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한 아들을 평생 돌보는 범고래와 폐경의 진화

범고래 암컷은 폐경 이후 생존기간이 가장 긴 동물이다. 30, 40대에 폐경을 겪지만 90대까지 생존할 수 있다(이에 비해 수컷은 60, 70대까지 사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최근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밝혀낼 단서를 찾아냈다. 장성한 아들을 계속 보살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지난 14일 영국·미국·캐나다 공동연구팀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다.

연구팀은 미국과 캐나다 서부의 북태평양 연안에 사는 범고래 두 무리를 36년간 관찰한 기록을 분석했다. 모두 589마리를 대상으로 연령대별 생존가능 기간(평균 여명)을 계산하고 엄마를 잃은 개체와 그러지 않은 개체의 실제 수명을 비교했다. 범고래의 등지느러미는 인간의 지문처럼 저마다 독특해서 식별이 가능하다.

분석 결과 엄마를 잃은 젊은 수컷은 그로부터 1년 내 사망할 위험이 그러지 않은 수컷에 비해 세 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30세 이상 수컷은 이 같은 위험이 8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엄마를 잃는 것은 젊은 암컷의 사망률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나이 든 암컷의 1년 내 사망률은 2.7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엄마가 장성한 아들의 생존과 번식에 결정적 도움을 주지만 딸에게는 그러지 않는다는 뜻이다.

엄마의 아들딸 차별은 이들 범고래 집단이 평생 가족을 떠나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들이 짝짓기를 해서 생긴 자손은 다른 가족의 암컷들이 보살핀다. 이에 비해 딸이 낳은 자손은 가족 내에 남아서 동일한 자원을 놓고 경쟁한다. 엄마 입장에서 추가 부담 없이 유전자를 퍼뜨리려면 장성한 아들을 집중적으로 보살피는 것이 유리한 선택이다. 보살핌의 내용은 먹이 사냥을 돕고 다른 고래의 공격을 물리쳐주는 것이다. 연구팀은 “범고래는 모자가 동반자 관계를 평생 유지하는 특이한 동물”이라며 “폐경 이후 오래 사는 것은 이 같은 보살핌을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폐경이 진화한 이유는 미스터리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생명체의 존재 이유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번식 능력을 잃은 뒤에도 오래 생존하게 만드는 유전자는 도태돼야 마땅하다. 실제로 폐경 후 암컷이 수십 년간 생존하는 동물은 인간·범고래·거두고래밖에 없다. 그 원인은 짝짓기 방식의 차이에 있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인류의 조상은 짝짓기를 하려면 젊은 여성이 가족을 떠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범고래와 거두고래는 짝짓기를 해도 가족 구성원의 변화가 없다. 여타의 장수하는 포유동물은 수컷이 가족을 떠난다.

인간의 폐경을 설명하는 이론은 할머니 가설과 고부갈등 가설이 경쟁 중이다. 할머니 가설은 손자 손녀가 잘 자라도록 돌보는 것이 할머니 입장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고부갈등 가설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경쟁이 폐경의 진화를 촉진했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비슷한 시기에 출산하면 아이들이 사망할 위험이 높아진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서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유전자를 공유하는 딸과 어머니는 협력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자원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이 경우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자신이 번식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아들이 며느리를 통해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이 유전자를 퍼뜨리는데 더 이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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