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조정 신청에 의사 40%가 동의”

추호경 중재원장 “의협 반발은 오해 탓”

“정의의 여신이 든 저울처럼 의사나 환자 모두가 수긍하는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확인하고 또 확인할 것입니다.”

추호경(64·사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초대 원장은 직원과 함께 활짝 웃는 모습의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그건 거짓 꾸밈 아니냐’며 거절할 만큼 뼛속까지 원칙주의자였다.

그는 20여 년간 검찰에 몸담으며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장을 지냈던 법조인답게 “엄격하고 객관적인 잣대로 정확한 조사를 벌일 것”이라며 “법 테두리 안에서 공정한 조정을 하는 게 의료중재원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료중재원은 최근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조정에 절대 응하지 말라는 문자 메시지를 회원들에게 보내는가하면 일부 언론은 상담 건수에 비해 실제 조정에 들어가는 비율은 매우 저조하다며 무용론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어렵사리 기자와 만난 그는 “앞뒤 말을 다 자르고 쓰는 기사에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어 취임 이후 인터뷰 요청을 고사해왔다”며 “원장이 된 이상 제대로 의료중재원에 대해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기자와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서울역 근처 서울시티타워 20층에 위치한 중재원장실에서 이뤄졌다.

– 중재원이 무슨 일을 하는 기관인지 설명해달라

중재원은 의료분쟁과 관련해 환자 측의 피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구제하고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 환경을 조성해주는 역할을 한다. 의료분쟁 조정·중재는 신청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마무리된다(한차례 30일 연장 가능).

조건은 분쟁 당사자 모두 조정에 참여하겠다고 동의해야 한다. 조정이 시작되면 감정부가 해당 사건을 조사해 조정부에 넘기면 감정서를 바탕으로 결정서를 작성한다. 쌍방 모두 중재안에 최종 합의하면 조정은 끝나며, 정식 재판과 동일한 효력을 미친다.

– 의료분쟁조정제도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인가

환자는 자신이 당한 의료사고에 대해 정확한 감정을 받을 수 있다. 예전에는 재판부가 의료기관에 의뢰하는 방식으로 감정이 이뤄져 한계가 있었지만 독립 기관인 의료중재원은 원내 감정단이 직접 감정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정에 들어가는 비용도 매우 저렴하다. 처리 기간도 매우 짧아 신속한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전에는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나 유가족이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민사 소송밖에 없었다.

의료인 입장에서는 막대한 소송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병원 문을 닫고 수사기관에 직접 출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오직 환자의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다. 특히 조정이 성립되면 해당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면제된다.

– 전체 상담 건수에 비해 실제 조정이 시작된 건수가 현저히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9월 17일 현재 상담 건수는 17,643건, 조정 신청 건수는 221건이다. 상담 건수에 비해 조정 신청 건수는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당수 상담 전화는 중재원의 기능과 역할 등에 관한 것들로 순수 의료사고와 관련된 상담은 5,000여 건이었다.

또한 법 시행일(4월 8일) 이후에 발생한 의료사고만 대해서만 조정·중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정에 들어간 건수는 적을 수밖에 없다. 특히 환자나 의료인 쌍방 모두 동의해야만 조정 절차가 시작되기 때문에 한 쪽이 의도적으로 조정을 거부하면(제도 특성상 거부는 대부분 의료인이 한다) 그 비율은 더 떨어진다. 이는 의료중재원이 풀어야 할 숙제로 대국민 홍보는 물론 제도 개선에 대한 연구에도 더욱 힘을 쏟겠다.

– 의협은 조정·중재제도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는데.

제도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빚어진 오해다. 의협에서는 조정 신청에 절대 응하지 말라는 문자 메시지까지 회원들에 보내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조정을 신청한 전체 건수 중 의료인이 응한 비율이 40%가 넘는다.

그만큼 의료사고가 의료인에게 주는 부담감이 엄청나다는 방증이다. 조정 절차가 완료된 21건의 의료분쟁 중 최종 합의에 이른 건수는 18건으로 조정성립율이 85%를 웃돌았다. 조정·중재 제도를 택한 환자와 의료인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의협은 ‘손해배상금 대불제도’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인데.

“대불제도는 조정결정 등으로 손해배상금이 확정되었지만 배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 중재원이 우선 지불해주는 제도다. 중재원은 해당 의료인에게 구상청구를 하지만 이때 의료인은 배상금을 형편에 따라 나눠낼 수 있다. 대불비용 적립을 위한 분담금을 의료기관에서 미리 걷어두는데 금액은 개원의의 경우 최대 3만원에 불과하다.

전체 의료인 중 보험사 배상책임 보험에 가입한 비율은 겨우 절반이 넘는 수준이다. 이는 매년 부담해야 할 보험료가 최고 600만원이 넘는 현실적 이유에 기인한다. 나머지 의료인들은 ‘의료사고를 안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무런 대비책 없이 진료 행위를 하고 있다.

만에 하나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이라도 하면 막대한 배상금 때문에 의사는 병원 문을 닫는 것은 물론 파산까지 할 수 있다. 중재원의 대불제도를 활용하면 이 같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 세무사나 변호사 등 다른 전문 직역에서는 회원들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아 적립해두고 있다. 보험과는 별개의 개념이기는 하지만,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의료인 직역에만 이 같은 제도가 없다. 진작 시행됐어야 했다.

의료중재원은 문을 연 지 5개월밖에 안 된 신생기관이라 부족한 부분이 많다. 주어진 인력과 재원을 의료분쟁을 정확하게 감정하고 조정하는 데만 쏟아도 현재로서는 부족한 형편이다. 지금은 대불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 중재제도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꼭 하고 싶었다. 분만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인에게 과실이 없다는 판정이 나와 보험회사에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면 환자는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제 이 같은 내용의 판례들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환자가 병원으로 찾아와 난동을 부려 의료인이 제대로 된 진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생기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개원가에서는 과실이 없음에도 합의금을 주고 사태를 무마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환자는 비록 의료인의 과실로 벌어진 사고는 아니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좋고, 의료인 입장에서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진료할 수 있게 된다. 의료사고를 걱정해 분만 진료를 꺼리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

–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대국민 홍보 활동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나

일부 의료인들은 의료분쟁조정법이 의료분쟁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조장’한다며 비아냥댄다. 제도의 내용을 오해해서 나온 얘기이다. 그래서 의료인 및 의료기관들을 상대로도 교육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오해로 빚어진 간극이 크다보니 기존에 일정이 잡혀있던 교육마저 취소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어 답답하다. 코메디닷컴 같은 매체에서 의료중재원 역할의 중요성을 알고 성원해줘 큰 힘이 되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의료중재원의 원훈은 ‘바르게, 따뜻하게’이다. ‘바르게’는 ‘의료사고 감정은 정확하게, 사건당사자에게는 공정하게, 사건 처리는 신속하게’ 하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확·공정·신속 세 가지가 갖춰졌을 때 비로소 ‘바르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겠나.

‘따뜻하게’는 몸과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환자와 분쟁에 시달려 지쳐있는 의료인 모두를 의료중재원이 따뜻하게 보듬어주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의료분쟁에 휘말린 환자나 의료인이 의료중재원을 찾는다면 바르고 따뜻하게, 최선을 다해 돕겠다.

*추호경 원장은=서울고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남부지검 검사, 인천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거쳐 2004년 대전지검 천안지청장을 끝으로 퇴임했다. 주요 저서로 『의료판례해설』 『의료과오론』 『의료과오 손해배상』 등이 있다. 대통령 표창과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오현 기자 cartier1629@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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