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미비…이종이식 임상적용 못해 발 동동

 

국내 이종이식 연구의 모범이 되고 있는 ‘2단계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XRC)’이 세계적으로 임상시험을 수행할 수 있는 요건에 가장 근접한 결과를 갖추고도 법과 제도가 미비해 임상적용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사업단은 이종이식 공여동물인 형질전환 미니 무균돼지를 확보해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전임상시험에 성공을 거뒀다. 또 임상적용 면역억제 프로토콜을 확립해 나가고 있어 빠른 시일내에 임상시험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종이식이 임상적용될 경우 장기 부족을 해결하는 최선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평도 받고 있다. 현재 장기가 필요한 환자들은 장기를 이식받기 위해 무기한 대기 중인 상태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준섭 연구교수는 “매년 장기이식대기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2014월 3월 기준 2만6000여명의 환자들이 다양한 장기를 이식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기치 못한 질병 발생 대비 각종 대책 법제화 필요

사업단은 2016년 부분층 각막 이종이식(각막의 일부 층만 이식하는 시술) 임상시험을 시작으로 췌도와 전층 각막에 대한 임상 적용을 차례대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신 교수는 “사업단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면역억제요법을 개발하고 이종이식의 안전성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이종이식법 제정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종이식 임상시험은 일반적인 임상시험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제도적 규제가 필요하다. 이화여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권복규 교수는 “일반적인 임상시험은 가족동의나 평생추적관리가 불필요하지만 이종이식은 이러한 절차가 필수적”이라며 “또 장기수여자의 성생활 및 출산, 혈액과 조직 기증이 제한되고 사후 부검까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종이식은 동물의 살아있는 세포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인 만큼 초기 수여자들에게 예기치 못한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사업단의 이종췌도 및 각막이식은 면역거부반응을 줄이고 인수공통감염병(동물이 사람에게 옮기는 감염병)의 전파 가능성을 낮췄다는 점에서 안전성이 높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전염병 발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법으로는 이종이식 임상시험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환자를 보호할 법적 장치가 없다. 국내 이종이식에 관한 규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행한 가이드라인이 전부이고 이는 법적 효력이 없다. 따라서 임상시험 시 발생하는 사고 부담은 장기수여자가 고스란히 떠안을 확률이 높다.

또 공중보건을 위해 필요한 평생추적관리나 연구대상자(피험자)에게 주어지는 출산 및 여행 제한 등의 책무, 사회적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명시할 법적 근거도 없다. 연구대상자 선정, 임상시험 관리·감독, 공여동물 사육시설 관리 등에 대한 제도적 규제 역시 필요하다.

정부-정치권, 위험 부담 우려 법안 마련에 소극적

이러한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사업단은 법학자 및 생명윤리학자들과 함께 이종이식법률의 초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정부부처와 정치권은 법안 마련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공청회나 간담회가 열릴 때마다 이종이식 임상시험은 아직 시기상조라거나 이종이식법률의 필요성을 대수롭지 않게 간과해온 것이다. 정치권은 임상시험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인 때문에 법률안 발의를 꺼리고 있다.

이종이식법의 가장 큰 윤리적 쟁점은 임상시험 연구대상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인권침해다. 권 교수는 이종이식 임상시험과 관련하여 △ 장기수여자 및 가족의 평생추적관리 △ 가족 및 동거인의 동의 △ 성생활, 출산 및 여행 제한 △ 동의철회 불가능 △ 수여자 정체성 변화 및 사회적 차별 △ 사체기증 및 조직 부검 등의 인권침해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사업단은 이종이식법이 임상시험 연구대상자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 대해 토의하기 위해 지난 25일 이종이식 임상시험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한 생명윤리학자는 전임상시험 결과 임상시험을 위한 유효성과 안전성 기준이 명확히 확립된 것인지 지적했고, 한 의학자는 임상시험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입장을 제기했다.

‘좋은 규제’는 학문-산업 발전 촉진…사회적 관심 절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세계이종이식학회와 세계보건기구가 영장류 8마리 중 연속 5마리 이상이 6개월 이상 정상 혈당을 유지할 경우 이종췌도 이식의 임상시험이 가능하다고 권고했다”며 “현재 사업단의 연구 결과 중 이종췌도 이식은 이 요건에 만족했고, 이종각막은 사업단의 주도로 국제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이 제안돼 곧 저널에 발표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당장 임상적용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이 다함께 논의해 이종이식에 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라며 “임상적용이 임박했을 때 법안을 준비하면 장기가 필요한 환자들의 치료 가능성이 또 다시 뒤로 미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도 “이종이식 임상시험의 여러 인권침해 요인들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 목적이 ‘정당’하고 ‘절박’해야 한다”며 “이종이식법제는 연구대상자와 가족들의 인권을 침범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당 규제가 있어야 연구대상자의 인권, 대중의 건강권과 생명권 등이 균형을 이루며 이종이식 임상시험을 진행해 이로 인한 사회적·윤리적 문제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단 측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종이식 자체에 대한 대중들의 입장은 현재 비우호적인 편은 아니다. 권 교수는 “이종이식에 대한 걱정과 우려보다 무관심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종이식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 관심으로 돌아서야 보다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관련 규제가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의 장벽에 가로막혀 발전과 성장을 저해 받는 기업들은 규제 완화나 폐지를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좋은 규제는 오히려 학문과 산업의 발전을 북돋우고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사업단은 “이종이식이 기술적으로는 임상시험 조건에 근접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무관심과 규제 미비로 연구에 제한을 받고 있다”며 “이종이식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규제 검토가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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