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성당으로 사용… 이게 정말 종이야?

이재태의 종 이야기(17)

한 번도 울려보지 못한 세계에서 가장 큰 종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종. 그러나 종루에 걸리기도 전에 깨져 한 번도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비운의 종.

모스크바 크레물린 광장의 석재 받침대 위에 전시되어있는 차르 대종(차르 콜로콜: 차르는 러시아 황제, 콜로콜은 鐘, 또는 콜로콜-III로도 불러짐)은 높이 6.4m, 직경 6.6m, 두께 61cm, 무게 201톤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종이다. 차르 대종은 모스크바의 이반대제 종탑과 크레물린 장벽 사이에 있다. 깨져 파편으로 떨어져 나온 부분을 앞쪽에 그대로 두었는데 그 무게만 해도 11.5톤에 달한다. 이 종이 콜로콜-III 이라고 불러지는 이유는 러시아 황제들의 차르의 큰 종 가운데 세 번째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10세기부터 큰 종들을 주조했다. 그러나 종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미사를 알리기 위한 종교적인 목적보다는 오히려 중요한 예식이나, 행사, 화재 그리고 적군의 침입에 대한 경보 목적으로 사용됐다.

15세기에 주조가 시작돼 1600년에 완성된 차르 종은 무게가 18톤이어서 추를 들어 종소리를 내는 데는 24명의 남성들이 동원됐다고 한다. 첫 번째 차르 종은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인 모스크바 이반대제의 종탑에 걸려있었는데, 17세기 중반에 발생한 화재로 종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 조각이 났다고 한다. 두 번째 차르 종은 화재로 파괴된 첫 번째 차르 종의 잔재들을 모으고 청동을 더 부어 1655년 100톤의 크기로 주조했으나, 이 종 역시 1701년에 발생한 화재로 파괴됐다. 그러므로 현재 크레물린 광장에 놓인 이 종을 3세대 차르 종(콜로콜-III)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의 러시아의 영토를 확정한 표도르 황제의 조카, 안나 이바노브나 여제(재위: 1730-40)는 황제로 취임한 후 칙령을 내려 화재로 소실된 차르의 종을 더 크게 복구하도록 했고, 완성된 종에는 바로크풍의 천사와 식물, 그리고 기독교 성자들의 인물 메달 등의 부조와 함께, 종을 주조하도록 명령한 안나 여제와 차르 알렉세이의 실물크기 얼굴을 새겨 넣어 황실의 권위를 나타내고자 했다.

종으로서의 역할은 한 번도 하지 못한 채 250년 이상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차르 대종의 건축에 관한 사연들은 잘 알려져 있다. 1730년에 러시아의 황제로 대관된 안나 이바노브나는 1655년에 주조된 2세대 차르 종인 그리고레브 종의 불타버린 조각들에 수 백톤의 청동을 더 보태 새 종을 주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안나 여제는 러시아군대 대장군의 아들을 독일 뮌헨으로 보내어 선진 기술을 배워 오라고 하였으나, 독일에서도 이 정도의 크기의 종이 만들어진 적이 없었으므로 사절단들이 단기간에 큰 종을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것은 불가능 일이었다.

결국 국내 기술자들이 모여 종을 만들기로 하고, 러시아의 청동 대포를 만들던 장인 페드로비치 모토린 부자에게 임무가 맡겨졌다. 그는 이 정도의 종을 주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종을 매다는 일도 엄청나게 고난이 따를 것이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종을 주조하기 위해 모스크바 광장 근처에 10m 깊이의 구덩이를 파고 진흙으로 무너지지 않게 막음공사를 하고 주물 작업을 위해 전체를 덮을 정도의 크기로 참나무 거푸집을 만들고 벽돌과 쇠막대 봉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고정했다.

모토린은 종의 주조에는 고품질의 영국산 주석과 페르시아 산 구리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상 페테스부르크의 관리들은 종의 부조 조각에만 그와 같은 고급 재료를 쓸 수 있도록 승인했다. 그러나 이 종에는 구리, 주석 뿐 아니라 525kg의 은과 금 72kg가 같이 섞여졌다고 한다.

1732년 초에는 청동을 녹이기 위한 4개의 화로가 건설되었으나, 공사는 안나 여제의 기대와는 다르게 빨리 진행되지 못하였다.

큰 종을 주조하고 종탑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주철 장인, 건물 건축가, 목수, 석공, 대장장이, 금형공, 황토공, 운반공 등 수많은 전문가가 투여돼야하나 1733년 초가 돼서도 겨우 85명의 노동자만이 이 일에 투입됐다. 그해 연말에는 189명의 노동자가 투입됐고, 1734년 11월 첫 번째 주물 작업이 이루어졌으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큰 종을 만드는 일에는 수많은 난관이 닥쳤는데, 2년 이상이나 공사에 투입된 장인들에게 봉급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공사 책임자였던 아버지 모토린은 1730년 8월부터 1735년 1월까지 봉급도 받지 못해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가며 어렵게 생활하다가 1735년 8월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후 그의 아들인 미하일 모토린이 이 일을 계승했으나 그 또한 금전적인 어려움으로 생활이 어려웠다. 종의 주조와 건축에는 총 공사비 62008루블이 쓰였다고 기록돼 있는데 전체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쓴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다.

1735년 11월 26일 마침내 기초공사가 마무리 돼, 정부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모스크바 정교회 주교가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한 축도를 시행 한 뒤, 일 분에 6톤 미만의 용해된 청동주물이 별 문제없이 조형물 내부로 처음 부어졌다. 이후 청동 쇳물이 거푸집 내로 들어가고 주변 공사를 시행하는 작업의 진행에서 별 다른 이상이 없었고, 모두 성공적인 주조 작업을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 성삼 축제주일(Feast of the Holy Trinity)이던 1737년 5월 29일 아직도 종을 들어 올리는 거푸집에서 꺼내지 못한 상태에서 거푸집 나무에서 불이 났다.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려고 위쪽에 나와 있던 주입구로 물을 부었다. 그 순간 종의 몸체가 갈라지며 12톤 크기의 조각이 완전히 떨어졌고, 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2.1m의 크기의 큰 틈이 생겼다. 종은 거푸집에서 분리돼 결국 땅 아래의 구덩이 속으로 다시 떨어졌다. 나중에 조사를 해 보니, 6.7톤 정도의 무게로 설계됐던, 종을 치는 추가 발견이 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처음부터 주조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한다.

 

 

비록 깨져서 소리를 낼 수는 없으나 이후 종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종각에 설치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하지만 결국 이 종은 한 번도 종루에 설치되지 못했다. 1812년 잠시 모스크바를 정복한 프랑스의 나폴레옹1세는 러시아 원정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차르 종을 파리로 옮기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은 크레물린 지하에 매몰된 종의 아래에 지뢰를 묻고 폭발시켜 종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폭파 후에도 종 아랫부분이 찌꺼기만 겨우 남길 정도로 굳건해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종은 이후 한 세기동안 구덩이에 매몰되어 있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종을 들어 올리려 했다. 1792년과 1819년 두 차례에 걸친 시도는 일시적으로 약간 움직이는 정도 밖에 성공하지 못했고, 1836년 여름, 마침내 프랑스 건축가 오거스트 드 몽페랑드(Auguste de Montferrand)에 의해 차르 종은 돌 받침대 위에 놓여졌다.

인양하면서 측정을 해보니, 깨진 파편 부분의 크기만 해도 당시 360도 회전하며 소리 내는 유럽 스타일의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인 영국 리버풀 성당의 테너 종보다 세배나 더 컸다. 땅위로 올라온 차르 대종은 1849년부터 1932년 10월 혁명 전까지는 성당으로 사용됐는데, 입구의 균열로 만들어진 부분은 출입구로 사용됐고 내부에는 러시아 정교회 십자가가 걸렸으며, 주기적으로 미사가 거행됐다. 러시아 혁명 후 종교적 행사는 중지됐고, 이 종은 러시아의 상징물로 남아 있다.

 

러시아에서는 19세기부터 모스크바의 차르 종을 작게 복제한 청동 기념 종을 만들었으며, 크레물린 광장이나 차르 종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이 종을 구입하고 차르 종의 위용을 조각한 문진이나 잉크 데스크 세트와 같은 기념품들도 구입하고 있다.

역사상 가장 무거웠던 종은 1484년 불교의 나라 버마왕국 마마제디 왕(Dhammazedi)에 의해 주조돼 양군의 쉐다곤 탑에 걸렸던 종이라고 한다. 높이가 6.3m 정도이나 무게는 무려 300 톤에 달했다. 1602년 포르투갈 군대의 용병대장 필립 드 브리토는 양군을 점령한 후, 쉐다곤 탑에 있던 이 종을 떼어내어 반출하려 했으나 종을 실은 배가 양군 강에 침몰해 실패했다. 이 종은 지금까지도 양군 강바닥아래 7.6m지점에 묻혀 있다. 이 후 몇 차례에 걸쳐 인양이 시도 됐지만 현재까지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이 종이 인양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크고, 특히 종소리가 울리는 살아있는 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가 될 것이 확실하다.

현재 타종이 되고 있는 종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은 2000년에 주조된 중국 헤난(河南)성 핑딩산(平頂山)시 포콴사(普光寺)의 “행운의 종(Bell of Good Luck)’인데, 높이가 8.2m, 무게는 116톤이다. 참고로 에밀레 종이라 불리는 성덕대왕 신종은 높이 3.4m, 두께 2.4cm, 무게는 19톤이니 모스크바 차르 종 무게의 1/10에 미치지 못한다. 2014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거운 종은 분단국가나 분쟁중인 60개국에서 보내온 탄피 1만관을 녹여서 무형문화재 원광식 선생이 2008년 만든 종인데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입구 세계 평화 공원에 설치한 ‘세계평화의 종’으로 높이 5m, 무게 31톤이다.

 

 

※ 이재태의 종 이야기 이전 시리즈

(1) 세상을 깨우고 귀신 쫓고…신묘한 종들의 사연

(2) 무시무시한 검은 전사가 당장 튀어 나올 듯

(3) 적군기 녹여 종으로…승전의 환희-눈물 생생

(4) 천재 화가 ‘달리의 나라’에서 부활한 앨리스

(5) 딸의 작전에 넘어가 맞은 ‘그녀’… 종도 20개나

(6) 성모 마리아와 고문기구, 이 지독한 부조리

(7) 여왕의 꼿꼿한 자태에 서린 독립 열망과 분노

(8) 부리부리한 눈빛… 아직도 통독 황제의 위엄이

(9) “프랑스가 발 아래” 프로이센 한때의 자부심 충만

(10) 지옥같은 참호전투…전쟁 부산물 예술로 부활

(11) 전에 없던 부르조아풍 의상, 근대화 상징물로

(12) “그대에게 행운이…” 미첼레 성인의 사랑 가득

(13) 다양한 감정 실린 종소리…나에겐 한때 ‘공포’

(14) 한 시대를 풍미…. 비와 함께 떠난 왕의 애첩

(15) “나는 억울하다” 청동 속의 표정마저 침울

(16) 추하고 도도하고… 그러나 존경스런 여인

 

코메디닷컴 관리자 kormedi@kormedi.com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http://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Share with Kakao

댓글을 달아주세요.

귀하의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