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내가 안다”….치료 걸림돌

만성 간염 방치하면 간암 될 확률 높아

서울 동대문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김준성(45)씨는 만성 간염(B형) 환자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병원 치료에 소극적이었다.

“별 다른 증상이 없었고 간 수치도 정상이었는데… 장사를 하느라 몸을 돌볼 시간이 없었어요.”

김씨는 간염을 앓고 있었지만 정기검진을 소홀히 했다. 최근 눈 흰자위와 피부가 누렇게 변하자 병원을 찾았다. 복부 CT촬영 결과 간에서 암세포가 발견됐다. 말로만 듣던 암환자가 된 것이다.

평소 ‘몸보신’에 신경쓰는 박병진(61)씨는 건강보조식품을 즐겨 먹는다. 최근에는 친구의 권유로 야생동물까지 달여 먹었다가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자칫하면 간이식이 필요한 간부전까지 진행될 수 있었다는 의사의 설명에 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간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건강을 자신하다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진행된 뒤에야 후회하는 환자들이 많다.

◆초기 증상이 없어 더 위험한 간염

간은 ‘침묵의 장기’다. 내부에 통증 세포가 없어 웬만큼 아프기 전에는 신호를 보내지 않고 침묵하기 때문이다. 만성 간염의 경우 간경변이 심해진 후 뒤늦게 황달, 갈색 소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통증이 없다보니 만성 간염 환자 가운데 병원 치료를 받는 사람은 3분의 1밖에 안된다. 오랫동안 꾸준히 치료해야 한다는 설명에 아예 치료 자체를 포기하는 환자도 있다.

간암을 예방하려면 만성 간염, 간경변, 알코올성 간질환 등 만성 간질환을 먼저 예방해야 하는데도, 많은 사람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

술만 취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주폭’ 가운데는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가 많다.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는 반드시 술을 끊어야 한다. 몸으로 흡수된 아세트알데히드가 간에 독성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폭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폭력성에 가족들도 손을 놓고 있어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주폭 성향의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는 입원 치료를 꺼린다. 가족들의 설득으로 가까스로 입원을 해도 몰래 소주팩을 들이키거나 보호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사라지는 사례도 많아 병원 관계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간 전문의에게 진단과 치료 맡겨야 – 민간요법 맹신은 위험

의사의 처방과 달리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환자들도 문제다.

간에 좋다는 속설만 믿고 산에서 캐온 약초를 먹다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몸에 좋다는 녹즙도 간질환 환자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질을 분해하는 대사 기능이 떨어진 간 질환자에겐 각종 야채를 진한 액체로 만든 녹즙이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독성 간염으로 악화될 수 있는 것이다.

몸보신을 이유로 무분별하게 건강보조식품을 먹다가 독성 간염을 앓는 환자도 많다. 증상과 통증이 없고 간기능 손상만 진행되다보니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독성 간염은 대부분 원인물질의 섭취를 중단하면 정상 간기능으로 회복되지만,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하는 급성 간부전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 경우 환자는 간이식이 필요할 정도로 위중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임신이나 사업을 이유로 간염 치료를 늦추겠다는 환자들도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간이 딱딱해지는 간경변으로 진행되고 눈이 노랗게 돼서야 병원을 찾으면 치료가 어렵게 된다. 간 치료를 받다가 중단하면 더욱 위험하다. 약을 도중에 끊으면 바이러스 억제에 문제가 생겨 급성 간부전으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성 간염의 치료 시기를 놓치면 간이 오돌토돌해지고 딱딱해지는 간경변이 일어나고 결국에는 간암으로 진행된다.

만성 간염 환자는 일반인보다 100배 이상 간암 발생률이 높다. 국내 간암 환자의 60~70%가 만성 B형 간염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만성 간염을 예방하거나 빨리 치료해야 암 발생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자칫 방심해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

최근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비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을 앓는 대사성 증후군 환자가 늘어나면서 지방간 환자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단순한 지방간은 술을 끊고 운동을 하면 좋아진다. 하지만 지방간을 오래 방치해서 지방 간염이 생기면 문제가 달라진다. 지방 간염 역시 간경변,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 간염 환자는 반드시 간 전문의에게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받아야 한다.

◆지방간 환자들은 다이어트로 간암 예방

무리한 다이어트도 지방 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무작정 굶어서 급격하게 살을 빼면 요요현상뿐만 아니라 혈액 내 지방산을 증가시켜 지방 간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방간을 없애기 위해서는 체중의 10% 정도를 감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체지방을 줄이려면 빨리 걷기, 조깅, 자전거 타기, 수영 등의 유산소 운동이 효과적이다.

간질환 환자 스스로 인터넷 정보 등을 통해 치료시기는 물론 검사 방법, 약제까지 결정하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 인터넷 정보 가운데는 검증이 안된 치료법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간 전문의의 진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기적인 건강 검진이다. 우리나라의 간암 검진 권고안에 따르면 남자 30세, 여자 40세 이상의 성인들은 B형,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있거나 간경변, 만성 간질환이 있는 경우 6개월마다 복부 초음파 검사와 혈액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간질환은 예방백신 접종과 함께 올바른 생활습관을 갖는 게 중요하다. 먼저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습관을 길러 식사 전이나 화장실을 다녀온 뒤 손을 깨끗이 씻고 끓인 물이나 정수처리 된 물을 마시고 음식도 익혀 먹어야 한다.

국내 암 사망률 3위인 간암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사망선고로 여길만큼 치료가 어려운 병이었다. 하지만 간암은 만성 간질환이 없는 사람에게서 갑자기 발병할 확률은 낮다. 따라서 바이러스성 간염, 알코올성 간질환, 비알코올성 지방간, 간경변 등의 원인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주, 운동 및 식이조절 등을 통해 간 건강에 유의하면 간암에 걸릴 확률을 충분히 낮출 수 있다.

간 연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안상훈 연세대 교수는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토끼의 간 얘기가 나오는 ‘별주부전’이나 ‘간 떨어지다’ ‘간이 콩알만 해지다’는 속담이 유행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안 교수는 “간 건강을 위해서는 증상이 없더라도 꾸준히 내 몸에 관심을 갖고 돌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움말=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안상훈 교수)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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