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셔츠에 대한 로망

나는 비를 맞는 건 질색이지만 비에 젖은 인간을 보는 건 좋아한다. 만약 기회가 무한하다면, 틈날 때마다 흠뻑 젖은 셔츠를 입은 남자를 핥고, 더듬고 싶다. 예전에 살던 칼리지 타운에서는 이 젖은 남자들을 참 많이 봤다. 그 동네 남자들은 아침부터 비가 미친 듯 내리지 않는 한 부슬비는 그냥 맞고 다닌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들의 옷차림이 대개 헐렁한 티셔츠 아니면 후드가 달린 티라는 것. 내가 바라는, 몸에 피트 된 화이트 셔츠를 입은 젖은 남자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그런 남자들은 우산을 쓴다. 우산 쓴 셔츠남들을 바라볼 때 마다, 어쩌면 저들은 나 같은 사람이 비에 젖은 자기의 젖꼭지와 등 라인을 훑는 걸 막으려고 우산을 든 게 아닐까, 같은 공상에 빠지며 그저 입맛만 다실 뿐.

나의 섹스판타지 만족을 위해 같이 사는 남자에게 홀딱 젖은 채 집으로 오라고 주문할 수 있지만 어쩌나, 훈육의 후풍은 생각보다 오래 간다. 내 어머니는 비오는 날, 남의 집에 가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우산을 드는 날엔 외출도 막는 분이었다. 그리고 힙합 스타일 청바지가 유행할 때, 비에 젖어 땅을 쓰는 내 청바지 밑단을 본 어머니가 “그 청바지, 현관에서 벗고 들어오지 않을 거면 버려!” 라고 소리치던 모습이 각인되어선지 적어도 내 집을, 스스로, 비에 젖은 옷으로 물바다로 만드는 건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낸 대안이, 파트너가 샤워할 때 옷을 입은 채로 들어가게 만드는 거다. 물론 매번 샤워할 때마다 옷을 입히는 건 아니고 세탁이 필요한 셔츠가 있을 때 파트너에게 입히고 욕조로 밀어 넣는다.

이런 개인적인 섹스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나면 정말 내가 ‘그렇게’ 사는지 궁금해 쪽지를 보내는 분들이 간혹 있다. 쪽지로 이미 답변했으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나 정말 이렇게 산다. 솔직히 말하면 내 남자가 섹스에 환장하는 파트너가 아니라서 이런 나의 즐거움을 이어가는 게 가능한 것 같다.

그에게 당신의 젖은 셔츠 위로 드러난 근육과 뼈를 더듬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이 여자(더 정확히는 변태), 또 시작이군.’ 같은 눈빛을 잠깐 던지지만 웬만하면 내 바람을 들어준다. 그러니까 속으로는 나의 이런 섹스 판타지를 아주 우습게 여기지만 겉으로는 당신이 원하니까 넓은 아량의 내가 들어준다는 태도다. 뭐, 나도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운동하고, 끝나면 그 날의 운동 결과를 안주삼아 밤새도록 떠들고 노는 내 남자의 생활 패턴을 속으로는 비웃지만 겉으로는 간섭하지 않고 잘 다녀오라며 인사하니 우린 서로 비긴 셈.

얼마 전에 미국의 남부로 이사를 왔다. 매일이 화창한 여름 오후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비에 젖은 남자의 셔츠에 대한 갈망이 부쩍 더 크다. 참고로, 나는 꼭 셔츠만! 입히고 남자를 욕조로 보낸다. 샤워기를 틀고, 흠뻑 젖은 남자의 셔츠를 더듬다보면 어느 새 식어 있던 그의 페니스가 빳빳이 고개를 드는데, 그 주위로 물이 튕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게다가 하의는 젖으면 벗기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서 말이다. 그 다음은 침대와 마찬가지다. 욕조에서도 여자와 남자가 할 일은 딱 붙어 있는 거다. 붙어 있다 보면 진전이 있다. 반드시.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 blog.naver.com/wai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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