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간…간경변, 보듬으며 살아가기

연세의대 내과학교실 김도영

“간이 돌처럼 굳어졌다”

간경변을 풀어서 흔히 하는 말입니다. 간경변의 단계로 접어든 간의 겉모습을 보면 엎드려서 자갈밭을 볼 때처럼 우둘투둘합니다.

간경변을 가리키는 의학용어는 서로시스(cirrhosis)입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이 용어의 뜻은 ‘노란색의 오렌지’입니다. 선홍빛의 매끈한 표면을 잃어버리고 오렌지 껍질의 질감으로 변한 우리 몸의 화학공장인 ‘간’이 오랜 기간에 걸쳐 얼마나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피부에 상처가 나면 뛰어난 인체 회복력 덕분에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는 원래와 거의 같은 상태로 회복됩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너무 큰 상처를 입는다든지 같은 부위에 상처가 반복적으로 생기면 피부에 흉이 생깁니다. 재생능력이 뛰어난 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짧은 시간에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입거나, 오랜 기간 상처를 반복적으로 입으면 간에 큰 흉터가 남습니다. 이것이 간경변의 과정인 ‘간 섬유화’입니다.

B형 또는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간의 염증과 간 섬유화, 간경변은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간 섬유화의 가장 심한 단계가 간경변입니다. ‘간 섬유화 스캔’이라는 장비를 이용해 검사하면 조직검사를 하지 않고서도 섬유화 단계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간 섬유화가 문제다

정교하게 배치돼 있던 간세포가 죽으면서 콜라겐이 무질서하게 쌓이면 간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간세포 수가 줄어들면서 섬유물질이 간 안의 혈액 흐름을 방해하게 됩니다. 간 기능이 떨어지고 혈류를 막아 각종 증상이 나타납니다.

간경변증이 있더라도 간 기능이 유지되면 아무 증상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나, 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을 넘어서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황달이 생기고 쉽게 멍이 드는 등 간의 합성기능 저하에 따른 증상이 생깁니다. 이와 함께 혈액 흐름의 장애에 따른 복수, 식도 정맥류 출혈, 혼수, 신장 기능 저하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원인에 대한 치료를 적절히 받지 못하거나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합병증까지 나타나는 간경변증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간경변증을 완치할 수 있는 약물은 없는가

의학과 생명과학이 발전하면서 간경변증이 왜, 어떻게 생기는지 이해하고 굳어진 간을 정상적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실제 치료의학에까지 연결된 획기적인 약물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특정 유전자의 활성이나 억제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개념의 치료가 최근 모색되고 있습니다. 의학의 빠른 발전을 감안하면 수년 내에 상당히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간 기능이 떨어지고 합병증이 있는 간경변증 환자들에게는 개선된 치료법을 적용하는 게 시급합니다. 복수, 황달, 혼수, 신장 기능 저하는 일회성으로 한 번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 자체가 간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이에 따라 합병증이 단독으로 혹은 두 개 이상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주기는 짧아집니다.

어떤 환자가 간이식을 고려해야 하나

간경변증 환자에게는 실제 기능을 하는 간세포가 거의 없습니다. 각종 합병증이 나타나면 간이식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간을 나눠줄 기증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가족 중 조건이 맞는 누군가가 기증하거나 사체 간 공여자가 나타날 때까지 버텨야 합니다.

최근엔 간 기능 회복을 위한 줄기세포 치료가 국내에도 도입됐습니다. 환자의 말초혈액으로부터 줄기세포를 걸러내 이를 다시 주입하는 시술이 잘 선택된 환자들의 복수를 조절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제 간경변증을 줄기세포로 치료하는 연구가 시급합니다.

국가, 사회적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

보건복지부는 2005년부터 9개년 계획으로 간경변증 임상연구센터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속한 연세대 의대를 비롯한 전국 대학병원의 간 전문의들은 간경변증 환자의 생존율 향상과 삶의 질 개선, 국민건강 증진을 목표로 하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센터를 통해 얻는 연구 결과와 성과가 간경변증 환자들의 상처를 보듬고 아픔을 치유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길 기대합니다.

 

    코메디닷컴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0
    댓글 쓰기

    함께 볼 만한 콘텐츠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