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십계명_알코올성 간질환

연세의대 소화기내과 박준용 교수

예전에 ‘한국 술 문화에 대한 외국인의 말말말’ 이라는 제목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인생이라는 게 없고, 일, 스트레스, 그리고 술만 있는 것 같다”라거나 “술자리에서 중간에 힘들어 집에 가는 것을 ‘도망간다’라고 하는 게 웃긴다”는 등의 글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인과 외국인의 시각 차이에 웃음이 나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간질환을 매일 접하는 필자의 입장이 떠올라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질병관리본부 ‘국민건강조사’의 2007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 가운데 주 1회 이상 술자리를 갖는 ‘위험 음주자’는 30대 남성의 41.1%, 40대 남성의 34.6%에 이릅니다. 매일 술을 마시는 ‘고위험 음주자’도 30대 남성의 7.8%, 40대 남성의 11.4%나 된다고 합니다.

1인당 술 소비량도 세계 최상위권이라고 하지요. 한국 사회에서는 직장생활, 친구들과의 관계, 집안의 대소사 등에서 술을 접할 기회가 많다보니, 술을 잘 못마시는 사람이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술은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하고, 인간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음주는 식도, 간, 위, 췌장, 결장, 직장 등의 여러 장기에 발생하는 암과 관련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심혈관계 질환, 지방간, 간경변증 등 많은 질병과 상해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세 이상의 경우 음주에 따른 질병 등으로 발생하는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액은 전체 진료비의 11.4%에 달합니다. 흡연과 비만이 의료재정에 미치는 부담을 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또한 의료비 외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음주로 인한 결근, 업무의 비효율성 등으로 생산성이 뚝 떨어지게 됩니다. 사회적으로는 음주 관련 범죄와 사고, 가정불화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렇듯 술은 여러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손상을 받는 곳이 바로 인체의 최대 해독공장인 간(肝)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술로 인한 간질환은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간질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술 역시 일차적으로는 간에 지방이 쌓이는 알코올성 지방간을 발생시키고, 더 나아가 알코올성 간염, 알코올성 간경변까지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간염 바이러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노력이 지속되면서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간질환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술에 의한 간질환은 오히려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떤 술이 가장 몸에 해로운지, 음주 후 어떤 약을 먹어야 간에 도움이 되는지 많은 분들이 물어보곤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텐데요. 술의 어떤 부분이 간에 해를 입히는 것일까요?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아세트알데하이드’입니다. 이는 술을 마셔서 흡수된 알코올이 대사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가장 대표적인 간 독성 물질입니다. 우리 몸 안에 들어온 알코올은 탈수소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하이드로 대사가 됩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 아세트알데하이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바뀐 뒤 우리 몸 곳곳에서 쓰이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과도한 음주로 간이 알코올을 미처 충분히 대사하지 못하면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오랫동안 축적이 되고 간세포를 파괴하는 등 여러 가지 신체 손상을 유발하게 됩니다. 우리가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 뒤 두통과 구토에 시달리는 것도 알코올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대사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술을 마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마시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따라서 음주습관을 고치지 않고, 약으로 간을 보호하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겠습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음주는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술을 두 잔 정도 마시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간기능에도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다만 우리 몸에 도움이 되려면 간이 충분히 쉴 수 있도록 휴식기를 주는 게 필요합니다. 이 글을 지금까지 읽은 여러분은 충분히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몸을 망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대방을 배려하는 음주 문화가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전에 인상 깊게 읽은 음주 십계명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음주 십계명

1. ‘일’차에서 끝내고

2. ‘이’차 이상 가지 맙시다.

3. ‘삼’차 이상 가는 사람은

4. ‘사’람 잡을 사람입니다.

5. ‘오’직 자기 주량대로 마셔서

6. ‘육’체와 가정을 보호합시다.

7. ‘칠’칠치 못한 사람처럼 술 핑계 대지 말고

8. ‘팔’팔하게 살아갑시다.

9. ‘구’차한 변명과 이유 달지 말고

10. ‘십’계명으로 자신의 건강과 가정을 지키는 게 어떻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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