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따라 모습 바뀐 산타… 오늘은 그대가?

이재태의 종 이야기(27)

산타클로스와 벨스니켈

크리스마스가 내일로 다가왔다. 세상의 어린이들은 오늘 밤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와서 평소에 가지고 싶어 하던 선물을 주고 갈 것이라 믿고 있다. 필자는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몇 번은 산타클로스의 역할을 하였던 것 같다.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에는 이웃집 할머니로 부터 산타클로스가 집에 다녀갔다는 표시를 남기는 기발한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아파트 문 입구에서 거실의 크리스마스트리까지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신발을 대고 그 주위에 밀가루를 곱게 뿌린다. 마치 밤새 북극에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오셔서 하얀 발자국을 남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은 산타클로스의 발자국을 보고 갸우뚱하면서도 선물을 받고 매우 행복해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도 언제부터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었고, 나도 산타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산타(Santa)는 이탈리아어로 Saint(성인)를, 클로스(Claus)는 니콜라스(Nicholas)라는 이름을 뜻하며, 지금의 터키인 소아시아의 파타라시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스’ (서기 270 – 314년)로 부터 유래되었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굳건한 신앙인으로 성장하였고, 후일 미라지방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평생 남 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해적에게 인질로 잡혀있던 어린이와 뱃사람을 구하기 위해 교회와 자신의 재산을 모두 털어 인질들과 맞바꾸었을 정도였다. 특히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고 사창가로 팔려나갈 위기에 있던 세 처녀의 집에 결혼 지참금으로 세 자루의 황금을 넣어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였으므로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는 것을 알려지지 않게 하였다.

성 니콜라스의 이야기는 노르만족에 의해 유럽에 알려졌다. 교회에서 기념하는 성 니콜라스의 공식 축일은 12월 6일인데, 12세기 초부터 프랑스 플랑드르의 수녀들이 그 하루 전날인 12월 5일에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지금도 유럽에는 12월 6일이 되면 ‘니콜라스마스’라며 학교와 가정에서 초콜릿과 귤 등의 선물을 나눠준다. 이 풍습을 ‘신터클레스’라고 부르던 네덜란드인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정착한 후에도 이어나가 미국에서 ‘산타클로스’가 탄생한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미국인들이 오늘 날의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완성하였고 지금의 ‘산타’로 재창조한 것이다.

현재처럼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산타의 모습은 북유럽에 구전되던 오딘과 토르의 전설과 미국의 산타클로스와 결합하면서 생겨났다. 오딘과 토르는 말과 염소를 타고 선물을 나눠주는 바이킹 전설 속의 신이었다. 오딘은 긴 수염을 휘날리는 노인으로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말인 슬레이프니르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전사들을 이끌고 다녔다. 북유럽의 아이들은 밤에 슬레이프니르를 위해 장화에 당근을 넣어 굴뚝이나 집 밖에 매달아 두었고, 오딘은 답례로 선물을 넣어주었다는 겨울 풍습이 있었다. 선량한 노인, 하늘을 나는 동물, 겨울밤에 선물을 주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공유되던 성 니콜라우스와 북구의 신 오딘이 섞여지며 기독교의 상징으로 된 것이다.

독일과 몇몇 나라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잘못을 따지지 않고 선물을 주던 성 니콜라우스나, 말의 먹이를 주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던 오딘이 어린이들에 대한 훈육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모두에게 따뜻한 선물을 주는 선행에 비하여, 착한 일을 하는 아이들에게 ‘상’을 준다는 생각을 넣은 것이다. 미국 초기의 산타 이야기에도 못된 아이에게는 아예 선물을 주지 않거나, 양말에 석탄을 들어있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러한 과업을 위해 산타클로스의 고상한 이미지는 유지하며, 나쁜 행동을 한 아이들에게 벌을 주는 산타의 ‘검은 도우미’들이 만들어졌다. 독일의 ‘크람푸스(Krampus)’와 ‘벨스닉켈 (Belsnickel)’은 이 역할을 위하여 창조된 모습이 다른 두 캐릭터들이었다. 크람푸스는 염소 뿔이 난 흉악한 얼굴에 다리에는 검은 털이 숭숭난 악마로 등장하며, 나쁜 짓을 한 아이들을 회초리로 때리고 자루나 소쿠리에 넣어 지옥으로 데리고 간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성 니콜라스와 함께 크람푸스로 분장한 청년들이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에 비하여 벨스닉켈은 모피 옷으로 치장한 인간적인 모습이다. 벨스니켈은 독일어 Pelzen(belzen, 작대기로 때리다)과 Nickel(니콜라우스의 애칭)의 합성어다. 그는 크리스마스 1,2주 전에 나타나며, 어린이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한다. 누더기 옷을 입은 누추한 모습에 한 손에는 작은 회초리를 들고 있다. 아이들은 회초리를 든 벨스닉켈을 보고는 먼저 도망가기도 하지만 그의 모습에 겁을 먹고는 착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덕분에 크리스마스에는 산타로 부터 선물을 받게 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이들을 혼내주는 크람푸스나 벨스니켈은 사라지고 현재와 같이 산타만 남게 된 것이다.

원래 날렵하고 키가 큰 성 니콜라스가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모습의 산타클로스로 변한 것은 1860년대 잡지에 성탄절 삽화를 그리던 만화가 토마스 내스트가 만든 것이다. 현재처럼 산타가 완전히 빨간 옷을 입게 된 것은 1931년에 산타가 코카콜라 선전에 등장되고 부터다. 코카콜라 사는 가을이면 급감하는 코카콜라의 판매량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미국의 화가 선드볼럼에게 의뢰하여 이 광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코카콜라의 로고색인 빨간색의 옷과 콜라의 거품을 연상시키는 흰 수염의 상상 속의 산타할아버지를 그린 것이다. 루돌프 사슴도 처음부터 산타와 같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북유럽 신화에 출현한 염소가 순록이 끄는 썰매에 선물을 가득 싣고 다니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 풍경은 1822년 미국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성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선물을 배달하며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즐겁게 외치는 산타클로스의 모습은 미국작가 워싱턴 어빙의 작품에 처음 등장하였다고 한다.

1986년 아이를 키우기 위해 두 개의 직장을 왕복하며 힘든 생활을 하던 싱글 맘 린다 린퀴스트 발드윈은 우연히 벼룩시장을 방문하게 된다. 거기에서 요양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물건들을 팔고 있던 한 할머니를 만난다. 그리고 그 할머니로부터 오래된 독일의 벨스니클(Belsnickles) 산타 공예품에 관한 책을 구입하게 된다. 그녀는 당시 야간 대학에 등록하여 예술을 배우던 중이었는데 그 책에 감명을 받아서 오래된 신문지와 물, 그리고 아교를 넣어서 독일식 산타 인형들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한다. 그것을 판매하여 가족 생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다양한 산타클로스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그녀가 만든 산타에는 진짜 미국 동전인 ‘닉켈(5센트 동전)’을 한 개 씩 넣은 후, ‘벨스니켈 산타 Belsnickle Santa’라는 이름을 붙였다. 독일의 벨스니켈 산타는 조금 다른 의미였으나, ‘니켈’을 넣은 종을 만들어 니켈과 종(bell)을 합했다는 의미로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이다.

1992년에 첫 번째로 완성된 산타는 조금은 엉성한 모습이었으나, 그 지방의 아트전시회에 한 개에 6달러의 가격으로 출품하게 된다. 그녀의 작품은 인기를 끌어 단숨에 매진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종과 함께 각종 산타 인형들도 제작하게 된다. 매년 그녀가 소개한 산타는 성경의 ‘오병이어(五餠二魚)’를 연상시키는 물고기 두 마리를 낚은 산타와 같이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실내 장식품 회사 에네스코는 1996년부터 그녀의 독특한 산타클로스 조각품들의 판매권을 구입하여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그녀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녀의 첫 산타 작품은 지금은 6,000불 이상의 가격으로 호가된다. 2002년부터는 ‘린다린퀴스트발드윈’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산타를 만들고 있고, 매년 수백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그녀가 만든 벨스니켈 산타 종에는 아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년 독특한 분위기를 담았고, 방울추가 달린 곳에는 니켈 동전이 붙어있다. 산타와 벨스니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영역을 창조한 싱글 맘 린다의 이야기는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이던 1961년, 미국의 8세 소녀 미셸은 소련이 북극에서 핵실험을 한다는 뉴스를 보고, 케네디대통령에게 “북극의 산타가 위험하니 핵실험을 막아주세요.”라는 편지를 보냈다. 대통령은 “미셸, 산타를 위태 롭게 하는 핵실험을 막으려는 네 편지를 받고 기뻤다. 어제 산타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그 분은 무사하단다. 곧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누어주러 오실거야”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혹자는 ‘인생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다가, 그 다음은 그의 존재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시기로 지낸다. 그러다가 스스로가 그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늘 밤에도 기꺼이 스스로 산타클로스가 되고자 하는 부모들의 웃음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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