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족은 왜 에비앙을 마시나

배지수의 병원 경영

 

우리는 무엇을 파는가? (Business Definition)

우리나라 맥주가 세계에서 제일 맛 없다는 사실이 이코노미스트 기자에 의해 신랄하게 비판 받은 일이 있습니다. 더 치욕적인 사실은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도 맛없다고 평가받았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대동강 맥주를 마셔본 분들 말로는 대동강 맥주가 북한맥주라고 얕볼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제법 맛있는 맥주랍니다. 저는 유학 시절에 보스턴 특산 맥주인 새무엘아담스를 즐겼었고, 필리핀 여행가서는 산미구엘을 즐기기도 했었습니다. 최근에야 대형마트에 가면 수입 맥주들이 진열되기 시작했고, “세계맥주”라는 프랜차이즈 맥주집도 생기면서, 비로소 산미구엘이나 새무엘아담스 등을 즐길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한 일주일 전인가요? 흥미로운 신문기사 하나가 났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상표를 가린 맥주를 제공하고 맛을 평가하게 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더니, 수입맥주에 비해서 국산맥주를 더 선호하더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보니 “이 연구 혹시 국내 맥주회사들이 후원한 연구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근거가 없으니 뭐라고 말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국내 맥주회사들이 아래와 같이 주장을 할 수는 있겠다 싶었습니다. “소비자들이 국산 맥주는 맛 없다고 느끼고, 수입 맥주는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 실제 수입맥주가 맛이 좋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마케팅의 결과일 뿐이다.”

저는 이 글에서 국산 맥주 맛이 수입 맥주 맛 보다 좋은지 나쁜지 여부를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아닙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점은 우리가 맥주를 구입할 때 단순히 맥주 음료 그 자체만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맥주 음료 뿐 아니라 “브랜드에 담긴 스토리”를 구매함으로써 “경험”을 구매한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한가지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제가 대학 2학년 시절이던 1992년, 우리나라에는 “오렌지족”이라는 단어가 유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일보에서 오렌지족 유행 현상에 대해 연재를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지금까지 기억이 남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오렌지족들은 그랜저를 끌고 다닌다. 그 그랜저에는 현란한 스티커가 많이 붙어있다. 스티커를 붙이는 이유는 부모님 차를 빌려서 끌고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차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들은 한 손에 에비앙 생수통을 들고 다니면서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서 지나가는 아가씨들에게 손을 지른다. “야 타!”

여기서 오렌지 족들이 왜 에비앙 생수병을 들고 다녔을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에비앙 생수는 2,000원 정도 합니다. 경쟁 상품으로 500원짜리 제주 삼다수가 있습니다. 이 둘은 편의점에 가면 나란히 진열되어 있습니다. 왜 오렌지족들은 500원이면 살 수 있는 삼다수를 놔두고 2,000원짜리 에비앙을 선택했을까요? “돈 귀한 줄 모르는 골 빈 부자집 자식들”이라고 치부한다면, 당신은 비즈니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소비자는 나보다 똑똑하다. 그들이 소비할 때는 이유가 있다.”

오렌지족들이 갈증해소를 위해서 에비앙을 구매했을까요? 갈증해소를 위해서는 500원짜리 삼다수로 충분합니다. 그러니깐 이들이 지급한 2,000원 중에 500원은 갈증해소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나머지 1,500원 가치는? 에비앙이 뭔가 1500원 정도의 가치를 제공하니 구매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삼다수는 대장균이 더 많을 거야. 적어도 프랑스 같은 선진국 제품이니깐 대장균이 덜 들어있을거야.” 하는 식으로 제품의 질에 대한 막연한 믿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 조사 결과를 보면 삼다수의 품질은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우수합니다.) 이 믿음에 동의할 수 없다구요? 저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에비앙의 품질을 신뢰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제 아이가 젖먹이일 때 중국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아이 분유를 타기 위한 생수를 사러 편의점에 갔습니다. 이름 모를 중국 브랜드 생수와 한국에서는 비싸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에비앙이 나란히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에비앙에 손이 가더군요. 에비앙은 전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만듦으로써 신뢰성을 전 세계적으로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들은 에비앙과 삼다수 사이에서 제가 중국 여행시에 느꼈던 생각으로 에비앙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오렌지족들이 에비앙을 사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에비앙을 들고 다니면 “우리집에 돈 많거든” 하는 자랑을 구차하게 제 입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에비앙을 들고 다니면, 뭔가 외국 물을 먹은 사람 같고, 뭔가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쓰는 부잣집 아들인 것 같은 이미지를 풍길 수 있습니다. 결국 지나가는 아가씨를 꼬시기가 쉬워집니다. 아마 오렌지 족들은 삼다수와 에비앙 가격의 차액인 1500원을 이런 가치를 사는데 지급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명품가방을 사고 싶고, 외제차를 사고 싶은 심리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단순히 마케팅에 현혹되어서 사고, 골이 비었기 때문에 돈 귀한줄 모르고 헛돈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기엔 아무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소비라도, 그 사람은 그 돈을 지불할 때 뭔가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에비앙은 단순히 물을 팔고 있지 않습니다. “갈증해소를 위한 물”에 추가해서 에비앙이라는 브랜드를 통해서 여러가지 “경험”들을 덧붙여 팔고 있었습니다. 그 경험은 오렌지족들에게는 아가씨를 쉽게 꼬시는 것이었고,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중국여행을 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물이 오염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신뢰였습니다.

뉴욕을 여행하다가 스타벅스를 이용하면서 든 생각은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팔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스타벅스는 문화를 판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화장실을 팔고 있었습니다. 서울시내를 걸어다니다 화장실이 가고 싶을 경우 지하철 역을 들어가거나 인근 건물 아무데나 들어가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 뉴욕은 공중 화장실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대신 골목마다 널려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면서 커피 한잔을 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을 운영하시는 많은 의사선생님들은 자신이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의료 행위에 국한된다고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봐야 할 점은 환자들의 소비 역시 단순히 핵심 상품에 국한 되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맥주를 선택할 때 맛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닌 것과 똑같습니다.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의료행위에 국한되게 생각하시는 경우 항상 논문을 읽고, 최신 지견을 공부하는 세미나에 참석하시는 식으로 노력을 하시게 되겠지요. 이것은 기본입니다. 에비앙이 통 속에 들어있는 물이 대장균에 오염되어 있지 않도록 질 관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추가해서 고객에게 어떤 스토리 또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은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요양병원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요양병원을 “만성 질환을 가진 노인들을 치료하는 곳”이라고 정의하게 되면 노인질환 치료에 대한 최신지견을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해야 하겠지요. 그것은 의사로써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태도입니다. 거기에 추가해서 요양병원은 “효심을 파는 곳”이라고 정의를 해 봅시다. 그렇게 정의를 하게 될 때 고객은 환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신 자식들로 넓혀집니다. 요양병원에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들의 마음은 상당히 복잡하게 마련입니다.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싸워야 하는 부분은 “나를 길러준 부모님을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모셔야 하는데, 내가 그 책임을 다하기 싫어서 요양병원에 맡겨버리는 것 아닌가? 남들이 나를 불효자라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분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고자 부모님과 자녀들을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행사를 한다던가, 음악회를 열어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더 나은 고객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요.

저는 과거에 소아정신과 병원을 운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소아정신과 역시 “아이들의 정신질환을치료하는 곳.”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지만, 저는 “모성을 파는 곳”이라고 정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소아정신과에 오는 많은 아이들은 부모님들과 건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소아정신과의 상담자들은 부모님들의 역할 중 빈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모성을 파는 곳이라고 정의를 하는 순간, 우리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상담자 선생님들의 모성 개발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직 결혼을 안 한 사람 보다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워본 사람을 더 우대하게 되고, 상담자 선생님들이 자기 아이 육아 문제로 고민할 때 그 부분을 병원에서 지원을 해 주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상담자 선생님들이 모성의 고귀함을 느끼게 되고, 그럴 때 아동들을 치료할 때 더 고귀한 모성을 쏟게 되니 치료의 질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습니다.

이런 식의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재정의 해 보는 것은 내 병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하고, 내가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병원 운영을 끌고 나갈지 방향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런 비즈니스 정의는 “나를 찾아오는 환자가 그 많은 병원 중에 왜 굳이 내 병원에 찾아왔을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내과 의사가 “내과 질환을 치료하는 병원”을 운영할 수도 있지만, “우리동네 주치의” 개념으로 진료를 한다던가, 산부인과가 “분만을 잘 하는 곳”일 수도 있지만, “분만 경험을 가족이 공유하면서 가족의 행복을 증진하는 곳”으로 다양하게 정의할 때 병원 경영의 방향성이 잡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코메디닷컴 관리자 kormedi@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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