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화가의 잘린 머리가 뎅그렁 뎅그렁…

이재태의 종 이야기(30)

생각하는 초현실파 화가 르네 마그리트

어느 날 세르게이라는 러시아 사람으로 부터 전자 우편을 받았다. 그는 자기는 틈만 나면 전 세계의 종을 구경하기 위하여 여러 나라 종 박물관을 방문하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도 있는데, 그 당시 충청북도 진천의 종 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던 필자의 수집 종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단다. 그는 며칠 후 이틀 일정으로 한국을 재방문 할 예정인데 진천 종박물관에 갈 거라며 만날 시간이 있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주중이라 움직이기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냈더니, 그는 필자에게 작은 선물을 한 개 전해주고 떠났다.

선물은 그의 우크라이나 친구인 오드리 말리브라는 조각가가 만든 ‘마그리트의 드레스’라고 명명된 묵직한 청동 종이었다. 21세기 들어 러시아의 작가들이 창작한 청동 종들을 이미 몇몇 웹 사이트에서 본 적이 있었으므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청동 종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종은 마그리트의 그림 ‘규방의 철학(La Philosophie dans le Boudoir)’이 바탕이었다. 마그리트는 이성을 학대하면서 성적 쾌락을 얻는 변태 성욕 ‘사디즘’으로 유명한 프랑스 사드 백작의 1795년 소설 ‘규방의 철학’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 그림을 그렸다. 부자연스러운 음흉함 속에서도,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다. 여성의 잠옷 위로 돌출된 고혹적인 유방과 드레스의 앞에 맨 발가락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모습의 기괴한 형태의 하이힐이 그려진 규방의 그림이었다. 종을 처음 본 지인은 단두된 사람의 두상을 추로 달아둔 잔인하고 징그러운 종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마그리트의 두상이다. 그의 머리가 움직일 때마다, 조용한 침실에서는 적막을 깨는 종소리가 퍼져나갈 것이다.

 

 

얼마 후 필자는 말리브가 제작한 ‘마그리트의 부엉이 (Magritte Owls, 12.5 cm)’이라는 다른 청동 종도 구입하였다. 이는 마그리트의 그림 ‘두려움 속의 동료 (Companions of fear, 1942년)’를 종으로 다시 표현한 것이다. 마그리트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산 정상에 남겨진 네 마리의 부엉이 가족의 공포감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부엉이의 몸 뚱아리는 삭막한 산 정상의 관목들이 자라면서 생성된 것이었고, 네 마리의 부엉이 모두는 알지 못하는 공포감으로 긴장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막연하지만 실질적인 우리 인류의 불안감을, 천둥번개 바람이 들이 닥칠 듯한 산꼭대기의 땅바닥에서 움직일 수 없게된 이들 부엉이 가족으로 나타낸 것 같다. 훌륭한 날개가 있음에도 무한의 힘에 억압된 무기력한 상태인 것이다. 2차 대전 중에 독일 점령하의 벨기에에서 살았던 그의 감정은 이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종의 추는 부엉이의 머리 모양이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는 초현실적인 작품을 그렸던 벨기에 화가이다. 그의 어머니는 1912년 강에 투신하여 자살했는데, 그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어머니의 시체를 강에서 건져내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드레스 자락으로 얼굴이 덮인 채 강물 위에 떠 있었던 어머니의 이미지는 마그리트의 머릿속에 남았고,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비록 그는 이를 강하게 부정했다고 하지만… 그는 벨기에 왕립미술학교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고, 1920년 중반까지 미래주의와 입체주의 성향의 작품을 그렸다.

마그리트는 1926년부터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초현실주의는 당시 유럽 문명에 대한 반역 운동이었고,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이성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하여 인간정신을 해방하고자 한 예술 사조였다. 그는 1927년 브뤼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나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고, 실망하여 파리로 이주하고 3년간 거주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앙드레 브르통, 살바도르 달리, 후안 미로, 폴 엘뤼아르 등과 교류하며 초현실주의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꿈과 같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자주 등장시키는 것에 반하여, 그의 작품에는 대부분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친근한 대상이 등장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마그리트는 사과, 돌, 새, 담배 파이프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동일한 화폭에 담거나, 어떤 대상을 완전히 엉뚱한 환경에 등장시켜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기법을 선보였다.

그의 데페이즈망 기법은 어떤 사물을 원래 있던 환경에서 떼어내 엉뚱한 곳에 갖다놓는 ‘고립’, 재질을 변형시키는 방법으로 사물의 성질을 바꾸는 ‘변경’, ‘사물의 잡종화’, 작은 사물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는 식의 ‘크기의 변화’,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두 사물을 나란히 붙여놓는 ‘이상한 만남’, 두 사물의 이미지를 응축 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이 한 그림에 양립시키는 방법 등으로 다양하다. 그는 관람자들이 의문을 갖고 도전하도록 만드는 작품들의 제작에 몰두하였다.

‘겨울비’라는 그림에는 하늘에서 중절모와 코트 차림의 사람들이 빗방울처럼 떨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주거지 위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빗방울 들 만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늘로 올라가는 풍선 같다며 낭만적이라고도 하지만, 평온한 시가지에 떨어지는 폭탄처럼 느끼기도 한다. 2003년 영화 매트릭스에는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장면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이 그림에는 파이프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마그리트가 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Ceci n’est pas une pipe’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것은 진짜 파이프가 아니라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고, 미술가가 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지, 그 대상 자체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관람객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제공해주면서도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백지 위임장’이라는 그림에서는 말과 여인, 그리고 숲이 위치한 화면의 깊이가 혼동을 일으킨다. 숲속을 지나는 말을 탄 사람이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은 하나의 세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철학적인 명제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피레네의 성’에는 파도치는 해변의 허공에 떠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돌로 만든 굳건한 성을 등장시켰다. 자연 법칙을 초월하여 중력과 공기 저항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공 속에 떠있는 거대한 바위를 그렸다. 이 그림은 지금까지 예측 가능하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념을 소멸시켰는데, 당시에 발표된 아인스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미지화했으리라는 해석도 있다. 이 그림은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와 영화 ‘아바타’ 배경의 모티브가 되었다.

마그리트는 시인, 철학자로서 사물을 바라보며 시적인 세계를 그림으로 승화시킨 예술가였다. 그는 ‘꿈이 깨어있는 삶의 다른 해석이라면,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은 꿈의 또 다른 해석이다’, “나는 실제로 테이블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그린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미술가들과 영화제작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사후에 그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많은 예술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특히 팝아트와 그래픽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고, 영화와 대중매체의 많은 영역에서 새로운 발상을 가능케 하였다.

필자는 르네 마그리트가 시각적 자극을 통하여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 시대를 20세기의 천재이자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참조. 황석권, 반이정. 네이버 지식백과, 르네 마그리트,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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