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을 마시는 그 황홀한 표정

이재태의 종 이야기(25)

“샴페인의 아버지” 수도승 돔 페리뇽

필자는 파티나 축하를 위한 자리에서 아래 위로 흔든 뒤 철사 줄을 풀고 병 마개를 살짝 밀면 “펑”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솟아오르는 달콤한 맛의 포도주를 ‘샴페인’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하며, 그 중에서 프랑스 파리의 동북부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것만을 ‘샴페인(Champagne, 샹파뉴의 영어 발음)’이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원산지 통제법을 통하여 다른 지방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을 ‘샴페인’이라고 칭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샹파뉴 지역은 연 200일 동안 비가 오고 섭씨 10도 정도의 기온을 유지하는 곳으로 유명 샴페인 산지 중 가장 추운 곳이다. 이 지역은 배수가 잘 되고 질소가 풍부하여 포도를 재배하기에 최적화된 토양을 가지고 있다. 포도의 질소는 와인 숙성 과정에서 효모 활동에 도움을 주며, 수분을 머금고 있는 토양은 서늘하여 와인저장고를 만들기에도 용이하다고 한다.

샴페인은 일반적인 와인 제조법과는 차이가 있다. 1차 발효가 끝난 와인을 병에 넣은 후 당분과 효모를 첨가하고 10~12℃에서 수개월 동안 보관한다. 병 속에서 2차 발효가 끝나면 병을 거꾸로 세운 후, 여러 번 돌려서 병의 아래 부분에 효모 찌꺼기가 쌓이게 한다. 그 다음 병을 거꾸로 세워 영하 25~30℃의 냉각 소금물에 병의 목 부분을 잠기게 하여 얼린 뒤, 충격을 가하면 병 속에 남아 있는 가스의 힘으로 찌꺼기가 밖으로 튕겨나간다.

이어서, 부족한 양은 일정량의 와인과 당분으로 채운 뒤 쇠고리가 달린 병마개로 봉인하여 병 속의 탄산가스의 압력을 견딜 수 있게 만들면 샴페인이 완성된다. 큰 탱크나 수조보다는 각각의 병 속에서 2차 발효가 된 것이 더 고급 샴페인이다.

샴페인의 생산과 품질 향상에 큰 기여를 한 까닭에 ‘샴페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돔 페리뇽(1638-1715)은 루이 14세 시절의 프랑스 수도승이었다. 그는 샹파뇽 지방에 여러 개의 포도밭을 소유한 가정의 막내로 태어났고, 17세에 베네딕트 수도회 오빌리에 수도원의 수사가 된다. 오빌리에 수도원 신부들은 엄격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성경 공부를 했고, 수도원의 규칙인 ‘성실과 신의’에 따라 주어진 분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1668년 당시 30세였던 그는 수도원의 재정 담당 수도사로 임명되어 성배에 사용하는 미사주인 와인을 만들어 성당을 재건하는 재원을 마련하여야 했다. 피에르 페리뇽은 포도 재배 과정에서부터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포도주의 질을 향상시켰다. 그는 시력이 좋지 않았으나 미각이 탁월하였고, 그가 만든 와인은 품질을 인정받아 파리의 귀족과 왕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후 사망할 때 까지 47년 동안 피에르 페리뇽은 양질의 와인을 만드는 것에 헌신하며 수도원의 포도원을 2배로 확장시켰다. ‘돔(Dom)’은 성직자의 최고 등급인 ‘다미누스(Dominus)’를 줄여서 부른 호칭으로, 수도원은 그의 업적을 인정하여 그를 ‘돔 페리뇽’이라고 불렀다. 그는 수도원장만이 모셔지던 오빌리에 수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와인 안에서 탄산가스가 발생하여 기포가 있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익는 현상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였다. 샹파뇽 지방에는 돔 페리뇽이 샴페인을 발명했다고 구전되어 왔으나, 그가 발명한 것은 아니다. 스파클링 와인은 동 시대를 살았던 영국과학자 크리스토퍼 메렛이 처음 발명하였다고 한다.

돔 페리뇽은 적포도주가 대세였던 이 지방의 스파클링 와인인 샴페인의 생산과 품질 향상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다. 사실 페리뇽은 재발효 때문에 백포도를 좋아하지 않았고, 자연적인 방법으로 좋은 유기농 포도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었다. 와인제조 책임을 맡았던 돔 페리뇽은 상파뉴 지역의 추운 날씨 때문에 발효를 멈추다가 봄에 발효가 다시 시작되어 터져 버리는 와인을 보고 스파클링 와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가을에 온도가 내려가면 재발효는 가끔 발효성 당이 알코올로 변환되는 것을 막는다. 와인이 이 상태에서 병속에 봉입되고, 봄에 온도가 다시 올라가면 효모가 다시 재발효하여 이산화탄소를 생성하고 코르크 병마개를 밀어내며 터져서 와인병이 깨지는 일이 생겨났다. 간혹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폭발사고도 일으키자 포도주 제조업자들에게는 큰 골칫거리였다.

어느 날 피에르 페리뇽이 미사에 쓸 와인을 고르기 위해 수도원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와인 저장고에 갔을 때 마침 와인병이 폭발했다. 날씨가 풀리자 와인병 안에서 2차 발효를 시작하며 병이 터진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이 현상을 미리 예방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이 와인을 마셔 본 뒤 그 훌륭한 맛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별처럼 아름다운 맛이 입에 가득참’을 느꼈고 동료 수도사에게 ‘형제들이여. 어서 와보세요. 나는 지금 하늘의 별들을 마시고 있어요!(Brothers, Come Quickly! I’m Drinking Stars!)’라고 하였다. 이 일화로 인하여 후일 ‘별’이 돔 페리뇽 샴페인의 맛을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샴페인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와인병이 터지는 사건들이 겨울과 봄 사이의 급격한 온도변화로 효모가 과대하게 증식되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두껍고 튼튼한 와인병과 마개가 저절로 열리지 않게끔 마개에 철사를 두르는 방법 등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였다. 또한 이때 코르크를 처음 사용했고 와인 맛을 감별하기 위하여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포도 블렌딩 방법을 혁신하였고, 검은 포도에서 투명한 백포도주를 만드는 법, 봄에 재발효로 샴페인이 만들어지도록 천연당을 유지하는 방법, 탄소 방울이 나가지 않게 병에 포집하기 적절한 시간을 선택하는 법등을 개발하였다.

한편, 오크통 숙성 대신에 코르크로 봉해진 병 안에 든 와인을 저장고에 넣어 숙성하는 방식을 도입하며 새로운 맛과 향을 가진 샴페인을 만들었다. 그의 샴페인에 대한 자부심은 1694년 9월 29일에 쓴 편지에도 나타나 있다. 샴페인을 주문한 어느 고객에게 보낸 편지에는 ‘저는 경에게 세계 최고의 샴페인 26병을 드렸습니다.’고 적었다. 

피에르 페리뇽은 오빌리에 마을에서 생산되는 포도 원액의 여러 종을 섞어 숙성시키는 남다른 제조방식을 사용했다. 그가 만든 샴페인은 당시 가장 좋은 와인의 4배에 달하는 값에 거래되었고, 베르사유 궁전의 식탁에도 올랐다. 샴페인은 와인을 마시는 풍습에도 대 변화를 일으켰다. 와인을 마실 때에는 하인들이 매번 병을 따서 잔에다 부어주어야 했다. 당시의 테이블 매너를 귀찮게 여긴 프랑스의 왕실과 귀족들은 하인들의 도움 없이도 간단히 병을 딸 수 있고 ‘뽕’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쏟아지는 샴페인을 축제와 쾌락의 음료로 애용했다. 특히, 루이 15세의 후궁이자 실력자였던 마담 퐁파두르는 유명한 샴페인 애호가였다. 그녀는 ‘샴페인은 마신 후에도 여인의 아름다움을 지켜주는 유일한 술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스파클링 와인은 돔 페리뇽이 사망한 후 한 세기 이상이 지난 19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돔 페리뇽은 세계 최대의 샴페인 제조업체인 모엣 & 샹동(Moët & Chandon)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돔 페리뇽이 와인을 제조하던 곳이 현재 모엣 & 샹동회사가 소유한 와이너리이다. 1832년 프랑스 샴페인 브랜드인 모엣&샹동은 전쟁으로 폐허된 베네딕트 오빌리에 수도원을 복원했다. 이와 동시에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피에르 페리뇽 수도사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브랜드의 고급 샴페인 라인으로 ‘돔 페리뇽’을 만들었다.

돔 페리뇽 브랜드로 처음 소개된 1921년산 빈티지 돔 페리뇽 샴페인은 15년이 경과한 1936년 이후 시장에 나와서 영국, 미국 등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로 인하여 돔 페리뇽은 독립된 최고급 샴페인 브랜드의 이미지를 획득하였다. 이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과 찰스 왕세자 부부의 결혼식 축하 샴페인에도 사용되었으며, 전 세계 각국의 공식 만찬과 축제에서 자주 사용되는 샴페인 브랜드가 되었다.

샴페인은 보통 빈티지(vintage)와 논-빈티지(Non-Vintage) 샴페인으로 나누어진다. 특정 수확 연도(빈티지)에 작황이 좋으면 그 연도를 기념하여 빈티지 샴페인을 양조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연도의 샴페인들과

혼합하여 논 빈티지 샴페인을 만든다. 샹파뉴 지역은 북위 50도에 위치한 한랭한 지역이어서 포도가 잘 익지 않아, 매년 일정하게 좋은 포도를 생산할 수가 없다. 따라서 샴페인 회사들은 대부분 일정한 맛을 유지할 수 있는 논 빈티지 샴페인을 만든다. 돔 페리뇽은 빈티지 샴페인만을 생산하며, 매년 새로운 샴페인을 만든다. 해마다 만드는 빈티지 샴페인에 새로운 맛과 향을 담아 최고급 브랜드로서의 샴페인의 가치를 더해 주었다. 포도의 작황이 좋지 않은 해는 샴페인을 아예 생산하지 않는 등 그들의 자부심을 담은 최고급 품질의 샴페인을 유지했다.

19세기 후반 은제품을 생산하던 영국 런던의 Elkington & Co.회사는 프랑스의 돔 페리뇽을 기념하는 13cm 높이의 은도금 청동종을 발매하였다. 돔 페리뇽 수도사가 샴페인을 처음 맛보며, “오! 형제들이여. 어서 와

보세요. 나는 지금 하늘의 별들을 마시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모습이다. 이 종의 특징은 머리를 밀면 머리가 앞뒤로 계속해서 움직이며 추로 종의 몸체를 쳐서 계속 종소리를 내는 ‘노더(nodder)’ 방식이다. 샴페인의

절묘한 맛을 처음 본 수도승이 기쁨에 넘쳐, 술잔에 별을 담아 마신 기분에 머리를 끄떡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다. 누구라도 종에 표현된 그의 표정을 보면, 그 샴페인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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