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바쁘고… 간절한 남녀의 수상한 이별

 

배정원의 Sex in Art(28)

『로미오와 줄리엣』, 포드 매독스 브라운 (1821~1893)

“벌써 가려고요?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어요. 저기 들리는 새소리는 아침에 우는 종달새가 아니라 밤이면 우는 나이팅게일이에요…”

“아니야, 그건 종달새야. 저걸 봐요, 내 사랑. 야멸찬 빛줄기가 저 동녘 하늘 구름자락에 무늬를 수놓고 있어. 이제 떠나야 돼. 여길 떠나 목숨을 부지하던가, 머물다가 죽거나 할 처지야…” (중략)

“잘 있어, 잘 있어. 한 번 더 키스하고 내려가겠소.”

“이대로 가는 거예요? 내 사랑, 내 님, 내 신랑, 내 친구! 매일 시간마다 소식을 전해줘요. 일분일초가 내겐 여삼추에요…”

두 사람의 이별이 수상하다. 새벽은 분홍빛으로 세상에 아침이 찾아오는 것을 알리고, 한 떼의 새들이 아침의 축복을 찬양하며 날아오른다. 망토를 제대로 걸치지도 못하고 팔에 휘휘 감은 채, 이별을 서두르는 남자는 문이 아닌 여자의 방 테라스를 통해 줄사다리를 이용해 아래로 내려가려 하면서 동시에 잠에 취한 듯 사랑에 취한 듯 눈도 미처 뜨지 못한 여자의 목에 키스를 퍼붓고 있다. 여자는 지난밤 뜨거웠던 사랑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잠자리의 가운도, 머리칼도 흐트러진 채 서두르는 남자의 키스를 받고 있다. 오르가슴을 충분히 느낀 여자는 평온하고 아늑한 애착감에 빠져드는 데, 그래서인가 여자는 연인과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이별을 하는 사람답지 않게 느긋해 보인다. 남자는 여자를 두고 가기가 너무나 안타까운 듯 그녀의 목에 입 맞추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야 할 방향으로 손을 뻗고 있는 것을 보면 여자보단 좀 더 이성을 찾은 듯하다.

이 그림은 유명한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로맨틱 비극이라 할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날밤을 치룬 후 이별장면’으로 포드 매독스 브라운(1821~1893)이 그렸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포드 매독스 브라운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로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홀먼 헌트, 존 에버렛 밀레이 등의 라파엘 전파 화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당시의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는 독창적이고 강렬한 양식의 그림을 주로 그렸고, 근대인의 삶과 사회적인 이슈를 소재로 그리길 좋아했다. 그의 작품 속 인물과 풍경들은 햇살을 받아 밝고 선명한 색채를 가진 사실적 묘사로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은 극적인 내용으로 프랭크 딕시를 포함한 많은 작가들에 의해 그려졌으나, 매독스가 그린 이 그림만큼 이별의 분주함과 애절함이 절절히 드러나 생생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아름답고, 간절한 사랑의 대명사로 회자되어 왔다. 원래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소설가 마테오 반델로의 작품 내용(1554)을 소재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셰익스피어는 아서 브루크의 『로메우스와 줄리엣의 비화』(1562)를 읽고 썼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부모가 원치 않는 사랑을 하고, 여자 주인공이 죽은 것으로 오해한 끝에 남자 주인공도 죽는’ 이야기는 세계의 어느 곳이나 있는 사랑의 이야기인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는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칭해지는 셰익스피어에 의해 극적으로 훨씬 짜임새 있고 서정적인 언어의 대사로 탄생되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의 베로나시의 두 명문가 몬테규 가와 캐플릿 가는 오래된 앙숙집안이다. 그 두 가문의 젊은이들은 다른 이들에겐 선량하고 세련된 매너의 소유자이지만, 상대 가문이랑 마주치기만 하면 서로 조롱하고 싸움질이어서 베로나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그런데 이 두 가문엔 이제 14살 생일을 맞는 아리따운 외동딸 줄리엣과 16살이 된 로미오라는 준수한 외동아들이 있다. 이 두 젊은이들은 우연히 파티에서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지고, 비밀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하는데, 우연히 맞닥뜨린 두 가문의 시비로 로미오는 캐플렛 가의 젊은이를 죽이게 된다. 로미오의 가장 친한 친구인 머큐쇼를 줄리엣의 사촌오빠인 티볼트가 죽이자, 그 티볼트를 로미오가 죽인 것이다.

이 사건으로 로미오는 도시에서 추방령을 받게 되고, 이 비련의 주인공들은 첫날밤을 보낸 뒤 가슴 아픈 생이별을 해야 했다. 부모가 강권하는 패리스 백작과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줄리엣은 로렌스 신부를 찾아가 로미오가 올 때까지 죽은 상태처럼 있게 될 약을 구하고, 신부는 로미오에게 사연을 적어 인편에 보낸다. 그런데 로미오는 다른 이로부터 줄리엣의 죽음에 대해 듣게 되고, 무덤 속의 그녀에게로 달려와 준비한 독약을 마신다. 가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줄리엣은 자기 옆에 죽어있는 로미오를 발견하고, 로미오의 칼을 뽑아 자살하고 마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두 주인공이 모두 죽는 엄청난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들지 않는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아직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하는 어린 것들의 이야기’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아무튼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누군가에 매혹당해 열정에 빠지는 이유’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매혹당할 때, 즉 사랑에 빠질 때 필요한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우선 우리는 너무 잘 아는 사람, 어려서 함께 자란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신비감이 있어야 그 사람을 더 알고 싶고, 매력을 느낀다.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고 불리는 난관이 있으면 그 사랑은 더욱 맹렬하게 타오르고, 오래 간다. 그래서 집안의 부모가 극렬히 반대하거나, 상대가 결혼한 사람이거나, 외국인이거나 해서 쉽게 맺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연인들의 사랑이 더욱 강렬하다.

또 둘 중에 한 사람은 외롭거나, 실연을 당하거나 해서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한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질 확률은 그리 많지 않아서 대개의 사랑은 한사람이 먼저 시작하고, 불을 때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대체로 먼저 시작한 사람이 먼저 끝내지만…). 이외에도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사람에게 끌릴 확률이 높으며, 어릴 적부터 그려온 마음속의 ‘Love map(사랑의 지도)’에 맞는 사람, 냄새가 좋은 사람에게 우리는 끌린다. 이런 조건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짠!’하고 나타나면 우리는 그야말로 ‘한 눈에 반하는’ 물불 가리지 못하는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온몸을 왕성히 돌기 시작한 성호르몬 때문에 더욱 첫눈에 반한 사랑에 불같이 이끌렸고, 인생의 경험이 적어 분별력도 인내심도 떨어지는 데다 10대 청소년들이었기 때문에(그 사람을 온전히 보기 보단 자신의 기대와 환상을 덧붙여 더욱 그럴싸한 허상을 만들어 사랑하는 시기라서) 이렇게 극적인 사랑이 가능했다. 이들이 처음 만나서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하고 결혼하고 죽는 모든 일들이 불과 5일 동안 일어났다.

나이가 들면, 그리고 사랑의 경험이 쌓이면 사랑하는 상대가 죽더라도 따라 죽기가 어디 쉬운가 말이다! 사랑이 인간이 살아가는 최고의 이유라 해도……..!

글 : 배정원(성전문가, 애정생활 코치,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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