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암치료는 전문팀에 달려 있다”

성진실의 방사선 이야기 25

경제 사정이 팍팍해 지면서 여가 시간의 취미생활 패턴이 바뀐다고 한다. 비용을 들이는 적극적 활동에서 다소 수동적인, 예를 들면 영화 감상 같은 여가 활동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 바쳐지는 열정과 치열함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여유로운 관망의 자세에서 다소간의 긴장과 집중의 마음가짐을 여미게 되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주인공의 멋진 연기와 매력적인 모습에 매료되고 감동적인 스토리는 여운처럼 길게 남는다.

대부분 관객들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운을 음미할 새도 없이 자리를 떠난다. 필자의 경우, 어떤 영화든 간에 늘 감동을 주는 장면이 있다. 바로 영화가 다 끝난 후 끝없이 계속되는 엔딩 롤이다. 이 때 등장하는 음악까지도 영화를 마무리 짓는 최고의 디저트이다. 엔딩 롤을 보라.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여 전력을 다했는지를 보여준다. 수많은 조연 배우, 엑스트라, 무대 장치, 효과음, 조명, 영상처리, 음악, 그래픽, 등등….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에서는 여러 분야 전문 인력 간의 긴밀한 협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현대 의학에 가장 도전이 되는 암을 성공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많은 전문 인력들이 조화롭게 공조하는 체계가 필수적인데, 이것은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 어느 분야든지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성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하여 의견 조율에 필요한 양보와 타협에 인색하기 마련이다. 의학 분야 전문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 병원에는 환자의 증례를 토론하고 그에 관련한 학문적 자료를 공유하면서 치료에 대한 논의를 하는, 이른바 증례 토의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일반 종합병원에 비하여 흔치 않은 질병을 지닌 다양한 환자를 자주 대하게 되는데, 익숙하지 않은 질병에 대한 최적의 진료를 토론하는 시간이다. 이는 전공의 수련과 의과대학 학생의 임상 교육이라는 대학 병원의 주 책무에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진행 방식인데, 필자가 처음 수련과정을 시작하던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증례 토론은 토론의 시간이 아니었다. 연배가 높으신 선임 의사 말씀 한마디면 일체의 토론여지 없이 모든 상황 종료! 예외가 있다면 갈등 관계가 있을 법한 다른 분야의 역시 연배 높으신 선임 의사가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인데 대개 두 사람의 언쟁으로 시작되어서 결론이 뭔지 애매하게 끝이 나곤 하였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금의 의학은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자신이 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따라가기만도 숨이 찰 정도이다. 그러니 다른 분야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여러 전문가가 한 팀으로 협동하여 진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팀에서는 정확한 진단을 하는 과정, 암의 병기를 평가하는 과정, 암환자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하는 치료 방침, 치료 후의 관리 등 암환자 치료 및 돌봄의 여러 단계가 토의되고 실행된다. 내과, 외과, 영상의학과, 병리학과, 방사선 종양학과 등 관련된 분야의 전문 의사들과, 간호사, 진료 코디네이터, 때에 따라서는 의무기록사, 사회사업가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팀을 이루어 조화롭게 또한 평등하게 의견을 내어 암환자의 진료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암치료에 있어서 전문가 팀은 필수적이다.

팀에 참여하는 각 분야들도 역시 세분화된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으로 일한다. 팀 속에 있는 또 하나의 팀이랄까? 예를 들어 간암을 방사선 치료하는 경우, 까다로운 과정이 수반된다. 암의 크기, 모양, 분포 양상은 물론이고 암을 지니고 있는 간장이 기능적으로 얼마나 건강한지, 암을 제외한 용적은 충분한지…. 현재로서 방사선 치료로 의뢰되는 간암환자의 경우는 초기의 진단 후 첫 치료보다는 꽤 진행된 경우가 많고 이미 다른 치료를 하다가 재발되거나 내성이 생긴 경우들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고려 사항은 매우 진지하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검토되게 된다. 일단 방사선 치료하기로 결정한 후에도 정확한 치료를 위한 여러 단계의 준비과정이 전개된다. 호흡에 따라 움직이는 장기이므로 이를 고려하기 위하여 규칙적인 호흡 운동을 연습시키고 호흡으로 인한 움직임을 최소화 하는 압박 장치를 사용한다. 인접한 위장관들이 방사선에 민감한 장기들이므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세심한 작업을 필요로 한다. 설계용 영상을 촬영할 때 조영제를 섭취하게 하여 위장관을 시각적으로 잘 보이게 함으로써 전산화 설계를 진행할 때 이러한 민감한 위장관을 피해나가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위장이 치료 때마다 용적이 달라지면 이로 인해 간의 위치도 영향을 받으므로, 약 네 시간 가량 금식을 한 상태로 치료에 임하게 한다. 또한 치료할 때마다 그 날 치료의 정확성을 점검하기 위해서 영상으로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다. 이런 일을 누가 할까? 방사선 치료의 이 여러 단계에는 의사, 간호사, 선량 계측사, 의학 물리사, 방사선사 등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된다. 이들의 협력은 오케스트라의 조화로운 연주처럼 잘 조율되고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고자 한다. 공통의 목적-그 것은 성공적인 암치료이다!!

암의 치료에도 영화 한편 만드는 것 못지않게 수많은, 무대 뒤 보이지 않는 수고와 헌신들이 녹아 있는 것이다. 명의 한 사람이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 것이다. 방사선 치료는 아마도 무대 뒤의 일이 더욱 많은 분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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