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부진 불구 R&D 투자 집중…결실 눈앞에

 

제약 CEO 프리즘(2) / LG생명과학 정일재 사장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다. LG생명과학의 지난해 4분기 실적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설립 이후 최대실적을 낼 것이란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하다.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매출액 1346억원, 영업이익 148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년동기와 비교해 각각 10%, 40% 이상 증가한 규모다. 지난 21일 종가(46150원)는 연초보다 20% 이상 뛰었다.

불과 반 년 전까지 LG생명과학에는 실적 악화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공부(R&D)는 열심히 하는데 성적(영업이익)이 잘 안 나와서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LG생명과학은 2009년 이후 영업이익률이 8%대에서 3%대로 반토막 나도 R&D 투자율만은 17~19%대를 유지했다. 한미약품과 맞먹는 업계 최상위권이다. 고정비 부담도 있다. 일단 R&D 자체가 고위험 고부담이고, 오송 공장의 생산증대, 연구단지 조성 등 설비에도 지난해부터 3년간 총 1931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만성호흡기질환과 폐렴 치료에 쓰이는 항생제인 ‘팩티브’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미국 시장을 뚫은 국산 신약 수출 1호로 큰 관심을 모았지만, 블록버스터로 성장하지 못했다. 연간 글로벌 매출이 2백억원 정도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국(FDA) 승인까지 12년 걸렸는데 지난 10년간 지구촌에서 일으킨 매출이 개발비 3천억원을 겨우 넘겼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유사약물을 들고 나온 다국적사와의 경쟁에 밀리고, 국내에서는 항생제 특성상 2차 치료제로 허가 받아 시장성의 한계가 지적됐다. 팩티브의 판매 부진은 2009년을 기점으로 영업이익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해 미국 내 팩티브 판권 보유사가 파산보호신청을 내고, 이듬해 길리어드에 기술을 이전한 C형간염 신약후보물질에 대한 임상이 부작용으로 중단되면서 신약 가치에도 타격을 입는 등 악재가 겹쳤다.

매출의 소폭 성장과 영업이익의 대폭 하락이라는 최악의 부진 속에 LG생명과학의 새 지휘봉은 제약분야의 비전문가에게 맡겨졌다. 2011년 취임한 정일재 사장이다. 경영학을 전공한 정 사장은 이동통신사인 LG텔레콤을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려낸 경영 전략가다. 그는 취임 후 대사질환 치료제와 바이오의약품, 백신을 3대 핵심사업으로, 제네릭과 건강기능식품은 캐시카우로 삼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오는 2017년까지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잡았다. 연임에 성공한 정 사장의 임기는 2016년까지다.

정 사장 취임 후 4년이 지났다. 이제는 오랜 연구개발(R&D) 투자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세간의 관심은 ‘제미글로’에 쏠려 있다. LG생명과학이 9년간 470억원을 들여 개발한 DPP-4(인슐린 분비 호르몬 분해효소) 억제제 계열의 국내 첫 당뇨병 신약이다. 2012년에 국내 시판허가를 받고, 다국적사인 사노피-아벤티스와의 기술제휴로 약80개국에 수출 길을 트면서 정 사장은 취임한 지 2년 만인 2013년 초에 비로소 공식석상에서 언론에 모습을 보였다.

정 사장은 R&D 투자 기조를 유지해 수출 비중이 40%인 LG생명과학의 방향타를 놓지 않으면서 못 하는 영업은 과감하게 타사에 넘겼다. R&D와 수출에 집중하는 실용노선을 택했다. 사노피-아벤티스뿐 아니라 멕시코 제약사인 스텐달을 통해 중남미 23개국, 중국의 쌍학제약, 터키의 노벨 등에 판권을 넘겨 총 105개국에서 제미글로의 판매를 추진 중이다.

LG생명과학은 판권을 내줘도 임상 진행에 따라 받는 마일스톤과 로열티 등 기술수출료, 원제 및 완제 공급 등으로 수익을 낸다. 파트너사를 포함한 제미글로의 연간 글로벌 매출 목표는 5억 달러. 우수한 약효와 하루 한 번 복용하는 편리성으로 해외 판매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국내 처방도 1백억원을 넘어 올해 2백억원을 바라보고 있고, 표준치료제인 메트포르민과 결합한 ‘제미메트’ 등 다양한 복합제도 나오고 있어 긍정적이다.

양준엽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제미글로는 국가별 판권계약을 통해 중국, 중남미 국가 등 성장성이 큰 신흥시장을 집중 공략할 예정이며, 2017년까지 기술수출료와 매출액이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LG생명과학의 해외법인은 미국 뉴저지를 비롯해 태국 방콕, 중국 베이징, 인도 구루가운 등 5곳이다. LG생명과학 김홍범 홍보부장은 “미국법인을 통해 제미글로의 미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제미글로의 FDA 임상 3상이 현재 진행 중이다.

정 사장은 해외 판매에 전념하기 위해 팩티브의 국내 판권도 일동제약에 넘겼다. 50여개국 상위제약사와 기술수출을 마친 팩티브는 현재 30여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신장 독성이 적은 첫 국산 B형간염치료제인 ‘베시포비어’ 역시 임상2상까지 마치고, 일동제약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판권을 과감히 넘겨줬다. 캐시카우가 될 국내 제네릭 파트너로는 한국화이자와 손을 잡았다.

실적개선을 알리는 또 하나의 청신호는 백신이다. B형간염백신인 ‘유박스B’에 이어 5가 액상혼합백신인 ‘유포박히브’도 세계보건기구(WHO)의 사전적격성평가(PQ)를 통과해 품질을 인증 받았다. 유포박히브는 소아들이 걸리기 쉬운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B형간염, B형 뇌수막염 인플루엔자를 예방하는 혼합백신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연말 보고서에서 “유포박히브가 4천억원에 달하는 혼합백신 국제기구 입찰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공시를 보면 유박스와 유포박히브는 범미보건기구(PAHO)와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로부터 1060만달러어치를 수주했다.

정 사장은 차근차근 제품 포트폴리오를 한층 강화하며 신흥시장 개척에 불을 댕기고 있다.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인 유트로핀을 비롯해 2013년에 중국 화동닝보사와 공급계약을 맺은 히알루론산 필러인 ‘이브아르’, 지난해 출시한 국내 최초의 1회 투여 골관절염치료 신약인 ‘시노비안’의 유럽품질규격(CE) 인증, 일본 모치다사와 사업제휴를 통해 공동개발에 나선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중국 유건의약그룹에 독점 판매키로 한 난임치료제 ‘폴리트롭’ 등이 실적 개선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제품력 강화로 내수 경쟁력을 갖추면서 신흥시장에 수출해 단기 매출을 확대하는 한편, R&D에서 확보되는 제품들로 선진시장에 진출한다는 복안이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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