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큰 병원으로만… 의료전달체계 개선

 

오랜 당뇨병 때문에 산행으로 건강을 관리해 온 60대 후반의 A씨. 갑자기 걷는 데 불편을 느껴 집에서 가까운 의원을 찾았지만, 의사로부터 영양수액만 수차례 처방받았다. 기력이 빠졌다는 진단이었다. 그러나 A씨는 한 달 뒤 집에서 쓰러졌고, 큰 병원에 실려가 말기 폐암 판정을 받았다. 병세를 돌리기엔 늦었지만, 가족들은 영양수액만 처방하며 돈벌이에 급급했던 동네의원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환자들은 아프면 일단 큰 병원부터 찾는다. 밑바닥에는 동네의원의 진료서비스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벼운 병은 동네의원이 관리하고, 중증질환과 연구는 큰 병원이 맡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의료전달체계의 붕괴와 제한된 의료자원의 비효율적 이용을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

정부, “환자 의뢰, 회송수가 시범적용” = 정부는 올해부터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15일,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를 열어 첫 회의를 가졌다. 차의과대 전병률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협의체는 정부와 관련 단체, 학회 전문가, 의료 수요자 등 18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논의는 지난 연말 정부가 발표한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대책의 후속조치로 추진됐다.

우선 협의체는 다음 달 중 ‘의료기관 간 의뢰와 회송수가 시범적용’을 통해 진료의뢰를 내실화하고, 상급병원 환자의 회송을 활성화시키기로 했다. 협력병원 간의 체계적인 의뢰와 환자 회송에 대한 절차와 방법을 정하고, 이러한 행위에 건강보험 수가를 시범적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최우선 보건의료정책과제 중 하나로 협의체에서 논의되는 과제가 실행력을 가지도록 법령 개정, 수가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환자 의뢰와 회송 체계는 없다시피한 실정이다. 의료기관에 동기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큰 병원으로 옮기는데 필요한 요양급여의뢰서는 발급비가 무료다. 표준화도 안 돼 제각각이고, 진단소견도 부실하게 작성되기 일쑤이다. 큰 병원에서 의원으로 회송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 규칙에 회송수가가 규정돼 있지만, 건당 1만원에 불과한데다 강제규정도 아니다.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환자들이 어떤 의료기관을 처음 이용했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의료기관들을 단계별로 거쳤는지에 따라 의료이용의 건강효과와 비용, 의료기관의 생산성은 달라진다. 이정찬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현재 환자 요청에 따라 형식적으로 발급되는 진료의뢰서 양식을 효율적인 치료가 가능하도록 손질하고, 의뢰서에 검사나 각종 진료정보를 첨부하면 보상해줘 의료기관의 참여를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의뢰와 회송 체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진료정보제공료를 제공하고, 진료의뢰로 내원하는 새 환자 비율에 따라 상급의료기관의 입원료를 차등가산해주고 있다. 이정찬 연구원은 “상급의료기관에서 치료가 끝난 환자 중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환자의 회송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진찰료, 서비스 질도 손봐야” = 고질적인 저수가 체계 아래 외래 환자를 두고 동네의원과 병원이 경쟁을 벌이는 현 상황을 풀려면 일차의료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환자 의뢰와 회송 체계만 손본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정찬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진찰의 위상 강화와 교육상담 기능 확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일차의료 중심의 만성질환관리 체제 확립은 향후 지역사회 자원과 연계한 통합의료모델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동네의원의 서비스에 대한 불신도 불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일차의료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서비스 항목과 이에 따른 표준화된 지침의 개발이 요구된다. 세부분과 전문의가 개원가의 다수를 차지하는 기형적 체제에 대한 체질개선도 필요해 보인다. 이수곤 대한내과학회 이사장은 “내과의가 개원하면 감기와 예방접종, 소화기 등 일반적인 것을 다 봐야 하는데, 세부전문의제도로 너무 전문화된 데 익숙해져 있다”며 “이러니 환자들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못 받으니까 힘들다”고 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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