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의 가족

암 환자의 가족—성진실의 방사선 이야기 29

진료가 끝나고도 이것저것 학술 관련한 업무를 하다보면 저녁식사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이미 직원 식당은 문을 닫았고, 하는 수 없이 병원 내에 있는 일반인을 위한 식당을 방문한다. 썰렁한 식당에서 혼자 마주하는 늦은 저녁을 한술씩 뜨다 보면 본의 아니게 주변의 대화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이 시각에 식당을 방문하는 이들은 주로 환자의 보호자들이다.

입원이 하루 이틀… 길어지면 대개 붙박이로 있게 되는 보호자가 정해지기 마련이다. 생활이 분주하여 하는 수 없이 간병인을 채용하더라도 환자의 배우자나 자녀들 중 한 두 사람이 환자에 대한 모든 책임을 맡게 된다. 나머지 가족 또는 친지들이 환자를 방문하게 되는 시간은 직장일이 끝나는, 늦은 저녁시간이 되는 것이다. 직장 동료나 친구, 사회 생활에서 만나는 지인들이야 환자를 방문하여 위로를 건네고는 곧 자리를 뜨게 되지만 학업이나 직장, 또는 결혼으로 인해 먼 도시에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은 환자를 방문한 후 함께 식사도 하고 의논도 할 겸 식당을 찾게 된다.

진철씨는 방사선-항암 약물 치료를 하느라 4주째 입원해 있다. 6인실에 입원하여 있으니 1~2인실에 비하여 병실료가 저렴한 것 까지는 좋은데 같은 방에 입원해 있는 다른 환자들로 인해 도무지 편안하지가 않다. 바로 며칠 전, 같은 병을 앓는 환자가 임종을 맞이하는 것을 보았다. 동병상린이라고, 의지하면서 내심 그이보다 더 잘해내야지 하며 은근한 경쟁심까지 있었는데, 점점 악화되면서 결국 사그라지는 모습을 보니 영 뒤숭숭했다.

또 어느 날은 일단의 무리가 바로 옆 침대의 환자를 방문한 적도 있었다.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입을 떼는 것으로 시작하여, 무리 전체가 합동으로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함께 노래도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근 1시간이나! 뒤척이다가 간신히 잠을 이루려는 순간이었기에 화가 치밀었다. 그는 애꿎은 자기 아내에게 그 짜증과 불평을 여과 없이 쏟아내었다. 아내는 상대가 암환자이다 보니 말없이 그 것을 다 받아내지만 섭섭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젖먹이가 딸린 출가한 딸이 병문안을 왔다. 영주씨는 안다, 자기밖에는 이 힘겨운 짐을 질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다 키운 딸은 뭐하는 거냐며 눈물지으며 서러워한다. 환자의 짜증 다 받아내고 침대 아래 매트 깔고 쪽잠 자느라 몸 여기저기 쑤시지 않은 곳이 없는데 내 팔자가 왜 이러냐며… 오랜 간병에 지친 가족의 하소연이다.

현숙씨는 수년전 남편을 여의고 홀로 네 남매를 키웠다. 다 분가하였고 직장 때문에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미혼인 막내 빼고는 다 맞벌이에다 아직 어린 자식들까지 있어서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고 있는 터였다. 현숙씨는 자녀에 의지하지 않고 남편의 연금으로 근근이 혼자 생활해왔다.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제일 먼저 걱정되는 것은 자신을 누가 돌보아 줄지, 비용은 어찌해야 할지 하는 현실적 문제들이었다. 자녀들이 돈을 추렴해서 급한 진료비 등은 해결을 했다. 그러나 항암 치료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기력이 떨어지고 혼자서 의식주를 해결하기 어려운 시기에 이르렀다. 자녀들의 생활도 빠듯한 수준이었다. 돈을 분담해서 간병인을 고용하기로 했다.

막내가 불만을 터뜨린다. 제일 혜택을 많이 받은 맏이가 더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어떻게 갓 입사해서 돈 모아 결혼 준비도 해야 하는 자기까지 똑같이 분담해야 하냐고. 맏이도 할 말이 많다. 부모 사랑을 독차지한 것은 막내인데,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냐고. 초등학교 다니는 두 자식 학비만 해도 한사람 월급 다 들어가고, 할부로 산 자동차 월부금에다가 반전세로 있는 만큼 매달 집세도 나가는데, 변변한 집 한 칸 전세할 돈도 물려받지 못하고 결혼한 자기더러 맏이라고 그런 의무 하라는 게 어디 쓰여 있기라도 하냐며. 입원비에 간병인에 비용지출은 늘어 가는데, 가족 간 분담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다.

미숙씨는 처음에는 직장암으로 입원을 하였다. 치료를 잘 받고 한동안 잘 지냈다. 함께 살고 있는 아들 내외가 다 직장을 다니므로 어린 손주를 돌보는 일은 아프기 전부터도 그녀의 몫이었다. 활동 반경이 점점 넓어져가는 사내아이를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머니 병에 혹시라도 나쁜 영향이 있을까 싶어서 아들 내외는 가사 도우미에게 어린 자식을 전담하도록 했다. 그래도 그게 아니었다. 칭얼거리는 손주를 업어 재우고 씻기고 하는 것은 여전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포대기로 손주를 업으려는데 칼로 째는 듯한 심한 통증이 허리를 강타했다. 중심을 잃고 쓰러졌는데 깨어 보니 병원이었다. 암이 재발했단다. 처음 수술한 곳은 괜찮은데, 척추 뼈 몇 군데로 전이가 되어 신경을 압박하다 보니 심한 통증이 온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쓰러지면서 골반 뼈에 골절상을 입었다. 노쇠한 몸의 약해진 뼈는 넘어질 때의 충격 정도로도 골절이 온다는 것이었다.

출가한 딸은 어머니를 제대로 못 모셨다면서 오빠를 나무란다. 올케가 돈 벌어봤자 겨우 제 용돈 벌이나 할 정도면서, 어머니 고생시켜서 이렇게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묵묵히 참고 듣고 있던 아들도 비난의 화살이 자신의 아내에까지 이르자 언성을 높인다. 그렇게 어머니 생각 많이 했으면 모시고 살지 그러냐고, 언제 병원비 한번 내봤냐고. 싸움이 사뭇 커지는 것 같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유산을 누가 많이 받았냐는 등, 이미 지난 이야기까지 들추어내며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도 잊은 듯 급기야는 감정 폭발로 이어진다. 이런 종류의 가족 간 갈등은 매우 빈번하게 목격하게 된다.

암환자의 투병의 길은 외롭지만 사랑하는 가족으로 인해 소중하고도 풍성한 시간을 누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한사람에게만 간병의 책임이 과다하게 집중되면 그 부작용이 터져 나온다. 간병하던 가족이 병을 얻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지혜로운 행동이 필요하다. 간병은 육체적인 노동과 시간의 봉사 뿐 만 아니라 환자의 정서적인 면도 지지해 주어야 하는 매우 피로감이 높은 일이다. 간병인을 쓸 수도 있고, 가족들이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협력/분담해서 지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암을 진단 받았을 때의 당혹감, 분노, 원망, 우울…이러한 감정은 환자 뿐 만 아니라 곁에 있는 가족도 비슷하거나 혹은 더 심한 정도로 겪는 것을 흔히 본다. 암환자 가족의 육체적, 정서적 수고를 위로하는 의료인의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저넘어 복도 끝에 두 개의 그림자가 움직인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병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연로한 어머니. 그리고 그 옆에는 바짝 마른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녀의 느린 걸음에 맞추어 걸어가는, 장성한 젊은 아들. 세월을 거슬러 이삼십 년 전을 그려 본다. 시기에 맞춰 예방접종하랴 철 바뀔 때마다 잦은 감기에 진료 받으랴, 어린 아들 손잡고 병원 문을 들어서던 젊은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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