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토이로 변신한 베개

윤수은의 핑크토크

맹세코 베개를 처음부터 베고 잠드는 데 쓰이는 것 이상으로 바라본 건 아니다.

우리 인간이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존재)라고는 하나 침대

위에서 ‘호모 파베르’가 되기까지는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어느 날 문득, 집에

나뒹구는 베개가 사실 침대에서 꽤 쓸모 있는 섹스 토이란 걸 깨닫기까지 나 역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섹스를 머릿속으로 자주 그려보는 편이다. 첫 경험 전에는 관계를 가지고

싶은 남자 그러니까 파트너의 외모에 대한 공상이 주류였다. 그러다 남자친구와 본격적으로

섹스를 시작하면서부터 이것저것 시도하고 싶은 체위에 대한 판타지로 매일 밤 머리를

뜨겁게 만들다가 언제, 어디서나 ‘발기’하는 단계를 지나고 나선 단순히 야한 공상

외에 정보 수집에도 열을 올렸다.

결정적으로 베개를 섹스에 적극적으로 쓰게 된 계기는 우습게도 한 야설 덕분이다.

그 소설 속 주인공이 처음에는 잠자리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가 파트너가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엉덩이 아래 베개를 밀어 넣는데, 그 과정에서 전과는 다른 충만함을

느끼며 기뻐하는 장면이 있다. 단지 쿠션 하나 밀어 넣었다고 페니스 두께감이 달라져?

섹스 경험도 없으면서 무슨 야설을 쓴다는 거야, 하고 그대로 책을 덮어버릴 뻔 했다.

그런데 그대로 덮어두기엔 왠지 계속 마음 한 구석이 간질거려 찾아보니 ‘팩트’다.

그리고 직접 해보니 정말 쾌감의 질이 다르다!

여자의 질 안 쾌감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깊은 삽입이 필수다. 깊은 삽입은 곧

깊은 앵글을 기반으로 하는데, 그 삽입의 각도를 편하게, 원하는 만큼 바꿔주는 게

이 베개다. 베개의 도움이 유독 빛나는 자세가 바로 정상위인데, 솔직히 말해서 정상위에서

여자가 커다란 즐거움을 느끼기는 어렵다. 각도의 평이함이 가장 큰 단점인데, 이를

베개는 손쉽게 커버해준다. 우선 여성은 엉덩이 바로 위 등 근육 아래에 베개를 집어넣은

다음 다리를 쫙 벌린다. 이 때, 발은 바닥에 평평하게 내려놓는다. 깊이 있는 삽입

덕에 정상위에서 전보다 꽉 찬 즐거움을 느끼고, 덤으로 클리토리스 자극에도 용이하다.

무엇보다 베개의 좋은 점은 섹스 토이로서 역할을 수행할 때 거부감이 없다는

것. 아무리 섹스에 오픈 마인드된 남자라도 예고 없이 둘 사이에 바이브레이터를

꺼내드는 여자에겐 흠칫 놀랄 수밖에 없다. 그와 나 사이, (감히) 기계가 끼어드는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내 남자의 침실 예로 봐서도 금속성 섹스 토이의

침대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베개는 좀 다르다. 일단, 항상 우리 곁에 있어

친숙하다. 또, 남자가 열심히 피스톤 운동을 하는 도중에 여자가 슬쩍 골반 아래

베개를 집어넣어도 그 장면이 그리 절박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굉장한 플러스

점수를 줄 만하다. “좋아?” 라고 물어보는데, 엉터리 신음으로 시간 낭비하지 않고

그 시간에 베개를 하나 더 집어넣는 여자의 민첩성에는 무조건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제성. 전기나 배터리 없이도 베개는 결코 지치지(?) 않으니

이보다 더 훌륭한 섹스토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요.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 blog.naver.com/wai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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