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늘어가는데… 재활환자 떠돌이 신세

 

국내 재활의료에 대한 법적, 제도적 근거가 미비해 재활 유목민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재활 유목민이란 중증 질병이나 외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뒤 충분한 재활치료를 제공받지 못한 채 퇴원 후 2-3개월 간격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들을 가리킨다. 값싼 치료비 덕에 여러 병원을 손쉽게 옮겨 다니는 의료쇼핑이 판치는 상황에서 정작 재활의료는 관심 밖에 놓여 있는 셈이다.

장애가 생겨 대학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받고 난 환자들은 고달픈 유랑길에 접어들게 된다. 급성기 치료 후 아급성기 재활치료를 담당할 의료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서울대 의대 재활의학교실에서 장애 발생 이후 3년간 입원 양상을 추적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척수 손상 장애인은 평균 2.7개 병원을 옮긴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대 의대 재활의학과 신형익 교수는 “중증 질병이나 외상 발생 직후에는 주로 3차 병원(상급종합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이나, 3차 병원에서는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기퇴원을 종용하기도 한다”며 “여러 병원에서 입원과 재입원을 반복하면서 전체 재원기간은 증가하지만, 개별 병원에서는 충분한 재활치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입원기간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재활의료는 장애의 중증도를 감소시켜 사회적 비용을 줄일뿐더러 장애인의 사회복귀율을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출신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은 “재활치료는 중증 질병이나 외상 발생 후 초기 6개월 내에 집중적으로 투입돼야만 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현재 초기 집중적 재활치료보다 장기간에 걸친 저강도 재활치료가 시행되고 있어 대다수 장애인들이 장애극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13년 말 현재 국내 등록 장애인 수는 25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의 80%는 질환이나 사고 등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를 겪고 있다. 우봉식 청주아이엠재활병원 원장은 “물론 우리나라에는 재활전문병원이 전국에 10여개 있지만, 장기간 입원 치료가 필요한 재활환자에 대한 입원료와 재활치료비의 과도한 삭감 탓에 대부분의 전문병원들은 도산 직전에 내몰린 상황”이라며 “재활치료를 맡고 있는 요양병원은 일당정액제 수가 제도로 인해 재활의료 전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어 절름발이 재활치료에 그치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재활의학 전문가들은 재활의료 체계의 정립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급성기 병원 내 재활병동제도와 아급성기 재활치료를 맡을 재활병원제도의 시행을 축으로 별도의 포괄수가제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형익 교수는 “뇌성마비 등 선천적 장애와 희귀난치질환자의 호흡재활 등 의료체계에서 벗어나 있는 재활의료 영역도 지원하고, 외래 기반의 재활치료와 방문재활치료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요양병원의 기능과 역할의 재정립도 요구될 전망이다. 한국사회보장학회 회장인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아급성기 재활치료를 담당할 재활병원제도의 경우 현재의 요양병원이 시설과 인력을 갖춰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바람직한 재활의료체계의 수립을 위한 움직임은 구체화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문정림 의원이 지난 2013년에 장애인보건법을 발의한 상태이며, 지난 17일에는 국내 재활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급 의료기관 50여곳이 모여 대한재활병원협회를 창립했다. 우봉식 대한재활병원협회 초대 회장은 “이제 정부도 제대로 된 재활의료 전달체계의 확립을 바라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일산 새명병원장인 이상운 대한재활의학과 개원의사회장은 “향후 제도 신설 과정에서 개원의사회도 재활병원협회와 긴밀히 공조하겠다”고 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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