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도라쿠’를 기억하라

 

제약업계도 오너 3세의 경영 참여가 두드러진 분야다. 온갖 어려움을 딛고 창업에 성공한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국내 100대 제약사 가운데 50%가 넘는 업체가 가족경영을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 3세들의 등장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제약업계는 정부의 약가 인하와 리베이트 단속 강화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기존의 경영 방식에 안주했다가는 창업주가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제약사 마다 “창업 이래 지금이 가장 큰 도전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외치는 이유다.

중소 제약사들까지 ‘살길은 해외 시장’이라며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이 마저 쉽지가 않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 비해 성공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약을 책임진 오너 3세들의 어깨가 더욱 무거운 것은 이 같은 엄혹한 대내외 환경 탓이다.

신년 벽두에도 오너 3세의 대표이사 취임 소식이 전해졌다. 국제약품은 5일 이사회를 열어 나종훈 대표이사 후임으로 오너 3세인 남태훈 부사장을 선임했다. 남 사장은 사원 출신인 안재만 부사장과 각자대표로서 국제약품의 경영을 이끌게 됐다. 제약 환경이 크게 위축된 시기에 국제약품의 새로운 도전을 지휘하게 된 것이다.

남태훈 부사장은 국제약품 계열사 효림산업 관리본부에서 출발해 2009년 4월 국제약품 마케팅부 과장으로 들어와 기획관리부 차장, 영업관리부 부장, 영업관리실 이사대우, 판매총괄 부사장 등을 지내며 경영수업을 쌓았다.

최대주주인 아버지 남영우 회장도 이번 이사회를 통해 각자대표로 복귀해 국제약품은 앞으로 3인의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된다. 1959년 선친인 고 남상욱 회장이 국제약품을 창립한 이후 2세 경영인으로서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어 온 남영우 회장은 각자대표로서 아들인 남태훈 사장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약품은 눈 영양제인 ‘오큐테인3’, 알레르기성 비염 치료제 ‘엘트리진정’ 등 일반의약품을 비롯해 전문의약품, 주름개선 기능성 화장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국제약품은 최근 안과영역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계획성 세포괴사 타깃 실명질환 글로벌 후보물질을 충남대에 기술이전하는 등 독창적인 신약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약품은 2010년 매출액 1,313억원, 영업이익 94억원을 기록했지만 2013년에는 매출액 1,172억원, 영업이익 18억원에 머물러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의 파장이 기업의 경영 세습과 위기관리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경험이 적은 젊은 오너 경영진에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구성원들이 없기 때문에 사건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유난히 가족경영이 많은 제약사도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제약사는 요즘 ‘창업 이래 가장 큰 도전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는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중요한 시기이다.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가족 경영진의 독단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밑바닥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내부 구성원들의 충언이 최고위층까지 전달되어야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수 있다.

오너 3세가 경영하는 동화약품은 최근 잇따라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제약사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유산균제제 ‘락테올’의 무단 원료변경으로 물의를 빚은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리베이트 혐의에도 휘말렸다. 선대 회장들이 쌓아올린 ‘117년 전통’의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입은 것이다.

대한항공은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이 ‘도라쿠’(트럭의 일본식 발음) 몇 대로 시작해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을 일궈냈다. 요즘 구치소에서 번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할아버지의 도라쿠’를 늘 가슴에 담아 두었더라면 이번 땅콩 회항 사건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제약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오너 3세 경영진은 제약사를 창업한 할아버지의 손 때 묻은 유품을 늘 가까이 두어야 할 것이다. 유품을 들여다보며 할아버지의 초심을 읽을 수 있다면 도전과 변화에 나설 때 실패의 확률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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