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은 우리 몸 ‘착각’탓…의지로 해결 안돼

박용우 원장의 리셋 클리닉

우리 몸은 나름 합리적이다. 불필요하게 지방을 붙일 이유가 없다. 지방을 많이 붙여놓으면 허리나 무릎관절에 무리가 갈 뿐 아니라 지방조직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혈관과 혈액을 공급해야 하므로 당연히 심장에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이 틈만 나면 부지런히 “일정 수준의” 지방을 붙이려 드는 이유는 뭘까? 바로 생존본능이다.

원시 인류 시절부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조직은 바로 지방조직이었다. 먹거리가 풍요롭지 못하다 보니 기근이 들거나 겨울철에 음식 얻기가 어려울 때를 대비하여 내 몸은 여분의 연료 축적 창고를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기근이 왔을 때 끝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몸에 여분의 연료축적 창고를 많이 만들어 놓은 사람이었다. 이런 본능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음식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21세기까지 몸에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 몸은 ‘안정’을 찾아 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항상성이 있다. 체중과 체지방의 세트포인트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게끔 하는 컨트롤러는 체중계 눈금에 관심이 없다. 체형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관심은 오로지 지방을 얼마나 비축해 두어야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가에만 있다.

몸 속 지방조직의 미묘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지방조직에서 분비되는 렙틴호르몬의 분비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지방이 늘어 렙틴도 늘면 뇌의 시상하부는 배부르다는 신호를 받아들여 덜 먹게 된다. 지방을 줄이려는 노력은 먹는 것을 줄이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갑상선호르몬과 교감신경을 조절하여 체온이 높아지고 신진대사가 늘어 지방을 줄여나간다. 거꾸로 지방이 줄면 렙틴도 적어진다. 우리 몸은 더 먹고 체온은 낮추고 신진대사는 줄여 지방을 다시 적정 수준으로 비축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유전과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류가 지금처럼 음식의 풍요로움을 누려본 적이 없었다. 뇌는 렙틴 분비량이 부족한 상황에는 익숙하게 반응하지만 렙틴 분비량이 넘쳐나는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한다.

렙틴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어 혈액을 타고 돌다가 렙틴 수용체와 결합하여 작동한다. 마치 열쇠를 자물쇠에 넣어 돌리면 문이 열리는 것과 같다. 비만쥐인 ob/ob mouse는 유전적으로 렙틴 호르몬 생성과 분비에 장애가 있어 비만해졌지만 비만한 사람의 경우는 렙틴 호르몬 수용체에 장애가 있다.

뇌에서 렙틴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용체는 한계가 있는데 렙틴이 계속 늘어나니 뇌는 렙틴의 신호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이를 ‘렙틴저항성’이라고 한다. 렙틴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여 렙틴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렙틴이 부족하다고, 즉 ‘지방이 부족하다고’ 착각하게 되면 우리 몸에 계속 지방을 더 붙이게 된다.

즉 비만은 객관적으로는 지방이 넘쳐나도 뇌의 시상하부에서는 지방이 부족하다고 착각하는 질병이다. 120mmHg를 유지했던 혈압이 180mmHg까지 올라갔을 때 내 의지력만으로 끌어내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이 부족하다고 착각하고 적정 체중을 60kg에서 80kg까지 리셋, 즉 늘려놓았다면 내 의지력만으로는 정상 체중으로 끌고 내려오기 힘들어진다. 이제 과식은 비만의 ‘원인’이 아니라 조절기능 이상으로 체지방을 더 쌓아두기 위해 나타나는 ‘증상’인 셈이다. 비만은 의지력 박약이나 자기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뇌하수체 렙틴수용체가 제대로 작동이 안되어 발생하는 질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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