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항문을 피하는 방법

재능있는 야구인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매스컴의 톱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결혼해 사랑스런 두 자녀까지 둔, 그야 말로 정상을 달리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추락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 마지막 순간,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 잊을 수 없는 한 환자가 떠오른다.

김재철씨(가명)는 아내와 초등학생 남매를 둔 평범한 40대 가장이다. 회사원인 그는 퇴근 후 회식이 잦아 삼겹살 구운 냄새를 풍기며 귀가하는 날이 많았다. 술에 찌들어 현관에 들어설 때마다 아내와 다투는 일이 있기는 해도 나름대로 평탄한 길을 걸어온 대한민국의 평균 가장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변비가 생겼는지 화장실 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변에서 이따금 피가 묻어 나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아내의 권유로 찾아 간 병원에서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직장암 판정을 받은 것. 의사는 “암이 많이 퍼지지는 않았지만 수술을 해야 한다”면서 “하필이면 암이 생긴 부위가 항문과 가까운 하부(아래쪽) 직장이어서 수술을 하게 되면 항문이 없어지고 배에 인공 항문을 달고 다녀야 한다”고 진단한 것이다.

암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완치가 가능하다는 의사의 이야기는 들리지도 않았다. 아직 팔팔한 나이에 인공 항문이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것도 아랫배 피부로 바로 장과 연결하는 방식이어서 항상 배변 주머니를 붙이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철씨는 인공항문을 달고 다니는 삶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충격적인 암 진단을 받고 한없이 우울해진 그는 인공항문 이야기까지 듣자 그냥 삶을 포기하고 싶어 졌다. 이런 그를 지탱해 준 사람이 바로 그의 아내였다. 아내는 자포자기로 무기력해진 남편을 대신해 암클리닉을 방문하였다. 그의 아내를 통해 김씨가 두 번씩이나 삶을 포기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자녀를 둔 가장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다. 그만큼 김씨가 받은 심적인 고통이 컸다는 뜻일 것이다. 이 사례는 이후 필자의 진료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직장암은 전신에 퍼지지만 않았다면 대부분 완치가 가능하다. 완치의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수술적 제거이다. 직장암이라도 부위가 위쪽 부분이면 수술 후 인공 항문이 생기지는 않는다. 문제는 항문에서 5cm 위쪽 방향까지 해당되는 아래쪽 부분(하부) 직장암이다. 이 하부 직장암의 표준 수술법은 복부회음부 절제술으로 수술 후에 자기 항문이 없어지고 대장의 끝이 하복부 피부로 바로 연결되는, 이른 바 인공 항문이 생기게 된다. 직장암 수술을 담당한 의사들이 고민을 거듭하는 것이 바로 환자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인공 항문을 다느냐의 문제이다.

인간의 항문은 조물주의 기막힌 작품이다. 변이 일정량 모이면 항문을 자극해 변을 보고 싶은 느낌이 오게 한다. 또한 방귀, 설사, 일반 변 등을 잘 구분하여 상황에 따라 항문 이완의 정도를 잘 조절해 건강한 사람은 실수 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인공항문을 달게 되면 수시로 변이 배변 주머니에 쌓이게 되므로 냄새도 나고, 옷 매무새도 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번씩 새주머니로 갈아주는 일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설사라도 하면 참으로 괴로운 상황이 벌어진다. 인공 항문을 받아 들이는 입장에서 보면 농사일을 하는 사람과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 젊은 층과 노년층, 그리고 여성과 남성 간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만 삶의 질이 추락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방사선 치료를 먼저 하는 것이다. 방사선 치료의 항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항암 화학 약물 요법을 병행하는, 방사선-항암 약물 병용요법으로 진행한다. 이 과정이 끝난 후 종양이 줄어들기까지 약 1개월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 수술을 시행한다. 수술 과정에서 항문을 살릴 수 있을 지 여부는 종양에서 항문까지의 거리가 제대로 확보되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경험이 많은 외과 의사는 1~2 cm만 확보되어도 인공항문 없이 환자 본인의 항문을 살려낼 수가 있다.

병원마다 복부회음부 절제술을 하는, 즉 인공 항문을 남기는 수술의 빈도가 10~67%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환자의 삶의 질 보존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가를 반증한다고도 생각된다. 외과 의사들은 특성상 수술을 최우선으로 하고 싶어 한다. 수술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친 나머지 다른 분야의 역할을 경시하는 외과 의사도 있다. 이를 초월하여 방사선 치료, 항암 약물 치료를 적절하게 시행하고 그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서 환자의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수술을 하는 것이 의사로서 보람된 일이 아닐까?

김재철씨는 먼저 방사선-항암 약물치료를 받아 종양의 20% 정도가 줄어 들었다. 무사히 항문을 보존하는 수술을 한 것은 물론 종양 덩어리를 수술 후 떼어내 정밀 검사를 해보니 암세포가 완전히 사멸되어 있었다. 대개 15~25%의 빈도로 종양이 완전히 사멸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수술을 다 마치고 난 후 김씨 부부가 밝은 얼굴로 찾아왔다. 방사선 종양학 전문의사의 기쁨은 바로 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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