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직도… 절망 가득한 그녀의 눈빛

 

배정원의 Sex in Art(3)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유약한 얼굴을 살짝 돌린 채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어린 사슴을 보는 것 같다. 곧 끔찍한 참수형에 처해질 터라 커다란 헝겊으로 둘둘 감아 터번을 만들어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하고 그녀의 몸을 감싼 흰 드레스는 너무나 커서 마치 어른 옷을 입은 어린아이 같다.

곧 부서질 듯 연약하지만 섬세하며, 기품 있는 그녀의 얼굴 속 아름다운 두 눈은 그러나 생기를 잃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미 이 풍진 세상을 다 살고 난 나이든 여자의 눈빛을 하고 있다. 작은 들꽃들이 피어난 아름다운 정원에서 잘 교육받은 훌륭한 젊은 남자들의 구애를 한 몸에 받고 낭랑한 웃음소리를 흘려야 더욱 자연스러울 것으로 보이는 이 아리따운 소녀는 그 반짝이는 나이에 어찌 이런 눈빛을 가지게 되었을까? 왜 이 고운 얼굴의 소녀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부러움을 토해야 할 대중들 앞에서 목을 베이고, 효수가 되는 구경거리가 되어야 했을까?

이 소녀는 이탈리아에서 귀족의 딸로 태어난 베아트리체 첸치(1577~1599)이다. 대단하게 유복하고 영향력 있는 귀족의 딸이었으나 일찍 어머니를 여위고, 폭력적인 아버지 프란체스코와 계모, 친오빠와 의붓동생과 함께 거대한 영토의 성에서 살았다.

그런데 첸치는 자랄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져서 그 아름다움이 로마에서 최고 미인이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럴수록 아버지는 딸의 행동을 의심하고 급기야는 시골의 성에 가두고 만다. 프란체스코는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고 학대를 일삼는데다 비도덕적이기까지 해서 자신의 친딸인 베아트리체를 14살 때부터 상습적으로 강간한다.

아버지의 짐승보다 못한 행위를 견디다 못한 베아트리체는 계모와 오빠의 도움을 받아 교회에 아버지의 비행을 고발하지만, 워낙 대 부호였고 힘을 가진 프란체스코에게 교회는 어떤 처벌이나 조치를 처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이 자신을 고발한 것을 알게 된 프란체스코는 오히려 가족들 모두를 지방의 자신의 성에 가두고 만다.

결국 시골의 성에 놀러온 아버지 프란체스코에게 가족들은 독약을 먹이지만 죽지 않자, 힘을 합쳐 망치로 그를 살해하고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성벽에서 떨어뜨린다. 그러나 교회는 프란체스코의 사고사를 믿지 않고 결국 가족들의 범죄를 밝혀내어 가족들 모두는 사형을 선고받기에 이른다.

베아트리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로마시민들이 재판소의 사형판결이 부당하다고 항의했지만, 프란체스코의 거대한 재산에 눈독을 들인 교회와의 결탁으로 결국 모두 사형을 받게 된다. 이탈리아 최고의 미인인 베아트리체의 참수형을 구경하기 위해 집행일에는 너무나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원래 베아트리체의 초상은 귀도 레니(Guido Reni 1575~ 1642)가 그녀의 참수가 집행되기 전 감옥으로 그녀를 찾아가 직접 보면서 그렸다. 그 귀도의 그림을 엘리자베타 시라니(Elisabetta Sirani , 1638~1665)가 보고 모사했는데, 귀도의 것보다 오히려 더욱 유명하다. 귀도 레니는 카라바조와 대비되는 작가로 고전주의를 철저하게 신봉했으며, 드라마틱한 대각선 구도로 그림을 구성하기를 좋아했고, 중요한 부분을 빛으로 드러내는 전통적인 명암대조법을 더 강화시켰다. 엘리자베타 시라니는 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그림 수업을 받으며 17세 때 이미 화가로서 성공하였지만, 병으로 더 이상 화가로 활동하지 못하는 아버지 대신 가족을 부양하는 힘겨운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레니 귀도의 영향을 받아 바로크 스타일에 정통했으나 당대의 거장 귀도의 그림자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고 27살에 병에 걸려 죽었는데, 그때까지 200 작품 이상의 회화와 드로잉, 에칭을 남겼다.

귀도가 그린 베아트리체 초상은 엘리자베타가 그린 것보다 좀더 얼굴도 통통하고 밝으며 입술도 붉고, 고전주의적인데 반해, 엘리자베타의 그림은 더욱 처연하고 애잔하다. 혹자는 이것을 엘리자베타 역시 아버지의 학대를 받고 살았기 때문에 베아트리체의 슬픔을 동병상련하여 더 아프고 불쌍하게 느꼈던 탓이라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림 속에 남겨진 베아트리체는 슬프고 안쓰럽다.

실제 현실 속에서도 아버지나 형제 , 친척에 의한 근친강간의 예는 적지 않다.

미국 내의 어린이 성폭력 80%가 근친과 관련이 있고, 놀랍게도 12세 미만의 피해자 5명중 1명의 가해자는 아버지라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도 근친에 의한 강간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어린 아이가 가족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 그 결과는 낯선 사람에게 그 짓을 당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오래도록 상처를 받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을 보호하고 사랑해 주어야 할 보호자와 어린 자녀와의 본질적인 신뢰관계가 깨지기 때문이다. 또한 근친 강간은 대체로 상습적이고 지속적으로 일어나며, 아이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 다른 보호자에게 말하지 못할 뿐 아니라 종종 어머니가 남편의 그 같은 행위를 못 본 척 하며 딸을 보호하기를 포기하는 때문이다. 근친강간을 하는 아버지는 거의 가정 내에서 폭력적으로 군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족은 피해어린이에게 희생자의 역할을 요구하기도 한다.

근친 강간의 피해자들은 다른 강간 피해자처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후군, 심한 우울증, 식사장애(많이 먹거나 안먹거나), 알콜 및 약물 중독, 자살, 자존심 저하, 수면 장애(많이 자거나 못 자거나)를 겪을 확률이 높고, 거기에 더해 사람을 믿지 못하는 등의 관계장애를 갖게 된다.

이런 피해를 당했을 때 피해자는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고, 전문치료사와 상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근친강간으로 비롯되는 분노, 범죄, 공모, 신뢰의 문제는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근친강간인 경우 법적인 보호자가 가해자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장소적, 심리적, 법적으로 벗어나기가 어려운데, 도움을 외부에서 구해야 한다는 것도 피해자들을 더욱 절망하게 하는 이유이다.

분명히 정당방위였음에도 정의를 구현하기 보다는 자신의 욕심이나 왜곡된 윤리관으로 결국 죽음으로 내몰렸던 베아트리체가 살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500여년도 훨씬 전이다.
베아트리체의 절망적인 눈빛이 아직도 묻고 있는 것만 같다.“ 지금은…. 나아졌냐고?”

 

 

 

 

글 : 배정원

(성전문가, 애정생활 코치,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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