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하고 도도하고… 그러나 존경스런 여인

이재태의 종 이야기(16)

여성해방운동가 에머린 팽크허스트

후드 망토를 입은 엄숙한 표정의 높이 12cm의 상반신 인물 종. 나는 이 종을 처음 보았을 때 두꺼운 청동으로 주조된 못생기고 조금은 기괴하게 생긴 이 인물에서 할리우드 영화 E.T.(Extra-Terrestrial)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개봉된 1984년 보다 훨씬 오래 전에 영국에서 만들어 진 종이니, 그는 E.T는 아니다. 그럼 ‘어느 서양 소설 속에 나타난 어떤 무시무시한 인물이거나, 서양 동화에 등장하는 난쟁이 영감이나 마녀는 아닐까?’하고 생각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 졌던, 양면에 두 여성의 얼굴을 조각한 도자기종도 있다. 놀랍게도 이 사람은 평생을 여성의 참정권 운동에 헌신하였던 영국의 정치 활동가 에머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 1858-1928)란 여성이다. 도자기종에는 앞면에는 웃는 표정의 에머린 팽크허스트의 얼굴이, 뒷면에는 동료로서 이상을 같이 실현하고자 하였던 그녀의 딸 크리스터벨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이렇게 추하고 무엇인가에 불만족스러워 양쪽 입술을 아래로 내린 도도하고 건방진 얼굴의 그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일생을 알아보는 과정은 흥미로웠고, 그녀의 삶은 한마디로 존경스러웠다. 나보다 한 세기 전에 태어나서 69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시대를 앞서가며 여성의 존엄성과 사회 공동체에서 누려야 할 권리를 찾아주고자 노력하였던 초췌한 이 영국 여인의 모습에는 거룩함이 들어있다. 그녀는 1912년 연설에서 “우리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막대한 임무를 갖고 있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중대한 임무일 것이다. 바로 인류의 절반을 해방시키는 일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종에 표현된 얼굴은 청동종을 만든 장인이 말하고자 하였던 ‘위대한 인류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남성위주의 독점적 사회구조의 종말을 알린 그녀의 족적에 대한 미움과 질시가 함께 담겨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성을 선거에 참여시키는 법적 권리인 여성 참정권(女性參政權, woman suffrage)이 실행된 지는 불과 한 세기 남짓하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공화정 하에서 여성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으며 18세기말 유럽에 나타났던 민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근대 민주정치의 발전에 따라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범위는 점차 확대되어 왔으나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또한 가정을 지키는 것이 여성의 본분이며 여성의 이익은 남성에 의해 대변될 수 있다는 편견으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는 인정되지 못하였다. 본격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은 프랑스 혁명 당시 시작되었는데, 혁명 당시의 사상가와 여성들은 ‘여성을 단두대(길로틴)에 보낼 수 있다면, 여성에게 투표에도 참여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야한다’ 고 하였다. 이후 오랫동안 여성의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이 펼쳐졌으나, 여성에게 투표에 참여할 권리는 주어지지 못하였고 19세기 후반 이후 여러 나라에서 제한적이고 일시적으로 참정권이 허용되기도 하였다. 세계적으로는 당시 영국의 자치령이었던 뉴질랜드에서 1893년 처음으로 여성에게 처음으로 참정권을 주었으나 피선거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902년 모든 성인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였다. 유럽에서 여성 참정권을 도입한 첫 나라는 핀란드로서, 1906년 여성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두 부여하였고 여성의원도 처음으로 선출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여성 참정권이 확산되는 중요한 전기가 된다. 전쟁이 발발하여 유럽의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여성들이 산업생산을 담당하게 되어 여성은 중요한 산업 인력으로 성장하게 되고 사회적 발언권도 강화되었다. 그 결과 1차 세계 대전 이후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졌다. 제1차 대전 이전에도 노르웨이와 덴마크에서는 여성의 참정권이 주어졌으나, 전쟁 이후 캐나다와 러시아, 독일, 폴란드로 확대되었다. 영국에서는 1918년에 처음으로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고, 이후 네덜란드(1919), 미국(1920) 영국(1928)에서 여성에게 완전한 참정권이 주어졌다. 유럽에서 여성에게 피선거권이 주어진 것은 대체적으로 1930~1940년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중국에서도 여성의 선거권이 인정되었고, 이후 10년 동안 세계적으로 100개국 이상에서 여성선거권이 인정되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헌법의 규정을 통해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선거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아랍 국가들에서는 아직도 여성의 선거권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독립 후 처음으로 시행된 1948년 총선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고, 65년이 경과한 2013년 총선에서는 마침내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완전한 여성의 참정권이 확보되기까지에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선거권을 쟁취하기 위한 여성들의 강력하고 눈물겨운 투쟁이 있었다. 미국은 건국 초부터 여성들에게는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여성 선거권 쟁취투쟁은 노예제 반대운동이 있던 19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19세기 중반에는 맹렬한 여성운동 지도자였던 루시 스톤, 스탠턴과 수잔 앤서니가 독자적으로 활동하였으나, 1890년에 서로 연대하여 전미 여성선거권협회을 출범시켜 이후 30년 동안 공동 투쟁을 하였다. 그 결과로 1918년 몇 개의 주에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기 시작하였고, 1920년 마침내 헌법이 개정되어 미국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하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18세기 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최초로 여성선거권을 주장했고, 1840년대의 차티스트 운동도 여성선거권을 요구하였다. 이후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이 운동에 참여하였고, 1867년에는 존 스튜어트 밀이 1,550명의 서명을 첨부한 여성선거권단체의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1870년대에 영국의 주요도시에 여성참여권운동 단체가 설립되어 300만 명의 서명으로 여성참정권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수년간 의회에 상정된 선거법안은 정치지도자들이 여성운동에 대한 빅토리아 여왕의 강력한 반대에 대처하지 못했기에 모두 폐기되었다. 여성은 부분적으로 시의회 선거권을 인정받았으나, 영국 국회의원 선거권은 여전히 여성에게 인정되지 않았다. 1897년에 여러 여성단체가 전국 여성선거권운동 단체연합으로 통합되면서 상당한 응집력과 조직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반응이 없는 것에 좌절을 느낀 여성선거권운동의 일부 세력은 에머린 팽크허스트와 그녀의 딸 크리스터벨의 지도하에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투쟁을 시작했다. 이러한 강렬한 활동으로 여성선거권운동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눈에 띄게 증가했고, 이들을 지지하는 대중의 시위와 행진이 이어졌다.

에머린 팽크허스트는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프랑스 에꼴 노르말에서 수학한 후, 1878년 영국 최초의 여성참정권 법안 및 기혼여성 재산법안을 기안했던 24년 연상의 리차드 팽크허스트와 결혼하며 인간의 존엄성에 눈을 떴다. 그녀는 여성참정권 연맹을 창설하고, 1894년 지방 공직자 선거에서 기혼여성의 참정권을 확보하였다. 1903년 남편이 사망하자 두 딸인 크리스터벨, 실비아와 같이 여성사회 정치동맹(WSPU) 결성에 참여했는데, 이 단체는 자기들의 주장을 달성하기 위해 매우 과격한 행동을 하는 여성 단체로 악명이 높았다. 1905년 10월 크리스터벨은 여성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던 자유당 회합을 방해하고 경찰에 폭력을 휘두르다 옥살이를 하였다. 어머니 에머린도 1908년 의회를 침입하며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체포되었는데, 당시의 영국 법을 이용하여 어머니와 딸이 교대로 수감되면서 항의시위와 함께 시민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벌였다. 자유당 정부를 여성참정권 운동의 주요장애물로 생각한 그녀는 선거 때 자유당 후보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며, 1908~09년 3차례에 걸쳐 투옥되었다. 이때 그녀는 법정에서 “우리는 법을 어겨 법정에 온 것이 아니라, 법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여기에 섰다‘고 당당하게 발언하였다. 그녀는 정부가 그들의 요구에 동의하도록 하기위하여 방화와 같이 군사적이고 공격적인 전술을 써야한다고 했고, ‘여성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절망스럽기에 우리의 임무는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하여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녀 자신은 이즈음 계속 투옥되었는데, 투옥 중 단식을 하여, 영국 경찰도 그녀에게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그녀는 단식투쟁과, 석방 및 체포의 과정을 1년에 12차례나 되풀이 하였다. 시위는 점차 과격해졌지만, 영국 정부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으므로 여성들은 더욱 공격적이 되고 남성의 상징이라 여겨지던 건물들은 불태워졌다. 영국의 경찰서마다 여성 시위자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녀와 딸들은 독일과의 전쟁을 벌이는 영국을 위해 공격적인 참정권 운동을 중지했고, 정부는 참정권 운동과 관련한 죄수를 전원 석방하였다. 국민들은 이들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 내세우는 애국심을 진심으로 지원하게 되었고, 대다수의 의원들이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게 되어 1918년 30세 이상의 모든 여성은 완전한 참정권을 얻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28년, 그녀가 죽기 수 주전에는 남성과 같이 21세부터 투표권을 인정받게 되어, 에머린 팽크허스트가 40년 동안 헌신해 온 여성 참정권 운동은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의 사망소식에 뉴욕 헤럴드 트리뷴 신문은 그녀를 ‘20세기 초의 가장 뚜렷하였던 정치적, 사회적 선동가였고, 가장 탁월한 여성 참정권 운동가‘ 라고 하였다. 1999년 Time지는 그녀를 ’20세기를 빛낸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에 선정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사고방식을 만들었고, 우리사회를 다시는 뒤돌아 갈 수 없는 새로운 형태로 전환하도록 사회 전체를 강렬하게 요동치게 하였다‘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 이재태의 종 이야기 이전 시리즈

(1) 세상을 깨우고 귀신 쫓고…신묘한 종들의 사연

(2) 무시무시한 검은 전사가 당장 튀어 나올 듯

(3) 적군기 녹여 종으로…승전의 환희-눈물 생생

(4) 천재 화가 ‘달리의 나라’에서 부활한 앨리스

(5) 딸의 작전에 넘어가 맞은 ‘그녀’… 종도 20개나

(6) 성모 마리아와 고문기구, 이 지독한 부조리

(7) 여왕의 꼿꼿한 자태에 서린 독립 열망과 분노

(8) 부리부리한 눈빛… 아직도 통독 황제의 위엄이

(9) “프랑스가 발 아래” 프로이센 한때의 자부심 충만

(10) 지옥같은 참호전투…전쟁 부산물 예술로 부활

(11) 전에 없던 부르조아풍 의상, 근대화 상징물로

(12) “그대에게 행운이…” 미첼레 성인의 사랑 가득

(13) 다양한 감정 실린 종소리…나에겐 한때 ‘공포’

(14) 한 시대를 풍미…. 비와 함께 떠난 왕의 애첩

(15) “나는 억울하다” 청동 속의 표정마저 침울

 

코메디닷컴 관리자 kormedi@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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