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계 국제화 격랑 속 살아남을까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들은 연구개발(R&D)에 목을 맨다. 최근 유럽집행위원회(EC)가 발표한 ‘유럽연합(EU) R&D 스코어보드’를 보면 이러한 투자 성향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글로벌 R&D 투자 상위 기업들의 연구개발비는 전년대비 4.5% 증가했고, 이는 같은 기간 2.7%에 그친 매출액 증가율을 웃돌았다. EC는 지난 2004년부터 전세계 기업의 회계보고서를 토대로 R&D 투자 현황을 조사해 해마다 발표하고 있다.

보건의료는 특히 R&D 집중도가 높은 분야로 꼽힌다. 올해 진행된 ‘EU R&D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오는 2016년까지 투자 규모가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산업 분야가 보건의료다. 이 서베이가 예측한 제약과 바이오기술 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4.4%, 의료기기와 헬스케어 서비스 산업은 6.4%에 이른다. 실제 전세계 글로벌 R&D 투자 상위 2500대 기업이 지난해 R&D에 쏟아 부은 5385억 유로 가운데 1086억 유로가 보건의료 분야에 집중됐다. 전체의 20% 정도로, 원화로 따지면 145조원 규모다.

제약기업은 특히 R&D 투자규모가 매출액 대비 5% 이상일 만큼 R&D 집중도가 높다. 제약기업의 87.4%가 여기에 해당된다. 지난해 제약 분야에서는 294개사가 969억 유로를 R&D에 투자했다. 하지만 막강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국내 제약기업이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제약분야 전체 연구비에서 한국의 12개 제약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0.4%, 3억5천만 유로에 불과하다. 스위스의 1개 제약사가 평균적으로 투자하는 R&D 비용이 15억 유로이니 격차가 크다.

지난해 제약분야 R&D 투자 상위 10대 기업의 R&D 비용은 494억 유로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노바티스가 71억 유로로 1위를 차지했고, 글로벌 R&D 투자 순위에서도 5위를 기록했다. 이어 로슈, 존슨앤존슨, 머크, 사노피-아벤티스, 화이자, GSK, 엘라이 릴리, 바이엘, 아스트라제네카의 순이었다. 머크와 화이자는 전년대비 10% 이상 R&D 비용이 줄어 글로벌 R&D 순위도 각각 8위에서 12위, 10위에서 15위로 밀려났다. 원화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이들 10개사의 평균 매출액은 49조원, 기업당 R&D 투자규모는 연간 7조원 수준에 이른다.

국내에서는 한미약품이 글로벌 R&D 1천대 기업 순위에 명함을 내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6520만 유로, 원화로 945억원을 R&D에 써 975위를 기록했다. 2500대 기업까지 살펴보면 녹십자가 1178위, LG생명과학이 1270위, 동아ST가 1456위로 뒤를 잇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보다 적극적인 투자 노력과 투자 장려를 위한 정부 지원이 요구된다”고 했다.

정부와 제약업계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래 먹거리와 제약주권이 동시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한국제약협회 이경호 회장이 지난 24일 각 언론사에 배포한 신년사의 키워드도 글로벌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제약업계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한미FTA에 따른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 시행과 약품비 절감 장려금제의 시행 여파가 시한폭탄처럼 째깍거리고,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불거지는 리베이트 문제도 암초처럼 도사리고 있다.

정부는 일단 마중물을 부을 준비를 마쳤다.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총 2350억원 규모의 글로벌 제약펀드를 조성했다. 이 펀드는 중소벤처제약사와 중견제약사의 기술제휴와 글로벌 임상 등 해외진출 지원, 선진 생산시스템 구축 등에 투자된다. 오랜 개발기간과 신약개발 성공의 고위험 등으로 민간투자가 쉽지 않은 제약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조성된 펀드다. 혁신형 제약기업을 상대로 한 정부조사를 보면 해외진출을 위해 향후 4년간 7700억원이 필요하다. 제약펀드가 숨통을 터줄 지는 몰라도, 건전한 투자환경을 조성하고 제약주권을 지키는 마중물 역할을 제대로 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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