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섹스와 피크닉 음식

며칠 전 집 근처의 호숫가로 피크닉을 다녀왔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이라 선선하기는 했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다. 덕분에 샐러드가 담긴 종이접시가 바람에 날아갈까 신경 쓰느라 전날 미리 준비해둔 유부초밥을 먹는데 집중할 수 없었다. 한 손은 종이 접시를 잡고, 다른 한 손은 밥알이 단단하게 굳은 유부초밥을 먹으며 나는 접시가 날아갈 염려도 없고, 갓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우리 집 식탁을 계속 그리워했다. 소풍의 묘미는 도시락이라지만 불편한 공간에서 엉성한 식기로 부적절한 온도의 음식을 먹는 것에 그다지 대단한 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자연이 배경이라는 단 하나의 장점으로 이 모든 불편함을 덮어주기엔 내가 이미 나이를 제법 먹어서일까. 그러고 보면 아웃도어라는 항목을 빼곤 다 별로라는 점에서 캠핑장의 텐트 섹스는 피크닉 도시락과 도플갱어다.

다행히도(?) 나는 이 텐트 섹스를 딱 두 번 경험했다. 그 중에 한 번은 무려 옆에 다른 친구들과 같이 잠을 자야했던 닭장 같은 텐트였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나는 남자친구와 꿋꿋이 섹스를 했다. 사랑에 눈 먼, 어리고 어리석은 나이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텐트에서 섹스를 아니 잠을 자본 사람들은 안다. 주위의 소음으로부터 방음효과가 제로인 점, 벌레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 등을 무시하고 누울 자리 그러니까 흙바닥 바로 위, 두꺼운 합성섬유로 만든 천 하나에 의지하고 눈을 붙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이다. 그나마 에어 매트리스와 같은 쿠션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이 매트가 섹스할 때는 은근히 골칫덩이다. 정상위에서 남자가 조금만 파워를 올려도 미끄러지니 차라리 매트를 치우고 텐트 밑의 돌이 그대로 느껴지는 단단한 바닥이 안정감 있는 섹스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베개를 따로 준비해왔다면 섹스할 때 아래에 있는 사람의 골반 아래 받쳐놓으면 한결 낫다. 또, 텐트의 협소한 공간상 체위 설정에 제약이 많은데, 결정적으로 서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아니, 자기 집 침실에서도 잘 안 하는 스탠딩 포지션을 굳이 캠핑장 텐트에서 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원래 낯선 공간에 오면 사람은 평소 해보지 못한 것을 시도하려는 욕심이 생긴다.

얼마 전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개봉했다. 문득 <다크 나이트>의 히스 레저가 그리워 그가 나온 영화 목록들을 챙겨보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또 봤다. 다시 봐도 <브로크백 마운틴>의 텐트 정사 신은 숨 막힐 듯 긴장감 넘치고, 애잔하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데 뒤처리를 계곡물에서 하면 동상에 걸리겠지, 섹스 도중에 곰이 들이닥쳐도 남자 둘이니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야, 라는 현실적인(?) 망상은 잠시 뒤로 한 채 천막 섹스의 영상 판타지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영화의 잔상은 내게 다시 한 번 캠핑장에 간다면 이번에는 좀 더 크고, 단단한 매트를 준비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아웃도어 섹스에 대한 긍정적인 자기 세뇌로 이어졌다. 그래, 피크닉 도시락도 다음번엔 묵직한 목기 삼단 찬합으로 준비하자. 그러면 날아가는 종이 접시 따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 blog.naver.com/wai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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