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헬스케어 여파 제약산업 혁신 쓰나미

 

임상시험의 물리적.시간적 장벽 허물어

골든타임은 지금… 사회경제적 기여도 제고

인공지능에서부터 유전자 정보 분석, 웨어러블, 모바일 헬스 등 급속히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이 융합되면서 헬스케어의 판도가 뒤집히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에 앱과 웨어러블 기기가 연동돼 클라우딩 컴퓨팅으로 의료 데이터가 모이고, 병원이 협력하면서 제약산업에도 피할 수 없는 혁신의 ‘쓰나미’를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임상시험의 물리적, 시간적 제약을 무너뜨리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인 노바티스와 오츠카제약이 미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인 프로테우스와 공동 개발한 스마트 알약이 대표적이다. 소화 가능한 센서를 내장한 스마트 알약은 위액과 반응해 미세전류를 발생시키고, 이는 패치에 감지돼 스마트폰과 클라우드에 기록된다.

실제 약을 먹어야만 기록되기 때문에 환자의 복약 순응도를 높일뿐더러 복용정보를 의료진과 보호자가 공유할 수 있다. 제약사는 스마트 알약을 이용해 임상시험 참가자 관리와 데이터의 신뢰 여부를 따질 수 있고, 피실험자의 재택 임상도 쉬워진다. 프로테우스의 스마트 알약은 2012년 미국 FDA 승인, 2010년 유럽 CE마크 승인을 획득했다.

스마트 알약으로 환자의 복약 순응도가 높아지면 의료비 낭비와 환자 사망도 줄일 수 있다. WHO에 따르면 환자의 절반 정도는 처방대로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 잊을 때도 있고, 약물의 부작용을 우려하거나 돈 때문에 약을 끊기도 한다. 미국의 의료연구단체인 뉴잉글랜드헬스케어인스티튜트는 이 때문에 연간 2900억 달러의 의료비가 낭비되고, 연간 350만 번의 입원과 12만5000명의 사망이 초래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화이자도 과민성 방광치료제인 데트롤(DETROL)의 원격 임상을 통해 기존 임상시험과 동등성을 증명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환자를 모집해 스마트폰 일지로 복약 정보를 추적하고, 혈액검사도 원격으로 진행했다. 주기적인 환자 점검도 온라인에서 이뤄졌다. 이미 2007년에 4개월간 환자 600명을 대상으로 위약 대비 효능을 검증했고, 환자들은 임상이 진행되는 동안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사노피 역시 무선 혈당 측정계인 ‘Mendor’를 임상에 도입했다. 이 기기로 혈당 수치 측정과 스케줄을 관리했고, 클라우드에 혈당 데이터를 환자들이 직접 업로드하도록 했다. 환자 모집과 데이터 수집, 동의서 등 모든 과정도 온라인에서 진행했다. 미국의 생명공학기업인 바이오젠은 다발성 경화증 환자의 모니터링에 웨어러블 밴드인 ‘핏비트’를 사용해 고가의 약 효과성을 검증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임상 연구 참여자의 모집과 등록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애플의 리서치킷은 아이폰 센서로 측정한 의료건강 데이터를 플랫폼에 공유할 수 있도록 해 연구 참여자 등록의 물리적, 시간적 장벽을 제거했다. 리서치킷이 발표된 지 24시간 안에 수만 명의 연구 참여자들이 몰렸다. 데이터 수집은 사용자 본인의 동의 아래 진행됐다.

애플은 리서치킷의 초기 버전으로 유방암, 당뇨, 파킨슨병, 심혈관병, 천식 등 5개 질환에 대한 5개 앱을 소개했는데, 스탠퍼드대학과 공동 연구하는 심혈관질환 연구 앱인 ‘myheart’의 경우 하루 만에 1만1천명의 참가자가 등록했다. 스탠퍼드대학의 해당 연구 책임자인 앨런 영은 “기존 방식으로 미국 전역의 50개 병원에서 1년간 모집해야 한다”고 비교했다.

헬스케어에서 크라우드소싱을 활용하면 희귀질환 연구에서도 임상 데이터를 모으기 유용하다. 루게릭병(ALS)은 환자 수가 매우 적은 희귀질환인데, 미국의 환자 SNS인 페이션츠라이크미(PatientsLikeMe)의 온라인 SNS 서비스를 통해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제공한 ALS 환자는 전통적 임상 연구에 참여한 환자보다 9배나 더 많았다. 아스트라제네카, 제넨테크, 악텔리온 등의 제약사들은 페이션츠라이크미의 환자 중심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 투자를 결정했다.

페이션츠라이크미와 같은 크라우드소싱 헬스케어는 기존 임상에서 놓친 부작용을 잡아내는 효과도 있다. 실제 우울증약인 렉사프로를 쓴 환자들이 페이션츠라이크미의 플랫폼에 부작용을 보고하면서 기존 임상연구에서 안 나온 부작용이 보고되기도 했다. 이렇게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에 모아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약사들은 맞춤형 임상정보도 환자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다.

증기기관의 발명에 비유되는 인공지능도 제약사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현재 미국의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 암센터와 엠디앤더슨 암센터, 클리블랜드 클리닉, 메이오 클리닉, 뉴욕게놈센터는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인 ‘왓슨’을 활용해 암 환자 진단과 임상환자 선별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상용화된 유전자 정보 역시 제약사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의사나 병원을 거치지 않고 개인에게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주는 미국의 ‘23&ME’라는 업체는 99달러(약 10만원)만 내면 6~8주 만에 120개 질병 위험과 21개 약물 민감도, 57개 특성을 알려준다. 이 업체는 고객 1백만명 중 81%의 자발적 참여로 유전자 정보를 기부 받아 제약사에 판매하고, 대학병원과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윤섭 성균관대 휴먼ICT융합학과 교수는 지난 26일 열린 한국제약협회 창립 70주년 기념 특강에서 “헬스케어 의료분야에서 쓰나미와 같은 피할 수 없고 부인할 수 없는 변화가 몰려오고 있다”며 “국내 제약산업도 이러한 파도에 올라타려 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실제 미국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펀딩 규모는 지난해 기록적이었다”며 “앞으로 3년이 아주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며, 변화에 대처하는 출발점은 5년 뒤 돌이켜본다면 지난 2014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약산업의 사회경제적 기여도를 따져 봐도 디지털 헬스케어는 시급한 국가적 과제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윤상호 연구원은 “의료비지출은 사망률을 감소시키고, 사망률 감소는 기대수명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존재해 두 가지 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의료비지출이 소득증진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진다”며 “즉 의료비 지출이 소득에 영향을 주고 경제성장에 기여한다”고 분석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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