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 주민번호 변경 허용…유출 기관엔 과징금

 

이르면 내년부터 주민번호가 유출돼 피해가 우려되면 변경을 허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안전행정부는 지난 달 31일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개인정보보호 정상화 대책의 하나로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유출된 주민번호는 2차 피해가 우려될 때에 한해 변경이 허용되며, 주민번호 체계를 전면 개편할지 여부는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결정된다.

정보유출에 대한 처벌과 피해 구제도 대폭 강화된다. 정부는 고의나 중과실로 주민번호를 유출한 기관에 피해액의 3배까지 과징금을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피해자가 피해액을 입증하지 못해도 3백만원 이내에서 법원에서 배상받을 수 있는 법정 손해배상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또 부정한 방법으로 입수한 개인정보를 영리 목적으로 유통시키다 적발되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고,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은 몰수, 추징된다. 정부는 우선 다음 달 7일부터 법적 근거 없이 주민번호를 수집하면 최대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령을 시행한다.

의료계 역시 개인정보 때문에 시끄럽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달 29일 대한약사회 산하 약학정보원 김모 전 원장을 불구속기소했다. 김 전 원장은 환자 동의 없이 약국 처방전 7억여건을 불법 수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원장은 지난 2009년 다국적 회사인 한국IMS헬스 허모 이사로부터 약국 처방전 정보를 빼내 판매하자는 제의를 받고 약학정보원 직원들을 시켜 관련 자료를 수집하도록 했다. 이런 지시를 받고 처방전 정보를 모은 약학정보원 엄모 전 이사와 유출프로그램을 제작한 임모 팀장도 함께 불구속기소됐다.

임씨는 처방전 정보를 자동 전송 받을 수 있는 유출프로그램을 약국경영관리 프로그램인 ‘PM2000’에 심어 전국 9천여개 약국에 뿌렸다. 약학정보원이 개발한 PM2000의 저작권은 대한약사회에 있다. 처방전 정보를 요청한 IMS헬스코리아는 이번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개인정보가 없는 암호화된 데이터만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보보호특별위원회는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보상을 위해 지난 2월부터 약학정보원과 대한약사회, IMS헬스코리아 등을 상대로 54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에는 의사 1201명과 일반인 901명 등 2102명이 참여해 의사 1인당 3백만원, 일반인 1인당 2백만원씩 배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약국 처방전을 비롯해 의료기관의 의료정보는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다. 의료기관의 진료과정을 통해서 수집, 축적돼 사회적.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고, 의학연구와 교육, 공익 등 부차적인 목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약학정보원의 처방전 유출 사건처럼 의료기관의 방화벽도 언제든 뚫릴 수 있다. 지난 2009년 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인터넷 보안컨설팅업체가 직원 1천명 이상 의료기관의 정보관리자 520여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환자의 의료정보를 분실했거나 도난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무려 80%에 이르렀다.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다양한 경로로 의료정보가 침해받을 수 있다. 환자 본인이 진료 후 바쁘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지 않고, 전화나 팩스, 이메일로 의료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 보험 등으로 문제가 생기면 진료기록 삭제나 정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 법적 대리권이 없는 가족이나 친지가 환자의 의료정보를 요구할 때도 있고, 의료기관 내 근무자가 지인의 부탁이나 호기심, 또는 퇴직 후 환자 유치를 위해 의료정보를 빼낼 가능성도 있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의료정보 유출은 사회적 차별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보호를 위한 기술적, 법적 장치도 중요하지만, 관련자들의 도덕적, 윤리적 책임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엄격하고 완벽한 정보보호는 폐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계 일부에서는 “환자정보 접근에 상당한 제한이 가해진다면 질병치료와 의학발전, 연구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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