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환 환자에 술은 불난 데 기름 붓는 격”

7월 5일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대회의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 간암 치료의 일선에서 암과 싸우는 소화기내과, 종양내과, 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전문의 680여명이 모인 가운데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울려 펴졌다. 아시아태평양간암전문가모임(APPLE)의 네 번째 연례행사였다.

APPLE의 초대회장이었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내과 한광협 교수(58)는 “서로에게 가교가 되자고 이 곡을 배경음악으로 정했다”면서 “이제 모임을 국제학회로 승격시키고 회원을 동남아시아 각국과 인도, 몽골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APPLE은 한 교수가 대한간암연구학회 회장으로 있던 2010년 일본 긴끼대 쿠도 교수, 중국 후단대 예신렁 교수 등에게 제안해서 300여명을 회원으로 발족한 모임이다. 한 교수는 이 모임이 국제학회로 승격되면서 다시 회장에 오른다. 아시아 각국의 간암 연구 및 임상을 우리나라 의사가 이끄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간암과의 싸움을 이끄는 한국인 의사는 ‘세상의 빛’을 못 볼 운명을 가까스로 이겨내고 태어났다. 한 교수는 아버지에게서 달변의 설득력을, 어머니에게서 경청과 배려, 적극성을 배웠지만 하마터면 한 교수는 부모의 장점을 이어받지 못할 뻔한 것. 부모가 한국전쟁 때 이산가족으로 영영 헤어질 뻔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평남 용강군에서 교회 장로로 있다가 교회 식구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갔다가 올라오지 못했다. 어머니는 무작정 내려가서 아버지를 찾아 다녔다. 부부가 인천에서 기적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한 교수를 임신하지 못했을 것이고 APPLE도 없었을 것.

부모는 결혼 뒤 마산에 정착, 아버지는 목사가 됐고 어머니는 빵을 팔아 남편과 아들 뒷바라지를 했다. 한 교수는 목사인 아버지를 닮아 여러 분야 책을 읽고 박학한 지식으로 남을 잘 설득하는 것으로 유명해서 병원에서는 ‘한구라’라고도 부른다. 어머니를 닮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 적극적으로 시도해서 간 분야의 세계적 대가가 됐다.

한 교수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로부터 ‘남을 우선 배려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협력해서 문제를 푸는 전략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 여러 진료 과가 힘을 모아 간암을 치유하는 ‘연세간암연구회’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99년 대한간암연구회의 창립과 2010년 대한간암연구학회로의 승격에도 기여했다.

한 교수는 간암을 치료하는 다른 과 의사들의 협업을 통해 방사선동위원소 요오드 131을 이용한 치료법, 방사선 동위원소 홀미움을 이용한 치료법, 온열요법과 방사선요법을 결합한 치료법 등을 개발했다. 특히 부인인 같은 병원 방사선종양학과의 성진실 교수와 공동으로 개발한 ‘항암제 방사선 복합치료법’은 암 분야 권위지 ‘캔서’에 소개돼 국제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부인 성진실 교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자문위원으로 방사선으로 종양을 치료하는 분야의 권위자다. 부부 교수는 용산구 용산동의 집과 병원을 함께 오가면서 승용차 안에서 ‘미니 학회’를 열기도 한다.

한 교수는 간염 약도 없던 때 소화기내과에 지원해서 간염과 간암 분야의 치료법이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세계적 대가가 됐다.

“1980년대만 해도 간염에 걸리면 잘 먹고 푹 쉬면서 대증요법을 하는 것 외에 직접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무기가 없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좋은 약들이 속속 나오고 있어서 간염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총알이 제한적이어서 사정거리에 들어와야 총탄을 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총탄이 다양해져서 초기 단계부터 치유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간암도 이전에는 효과적인 항암제가 없어 ‘고아 암’으로 불렸지만 새 항암제가 등장했습니다.”

한 교수는 B형 간염 치료제 제픽스, C형 간염 치료제 리바비린, 간암 표적치료제 넥사바 등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도입해서 환자에게 쓰고 있다.

그는 “간암 진단을 받았어도 수술과 다양한 치료법으로 치유가 불가능하지 않으므로 환자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면서 “그렇지만 간암은 이전 단계에서 충분히 막을 수가 있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많은 암들이 갑자기 불쑥 나타나는 데 비해서 간암은 대부분이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가 간염, 간경변증 단계를 거쳐 나타난다는 것.

“간염과 간암은 화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불씨를 안고 있는 상태입니다. 간염이 시작되면 불이 붙은 것이고요. 활동성 간염은 불이 활활 타는 것이고 간경변증은 타서 재가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초기에 불을 잡으면 간암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술은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것이고 과로와 스트레스는 부채질하는 것입니다.”

한 교수에 따르면 만성 간질환의 70%는 B형 간염 바이러스, 15%는 C형 간염 바이러스 때문에 생기고 나머지 15%는 술과 약 등의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비 바이러스 간염.

“B형 간염은 대부분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하고 발병하면 완치율은 낮지만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약을 먹으면서 관리할 수 있습니다. C형 간염은 예방백신은 없지만 인터페론주사와 리바비린 약 병행요법을 받으면 50~60% 완치가 됩니다. 내년에 신약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완치율이 20% 이상 높아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간염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치료를 포기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방심해서도 안 됩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고 불씨가 확신돼 어느 순간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나타날 수 있으니까요.”

간 질환 내과진료 베스트닥터에 한광협 교수

한광협 교수에게 물어본다

[웹툰] 한광협 교수의 간(肝)주부전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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