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니까? 되레 남처럼! 잔소리의 심리학

“아직 취직도 못하고 있니?”

“올해에는 꼭 결혼해야지”

“아들은 언제 낳을 거니?”

명절은 고향의 가족, 친구를 만나서 웃음꽃을 피우는 때이지만, 많은 젊은이는 고향에 가기 싫다. 누군가의 잔소리 때문이다. 분명,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고 믿지만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왜 사람들은 잔소리를 할까?

서울대 의대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사람은 흔히 충고라고 생각하면서 잔소리를 하지만 듣는 사람의 무의식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면서 “잔소리로 인한 갈등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무의식의 충돌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잔소리를 통해 무의식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자아감을 확인하는 반면, 잔소리를 듣는 사람은 무의식에 상처를 받아 보호본능이 촉발된다는 것. 의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하고 고마운 이야기인데도 반발이 나오기 쉽다는 설명이다.

잔소리는 나르시즘의 표현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인 김혜남 인천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장은 잔소리를 일종의 나르시시즘으로 해석했다. ‘모든 사람은 내 생각에 맞춰야 한다’는 무의식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김 소장은 “옛 집단사회에서는 가깝다고 생각하면 남의 생활에 침투해도 된다는 의식이 있어 남과 나의 경계가 불분명했고 어른의 잔소리가 문제되지 않았다”며 “반면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경계를 지키고 싶은 욕구가 강하므로 잔소리가 상대방의 방어본능을 촉발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편으로 잔소리를 하는 어른은 공동체 사회에서 지금의 젊은이들이 자란 과정을 잘 알기 때문에 더 친하게 여기는 반면, 젊은이들은 그때를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친척의 말을 ‘남의 공격’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의 잔소리보다 부모, 친척의 잔소리에 더 상처를 입는다. 왜 그럴까?

우선 가족은 ‘내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어릴 적에 부모에 의해 자극이나 억압을 받았던 요소들을 무의식의 세계에 저장하는데 부모의 한 마디는 이 요소를 건드리기 쉽다. 특히 명절에 온 가족이 두루 모인 장소는 경험을 공유한 여러 사람의 무의식이 함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잔소리가 누군가의 무의식을 건드려 갈등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잔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인격성향을 가진 사람은 잔소리를 많이 한다. 자기애적 인격성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잔소리를 한다. 또 수동공격적 인격성향은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한 성격을 보인다. 정신의학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를 때 고개는 바짝 숙이고 발로는 페달을 힘껏 밟는 것에 비유해 ‘자전거를 타고 언덕 오르는 유형(Up-Hill Bike)’이라고 부른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강한 사람에게는 침묵하면서 착한 사람에게는 상대방의 처지는 아랑곳 않고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옛날 시어머니 스타일이다. 수동공격적이거나 자기애적 인격경향이 강한 부모가 자기애적이나 경계선 인격경향을 띠는 자녀에게 잔소리를 하면 집안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잔소리, 욱하는 마음 어떻게?
별 뜻도 없이 한 잔소리 때문에 생기는 가정불화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어른들은 말하는 빈도를 줄이고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한 뒤 이야기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말을 하면 상대방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양창순 신경정신과 원장은 “가족도 남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를 가지면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언어 갈등은 남이라고 생각하면 무의식의 반발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부모 자식 관계나 부부 관계에서 대부분은 ‘가족인데 이런 이야기도 못하나’하는 마음만 버리면 갈등의 씨앗부터 줄어든다. 남이라고 생각하면 하지 않아도 될 잔소리가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잔소리를 듣는 사람도 직장 상사나 교수님 등이 말할 때 욱해서 대들지 않는 것처럼 남처럼 대하면 갈등이 줄어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모나 친척이 스스로 잔소리를 거두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 잔소리를 듣는 사람이 이런 현상들을 이해하고 가족이 덕담을 건넬 때 만약 기분이 나쁘면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떠올리면서 ‘아, 내 무의식이 상처를 받았구나’하면서 숨을 고르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코메디닷컴 관리자 kormedi@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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