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실인… 눈으로 본 것 못 떠올리는 사람 있다

 

공원에서 코끼리를 봤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긴 코, 큰 귀, 거친 회색 피부 등을 가진 코끼리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려내는 과정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시각장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편을 경험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얼굴이나 물건의 형태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을 ‘아판타시아’라고 부른다. 이는 ‘시각실인’의 한 형태다. 시각실인은 눈으로 본적이 있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다. 시력 이상이 아닌 뇌 손상에 의해 발생하는 장애다.

영국 엑세터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전문의 아담 제만 교수는 ‘아판타시아’ 증상이 있는 환자를 최초로 발견한 의학자다. 그는 최근 ‘피질저널(journal cortex)’을 통해 전 세계 인구의 2.5%가 이러한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100명 중 2~3명꼴로 나타나는 증상으로 그렇게 드문 현상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사람은 마음속 어딘가를 맴돌며 무언가를 형상화하는데 상당 시간을 소비한다. 하지만 아판타시아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시각화하는 과정이 불가능하다. 제만 교수가 지난 논문을 통해 밝힌 한 남성의 사례를 보면 이 남성은 심장 수술을 받은 이후 이미지화하는 능력을 잃었다.

최근 드러난 사례들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선천적으로 아판타시아를 가지고 있다. 유년기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이 증상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한 남성은 영국 BBC방송을 통해 “어렸을 때 잠이 들지 못하면 아버지가 양을 세라고 이야기해줬다”며 “그런데 머릿속으로 양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어서 카운트할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선천적 아판타시아가 있는 사람들은 시각화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기능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심장수술을 받은 뒤 아판타시아를 갖게 된 남성처럼 외상적 사건이 원인이 된 것이 아니라, 뇌 영역의 기능이나 형태가 선천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연구들에 따르면 아판타시아와는 반대로 지나치게 사물을 세부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도 있다. 아직 뇌는 미지의 영역에 있는 만큼 신경학적 접근법을 통한 보다 많은 연구가 진행돼야 이 증상에 대한 신비가 한 꺼풀 더 벗겨질 것으로 보인다. 제만 교수는 “향후 아판타시아가 있는 사람과 슈퍼시각능력자들의 삶과 경험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문세영 기자 pomy80@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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