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책임자의 ‘금의환향’… 이래도 되나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변이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메르스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 가운데 0.1%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생긴 기존 바이러스와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Emerging Infectious Diseases’)에 논문을 투고하면서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해 5월말 메르스 국내 첫 감염자에게서 옮은 환자가 14명으로 급증한 상황에서도 “유전자 변이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고수했었다. 메르스는 일반적으로 환자 1명이 0.6-0.8명에게 옮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의 메르스 대응이 총체적 부실투성이였다는 사실을 국제학술지를 통해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정부는 이 사실이 8일 보도되자 “변종이 아니라 전염력이 낮은 변이”라고 진화하고 나섰지만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보건복지부의 대응 부실로 186명이 메르스에 감염되고 1만5000여명이 격리됐다. 38명의 국민은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메르스 전쟁’의 사령탑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국민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긴 패장인 그가 최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화려한 복귀’를 했다. 메르스 사태 부실 대응에 책임을 지고 물러 난지 4개월 만에 500조원의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책임자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그의 임명과 취임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듯 취임식도 연말인 12월31일이었다. 식장 출입문도 봉쇄했다고 한다. 국민연금공단 노조는 “문 이사장 취임을 반대 한다”면서 사옥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2159만 명에 이르고 연금을 받는 사람도 398만 명에 달한다. 연금기금 규모는 500조원을 넘어 세계 3대 연기금에 들 정도다. 평균 수명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행복한 노후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민들이 갖는 연금공단에 대한 기대감이 각별한 이유다.

국민연금 운영은 신뢰가 생명이다. 국민연금을 모든 국민이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기 위해서는 수장의 역할과 도덕성이 가장 중요하다. 연금에 대한 전문성은 그 다음이다. 문 이사장은 그런 점에서 기본부터 낙제점이다.

온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책임감을 느낀다면 긴 자숙 기간을 거치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문 이사장은 장관을 그만둔 지 불과 4개월 만에 공단 이사장 공모에 지원했다. 본인 스스로 판단해 이력서를 냈는지, 아니면 정부 관계자에 떠밀려 지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 이사장은 정부가 강권해도 사양하는 게 옳았다. 그가 염치가 없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염치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정부는 국민의 시선은 아예 무시하고 메르스 사태 때 허둥대던 주무 장관을 국민연금공단의 수장으로 영전시켰다. 이사장 재목이 정녕 문 장관밖에 없었는지 묻고 싶다.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던 ‘책임정치’는 그 어디에도 없는 형국이다. 문 장관을 경질하며 국민들에게 사과했던 정부의 진심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행복한 노후’를 메르스 사태 책임자에게 맡겨야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할 것이다. [사진 출처=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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