근 열린 한 바이오포럼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을 기초로 R&D를 진행하기 때문에 현재 신약 포트폴리오의 40% 이상을 라이선싱 인으로 확충했다”며 “신약 개발 성공 여부는 좋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과학적으로 증명해 높은 가치 창출을 할 것인가에 달려있어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산학이 소통하고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신약 개발을 위해 임상2상까지 진행하다 약효와 안전성이 아닌 경쟁력이 낮다는 이유로 전략적으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제품 개발에서부터 인.허가와 제조, 유통, 판매, 가격까지 국가에서 규제하고, 보험 기준에 따라 판매가 제한되는 어려움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남 전무는 “신약이 현재 팔리는 약보다 차별돼야 하는데, 이익산출이 안 된다”며 “약값을 높게 받아야하고 실패에 대한 보상도 있어야하는데 그게 안 된다”고 토로했다.

남 전무는 이러한 신약개발의 성공확률을 향상시키는 접근법을 ‘응용(translation) R&D’로 설명했다. 그는 “혁신적인 신약 개발은 지적 자원과 경제가 집약된 R&D 사업”이라며 “그럼에도 실제 신약으로 허가돼 블록버스터로 성공하는 경우는 10% 미만에 불과하고, 이러한 경향은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여서 글로벌 제약사들은 신약개발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응용 R&D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적극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 전무에게 제약은 오케스트라와 같다. 여러 전문가들이 모인 팀을 아울러야 하기에 지휘자로서의 능력이 필요하다. 시장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신약개발을 위해 아이디어 싸움을 하고, 다양한 팀을 이끌며 주어진 시간 내에 새로운 길을 내며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도전적이고, 흥미진진한 긴 여행”이라고 했다.

제약회사 MD로 변신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남 전무의 안목은 더욱 깊고 넓어졌다. 벤처 캐피탈을 만나 대화하고, 투자자를 설득하면서 어느덧 기업가 정신이 새겨졌다. 그는 “R&D 과제에 대한 가치평가가 가능해졌고, 성공과 실패를 보는 능력도 생겼다”며 “비즈니스뿐 아니라 임상과 경제를 아우르며 기업가와 투자자, 과학자의 눈을 모두 가질 수 있어 날마다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는 게 좋다”고 했다.

남 전무가 이끄는 유한양행 중앙연구소는 지난 달 말, 연세암병원과 손잡고 폐암 신약을 개발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공동연구기관인 ‘유한-연세 폐암중개의학연구센터(CTMC)’가 설립될 예정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둔 GK에셋의 이기윤 회장이 센터 연구기금에 써달라며 10억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남 전무는 앞으로 신약개발이라는 개척되지 않는 길을 추구하는 의사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전 세계 고통 받는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 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한다면 의사로서 이 보다 더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의사들이 많아질수록 환자와 의사, 그리고 기업 모두에게 가치 있는 신약개발의 성공 확률이 비례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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