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생협 빙자 784억원 편취… 병원 53곳 적발

 

# 종교인인 A씨는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을 설립하기 위해 주변 지인들을 조합원으로 허위 가입시켰다. 이후 조합 명의로 의료기관 3개를 열어 20억원 상당의 요양급여비를 편취했고, 5천만원에 조합을 B씨에게 팔아넘겼다. B씨는 인수한 조합의 이름만 바꿔 운영하면서 109억원의 요양급여비를 편취했다.

# 한의사인 D씨는 처남인 E씨와 공모해 지인의 명의를 빌려 조합원을 구성하고, 자신이 대납한 출자금 3천여만원을 조합원들이 출자한 것처럼 꾸며 의료생협을 인가 받았다. 이를 통해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5억7천만원 상당의 요양급여비를 타냈다.

부정한 방법으로 의료생협을 인가받고 의료기관을 개설한 사무장병원 53곳이 정부 합동단속을 통해 적발됐다. 경찰청은 지금까지 78명을 검거하고, 4명을 구속하는 한편, 이들이 허위 또는 부당 청구한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진료비 784억원을 환수할 예정이라고 15일 밝혔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3월부터 11월까지 의료생협이 개설한 의료기관 67곳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고, 생활소비자협동조합법(생협법) 위반 등 불법부당행위가 확인된 61곳을 경찰청에 수사의뢰했다. 위반 사실이 확인된 대부분은 사무장병원이었다. 지난해 조사에서 의료생협을 빙자해 적발된 사무장병원은 49곳이었으며, 총 1510억원이 환수 조치됐다.

이번에 적발된 사례를 보면 피의자들은 주변 지인을 조합원으로 허위 가입시키거나, 조합원 명부 등을 허위 작성하는 방법으로 의료생협을 인가 받아 여러 개의 병원을 운영하며 요양급여비를 편취했다. 의료생협 인가를 위한 공무원 청탁과 비의료인이 의료생협을 개설해 의료인을 고용한 경우도 드러났다. 의료생협을 불법으로 인가받은 뒤 형식상 지사 설립 협약을 맺어 의료기관을 운영하게 하면서 조합 명의 대여료를 받은 경우도 적발됐다.

지난 1999년 제정된 생협법에 따라 의료생협은 조합원의 건강 개선을 위해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있다. 비영리법인으로 최소 300인 이상의 조합원과 3천만원 이상의 출자금을 내면 의료생협으로 인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 의료생협이 합법적인 사무장병원의 한 형태로까지 인식되는 등 문제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의료생협을 빙자해 개설된 사무장병원이 본인부담금을 과다 징수하고, 부당청구를 일삼는 등 사회적 물의를 빚자 지난해부터 불법 의료생협 개설 의료기관에 대한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경찰청의 합동 특별조사가 시작됐다. 이를 통해 지난 11월 현재 의료생협 개설 의료기관 수는 83개소로 지난해보다 45% 줄었고, 폐업기관 수는 136개소로 51% 늘었다.

사무장병원으로 적발되면 비의료인 사무장과 의료인 개설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고용된 의료인에게는 300만원 이하 벌금과 자격정지 3개월의 처분이 내려진다. 비의료인에게 면허를 대여한 의료인은 면허가 취소된다. 또한 수사결과에 따라 해당 의료기관의 개설 허가가 취소되거나 폐쇄명령이 내려지고, 개설 후 의료기관이 수령한 요양급여는 전액 환수된다.

이러한 사무장병원을 척결하기 위해 무자격자가 불법으로 개설한 의료기관의 폐쇄를 명할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간 법원 판례에 근거해 허가 취소나 폐쇄가 이뤄져 법정 소송에 부딪혔던 상황은 해소될 전망이다. 하지만 부당하게 편취된 요양급여비 환수는 아직까지 녹록치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5년 6월까지 사무장병원 709곳이 부당하게 편취한 요양급여비 청구액은 7400억여원에 이르지만, 환수 금액은 6.8%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의료생협 인가기준 강화를 위한 생협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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