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자신이 크게 아파봐야 진짜 명의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 병원은 신경외과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꼽힌다. 교수실 복도에는 매년 한 명씩 초청하는 방문교수들의 이름이 쭉 새겨져 있다. 2006년 방문한 서울대병원 정희원 교수는 동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정 교수는 2009~2013년 세계신경외과학회 회장을 맡은 세계적 의사다. 최근 각 분야 순위를 정하는 온라인 잡지 ‘조리매거진’에서 ‘세계의 신경외과 의사 16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뇌종양 두개골 전체를 열지 않고 두개 아래의 뼈만 절개해 수술 부위를 최소화하는 ‘뇌 두개저 접근법,’ 뇌 방사선 사진을 미리 컴퓨터에 저장해서 정확한 좌표에 따라 수술하는 ‘영상유도뇌수술,’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환자가 깨어있는 상태에서 종양 부위만 제거하는 ‘각성하 뇌종양제거술’ 등을 국내 정착시키며 2800여명에게 새 삶을 안겨줬다. 그는 환자의 수술 후유증과 삶의 질까지 고려해서 섬세하게 수술한다. 수술 받은 양성뇌종양 환자의 90% 이상이 5~7일 만에 퇴원하기 때문에 병실에서 중장기 환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정 교수는 수술이 능사가 아니라고 본다. 그는 “뇌종양 환자 가운데 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는 10명 중 1, 2명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환자의 절반인 500여명은 1, 2년에 한 번씩 경과만 관찰한다”고 말했다. 건강검진, 교통사고 등 검사를 통해 우연히 뇌종양을 발견하는 무증상 양성뇌종양인 ‘우연 뇌종양’은 수술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

그는 제자들에게 환자를 가족으로 여기고 수술할지, 어떤 수술법을 택할지 결정하라고 당부한다. 환자가 내 가족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그래도 답이 안 나오면 자신을 환자로 가정하고 치료법을 골라야 한다는 것.

정 교수는 또 제자나 후배의사에게 ‘환자는 의사의 스승’이라고 강조한다. 환자를 보면서 겪은 경험을 기록했다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 때문에 ‘후배들이 존경하는 서울의대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환자들이 다른 환자에게 자문 받는 것을 말리지 않고 오히려 권한다. 또 환자의 치료법을 선택하기 위해서 해외의 대가 7, 8명에게 ‘당신이라면 이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이메일을 보내서 참고로 삼기도 한다.

정 교수의 환자 중심 사고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그는 고3 때 물리학과나 화학과에 지원해서 기초과학자가 되려고 했지만 셋째 동생이 뇌막염을 앓고 인지기능에 장애가 생기자 의예과로 삶의 방향을 틀었다. 의대에서도 신경외과를 평생의 전공으로 삼았다. 그는 “자기 또는 가족이 크게 아파본 것이 명의의 조건 중 하나인데, 이런 점에서 여동생은 내가 좀 더 좋은 의사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자신은 운이 좋은 의사라고 믿고 있다. 그는 의대 재학시절 병리학과 김용일 교수의 도움으로 의학의 기초를 배웠다. 육영수 여사의 마지막을 함께 한, 우리나라 신경외과의 1세대 심보성 교수와 최길수 교수에게 뇌의 세계를 전수받았다. 그는 전임의 때 고양이 150여 마리를 잡으며 뇌경색에 대해서 연구했지만, 뇌종양을 담당하던 스승 심보성 교수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뇌종양 분야를 맡게 됐다. 서울대병원이 새로 단장하면서 현대적 시설과 수술기구를 도입한 혜택을 받게 된 것도 행운이라고 여긴다. 정 교수는 김용일 교수가 소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응급수술을 통해 완치시켜 스승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정 교수는 1988~90년 UCSF에서 뇌종양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마크 로젠블룸 교수 아래에서 악성 뇌종양의 이론적 가르침을 받았고 찰스 윌슨 교수에게서 수술법을 배웠다. 그는 이때 ‘교모세포종의 약 내성에 관한 연구’ 논문을 ‘뉴로 서저리’에 발표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야구광이기도 하다. 그는 의대 시절 야구반에서 투수로 활약했는데 당시 포수가 우리나라 뇌혈관 미세수술에서 최고 명의로 꼽히는 서울아산병원 권병덕 교수다. 의대 야구반의 투, 포수가 현재 대한민국 신경외과의 양대 산맥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정 교수는 대한두개저외과학회 회장, 대한뇌종양학회 회장, 대한신경외과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서울시보라매병원장을 거쳐 서울대병원장을 맡아 병원 행정에도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2013년에는 주위의 예상을 깨고 서울대병원장 연임을 포기해서 화제를 일으켰다.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신경외과학회 학술대회에 몰입하기 위해서였다.

정 교수는 2007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신경외과학회 대의원총회에서 4년마다 열리는 학회를 서울로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교토와 경합을 벌인 ‘나고야 대첩’에서 완승을 거뒀지만 성공적 개최는 또 다른 문제였다. 50만 달러를 학회에 내야했으므로 자칫하면 ‘부도’가 날 수도 있었다. 정 교수는 3개월 동안 영업사원처럼 각국의 의사들을 설득해서 3600여명이 1인당 750달러의 참가비를 내고 서울로 오게 만들었다. 의료기기 회사, 제약사의 참가자를 합쳐 4000명이 몰려 최대 규모, 최대 논문의 학회로 소나타 승용차 수 백 대를 파는 개가를 올렸다.

뇌종양 수술 베스트닥터에 정희원 교수

정희원 교수에게 물어본다

    권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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